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게시판/서민(단국대 의대교수)이야기

대통령님, 기생충에게 배우세요

튼씩이 2016. 7. 28. 07:49

“공약 파기라는 데 대해 동의할 수 없다.” 청와대 대변인이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 말이다. 지난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은 “부산시민이 바라는 신공항을 반드시 건설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는데, 프랑스에 용역을 줘서 타당성을 따져본 끝에 ‘기존 김해공항 확장’으로 결론이 나자 공약 파기 논란에 휩싸였었다. 하려던 사업이 수지가 안 맞는다면, 그리고 그 재원이 국민의 세금이라면, 욕을 좀 먹더라도 안 하는 게 맞다. 그렇다 하더라도 대통령의 말을 믿고 기대했던 해당지역 주민들에게 사과 정도는 하는 게 도리다.

 

게다가 신공항 사업이 이렇게 결론 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신공항을 짓겠다고 공약했지만, 이리저리 따져본 끝에 내린 결론은 새 공항을 짓지 않는 것이었다. 결국 이 대통령은 2011년 만우절을 맞아 영남권 신공항이 백지화된 것에 대해 사과했다. “대통령 한 사람 편하자고 다음 세대에 부담을 주는 사업을 하자고 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 이렇게 일단락된 사건에 다시 불을 지피고, 보수세력의 본산이라 할 영남지역을 편을 갈라 싸우게 만든 장본인은 바로 박 대통령이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사과하는 대신 ‘기존 공항 리모델링이 사실상 신공항’이라는 창조적 해석으로 공약 파기 논란을 벗어나려 한다.

 

미리 말해두지만, 난 박 대통령의 지지자다. 지난 대선 때 술자리에서 누군가가 ‘박근혜 대통령을 이명박 전 대통령과 비교하면 어떨 것 같으냐?’는 질문을 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박 대통령이 더 못할 것이다’라고 한 반면, 난 박 대통령이 훨씬 나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명박보다 더 못하기 힘들며, 박 대통령은 자녀가 없어서 측근비리를 저지르기 힘들다는 게 당시 내 변명이었다. 내가 박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증거는 이게 다지만, 내 의견에 대한 수많은 반박에도 끝끝내 박 대통령 편을 든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지금은 내가 좀 순진했다는 생각이 든다. 국가를 수익모델로 삼아 자신과 측근들의 재산을 불리는 데 주력한 이 전 대통령보다 국가 수준을 40년 전으로 돌리는 박 대통령이 훨씬 더 나빠 보이니 말이다. 물론 잘못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진솔한 사과, 그게 있어야지 그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들이 위로받을 수 있고, 대통령 자신도 사과를 통해 다음번엔 비슷한 잘못을 하지 않을 수 있으니 말이다.

 

‘시모토아’라는 기생충이 있다. 중남미 해안지방의 물고기에 기생하는 시모토아는 팬클럽이 있을 만큼 우리나라에서도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잘못한 일에 대해 사과하고 합당한 책임을 진다는 게 그 비결이다. 원래 시모토아는 물고기의 혀 근처에 살면서 혀로 가는 혈관에 입을 박고 피를 빨아 먹는다. 혈액 공급이 부족해진 혀는 얼마 안돼서 썩어버리고, 결국 떨어져 나간다. 여기까지만 보면 시모토아는 굉장히 나쁜 기생충이다. 멀쩡한 혀를 없애버리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시모토아가 빛나는 대목은 그 다음부터다.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시모토아는 물고기에게 다음과 같이 용서를 구한다. “물고기야, 내가 내 욕심만 채우려고 너에게 몹쓸 짓을 했구나. 하지만 걱정 말아라. 앞으로 내가 너의 혀가 되어줄게.” 실제로 시모토아는 물고기의 혀 위치에 자리를 잡고 혀가 하던 역할을 대신한다. 물론 물고기의 혀가 대단한 일을 하는 건 아니다. 먹을 게 물고기의 입에 들어가면 다시 나가지 못하게 막는 정도가 고작이지만, 그게 있고 없고는 물고기에게 매우 중요하다. 실제로 혀가 없어진 물고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영양실조에 빠지지만, 혀 대신 시모토아를 가진 물고기는 정상 물고기와 비교할 때 체중변화가 거의 없었단다. 그뿐이 아니다. 물고기가 죽고 나면 시모토아는 다른 곳으로 떠나는 대신 물고기의 곁을 지키며 그의 죽음을 애도한다. 이 정도면 가히 ‘사과의 아이콘’으로 불려야 되지 않을까?

 

물론 박 대통령에게 시모토아 정도의 사과를 기대하는 건 아니다. 그저 이명박 전 대통령 정도의 사과가 우리가 기대하는 한계치일 텐데, 박 대통령이 그 정도의 사과마저 거부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과 안 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윤창중 대변인이 성추행을 했을 때는 홍보수석이 나와 “국민과 대통령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했는데, 사과를 해야 할 대통령이 오히려 사과를 받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은 적어도 기생충의 세계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메르스로 인해 경제가 마비되고 많은 국민들이 고통을 겪었을 때도 대통령 대신 총리가 된 지 며칠 되지도 않은 황교안씨가 사과를 했다. 세월호 사건 때도 사과를 계속 미루다 열흘이 지난 후 국무회의에서 “뭐라 사죄를 드려야 그 아픔과 고통이 잠시라도 위로를 받을 수 있을지”라고 말한 바 있는데, 이걸 과연 사과라고 불러야 할지 잘 모르겠다.

 

이런 일련의 사태를 보면 박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사과를 하지 않겠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사과가 싫다면 잘못을 하지 않으면 될 텐데 그런 것도 아니니 답답하다. 멕시코에 사는 시모토아를 데려와 사과에 대한 강의를 듣는다면 좋으련만, 남의 말도 잘 듣지 않으니 방법이 없어 보인다. 대통령의 사과가 없는 나라, 지금 우리는 그런 나라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