이번 호에서는 지난 호의 내용을 이어받아 용언의 불규칙 활용에 대해 계속 살펴보기로 한다.
(1)의 ‘(허리가) 굽다’는 어간과 어미의 결합에서 발음의 변화가 없으므로 규칙 동사이다. 그러나 (2)에서는 모음으로 시작하는 어미 ‘-으면, -어’ 앞에서 ‘굽-’의 ‘ㅂ’이 ‘우’로 바뀐다. ‘-으면’의 모음 ‘으’가 다른 모음 ‘우’를 만나 탈락한 것이 ‘우’이고 ‘우’와 ‘어’가 합쳐진 것이 ‘워’이므로 ‘구우면, 구워’로 활용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말이 이렇게 변동하는지를 일반적으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2)의 ‘(불에) 굽다’를 불규칙 동사로 다룬다. 이처럼 모음으로 시작하는 어미 앞에서 어간의 ‘ㅂ’이 ‘우’로 변하는 불규칙을 ‘ㅂ 불규칙’이라고 한다. ‘ㅂ 불규칙’ 활용을 하는 용언의 예로 ‘덥다, 춥다, 무겁다, 가볍다’ 등을 더 들 수 있다.
(3)은 규칙 활용을 하고 있다. 그러나 (4)에서는 ‘-으면, -어’ 앞에서 ‘긋-’의 ‘ㅅ’이 탈락한다. 우리는 어떤 말이 이렇게 변동하는지를 일반적으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4)의 ‘긋다’를 불규칙 동사로 다룬다. 이처럼 모음으로 시작하는 어미 앞에서 어간의 ‘ㅅ’이 탈락하는 불규칙을 ‘ㅅ 불규칙’이라고 한다. ‘ㅅ 불규칙’ 활용을 하는 용언의 예로 ‘짓다, 잇다, 젓다, 낫다, 붓다’ 등을 더 들 수 있다.
(5)는 규칙 활용을 하고 있다. 그러나 (6)에서는 ‘-어, -었-’ 앞에서 ‘이르-’의 ‘으’가 ‘ㄹ’로 바뀌어, 즉 ‘르’가 ‘ㄹㄹ’로 바뀌어 결국 ‘일러, 일렀다’가 되었다. 이처럼 어미의 모음 ‘아/어’ 앞에서 ‘르’가 ‘ㄹㄹ’로 바뀌는 불규칙을 ‘르 불규칙’이라고 한다.
‘르 불규칙’ 활용을 하는 용언의 예로 ‘흐르다, 고르다, 빠르다, 바르다, 게으르다’ 등을 더 들 수 있다.
(7)의 ‘이르다’는 (6)의 ‘이르다’와는 다른 활용을 한다. (7)에서의 ‘이르러’는 ‘이르-+-어’에서 ‘어’가 ‘러’로 바뀐 것이다. 이처럼 어미의 모음 ‘어’가 ‘러’로 바뀌는 불규칙을 ‘러 불규칙’이라고 한다. ‘러 불규칙’ 활용을 하는 용언의 예로 ‘우러르다, 푸르다’ 등을 더 들 수 있다. 앞에서 계속 봐 왔던 ‘ㄷ 불규칙, ㅂ 불규칙, ㅅ 불규칙, 르 불규칙’은 모두 어간에서 변동이 일어난 것이지만, 이 ‘러 불규칙’은 어미에서 변동이 일어난 것이다.
(8)에서의 ‘공부하여’는 ‘공부하-+-어’에서 ‘어’가 ‘여’로 바뀐 것이다. 이처럼 어미의 모음 ‘어’가 ‘여’로 바뀌는 불규칙을 ‘여 불규칙’이라고 한다. ‘여 불규칙’ 역시 어미가 변하는 불규칙 활용이다.
그런데 ‘공부하여’는 흔히 ‘공부해’로 줄여 말하는데, 이 활용은 ‘공부하-+-어’의 ‘아어’가 ‘애’로 바뀐 것이다. 이를 ‘애 불규칙’ 활용이라고 한다. 이 활용을 잘 들여다보면 어간과 어미가 함께 변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공부하다, 절하다, 건강하다’와 같이 ‘-하다’로 끝나는 용언은 ‘여 불규칙’ 활용도 하고 ‘애 불규칙’ 활용도 하는 말이다.
‘애 불규칙’ 활용만이 어간과 어미가 함께 변하는 것은 아니다. (9)에서 ‘파랗-+-아’는 ‘파라’가 아니라 ‘파래’이고 (10)에서 ‘누렇-+-어’는 ‘누러’가 아니라 ‘누레’임을 알 수 있다. 이때 어간 ‘파랗-, 누렇-’에서 ‘ㅎ’도 탈락되었고 어미의 ‘아/어’도 ‘애/에’로 바뀌었다.
이처럼 어미의 모음 ‘아/어’ 앞에서 ‘ㅎ’이 탈락하고 ‘아/어’는 ‘애/에’로 바뀌는 불규칙 활용을 ‘ㅎ 불규칙’ 활용이라고 하는데 ‘ㅎ 불규칙’ 활용도 어간과 어미가 함께 변하는 불규칙이다. 이 밖에도 국어에는 다양한 불규칙 활용이 존재하지만, 그 모두를 살피기는 어려우므로 생략하도록 한다.
글: 이선웅 (경희대학교 외국어대학 한국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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