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의 여름휴가는 내게 충격 그 자체였다. 평소처럼 모래밭에 글씨를 쓰며 해맑게 지내실 줄 알았는데, 그 기간에 몇 권의 책을 읽으셨단다. 사람들이 놀라자 청와대 대변인은 다음과 같이 해명했다. “대통령님은 원래 책을 좋아하신다.” 아쉬운 점은 책을 읽고 난 뒤 국정운영이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 올해 4·13 총선 때 새누리당이 참패한 것도 박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책이 삶에 도움이 안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책을 읽고도 이해를 잘 못할 때고, 두 번째는 책 선택이 잘못됐을 때다. 설마 대통령께서 전자에 해당될 리는 없으니, 지난해에 읽으신 책에 문제가 있었다는 게 합리적인 해석이리라. 이럴 때 좋은 책을 추천해 드리는 건 좋게 봐서 ‘구국의 결단’이다. 게다가 대통령의 임기가 이제 1년 반밖에 남지 않았다는 걸 고려하면 이번 여름휴가 때 읽는 책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한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안타깝게도 대통령님은 7월25일부터 휴가에 돌입했으니 지금 책을 추천하는 게 시기적으론 늦었다. 하지만 꼭 휴가 때만 책을 읽어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 대통령님께는 물론이고 국가 전체적으로도 이익이 될 책을 몇 권 추천해 드린다.
1. <내 옆에는 왜 이렇게 이상한 사람이 많을까?>
박 대통령은 가끔 억울함을 호소하신다. 당신은 열심히 일하는데, 나라 걱정에 잠도 잘 못 주무시는데 사람들은 입만 열면 대통령을 욕한다고. 박 대통령으로선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일이다. 그래서 박 대통령께서는 그들을 ‘대통령을 흔들려는 세력’ 혹은 ‘종북세력’으로 지칭하며 분노를 표출하신다. 문제는 그들의 숫자가 너무 많다는 것. 도대체 이 나라에는 왜 이리도 이상한 사람이 많을까, 라는 한탄이 나올 때 이 책을 읽어주시면 좋겠다. 특히 다음 구절을.
“어떤 남성 운전자가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라디오에서 고속도로에 역주행하는 차가 한 대 있으니 조심하라는 뉴스가 흘러나온다. 그러자 그 남자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렇게 말했다. ‘한 대라고? 수백 대는 되겠다.’…경계성 인격장애, 자기애성 인격장애, 그리고 반사회적 인격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사람들은 이들이 결코 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결국에는 곁을 떠나게 된다.”(39쪽)
2. <세월호, 그날의 기록>
임기 초반인 2년째 일어난 세월호 사고는 박 대통령의 운명을 좌우할 풍향계였다. 이 사건에 제대로 대응했다면 박 대통령이 지금보다는 성공적인 대통령이 됐을지도 모르지만, 아쉽게도 박 대통령은 유족의 진상규명 요구를 자신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고 그들을 적대시하는 우를 범한다. 시간이 좀 흘렀긴 해도 지금부터라도 잘하면 늦은 것은 아닌데,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세월호 사건의 진상을 알아야 한다. 위 책은 세월호에 대한 모든 음모론을 배제한 채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들만 담담히 적은, 진상을 아는 데 가장 좋은 책이다.
3. <자치가 진보다>
지방자치에 대한 박 대통령의 인식은 아마 다음과 같을 것이다. “지방자치, 그까짓 게 왜 필요해? 내가 대통령이니 내가 다 할 거야!” 하지만 지방자치가 필요한 이유는 지역마다 여건이 다르며, 중앙정부에서 그걸 일일이 파악해 대처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책의 한 구절을 옮겨본다.
“어느 곳, 누구에게나 적합한 보편적인 정책은 있을 수 없다. 나와 내 이웃이 안고 있는 문제는 나와 내 이웃이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다. 함께 머리 맞대고 해결책을 찾는 것이 자치이다.”(43쪽)
대통령께서 이 책을 읽으신다면 성남시장이 좀 더 편하게 시정을 펼칠 수 있으리라.
4. <개성공단 사람들>
박 대통령은 임기 내내 남북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그중 최악은 올해 2월 개성공단 폐쇄였다. 북한에 벌을 준다면서 남한 측에 훨씬 더 큰 손해를 끼쳤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벌어진 건 대통령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도 북한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해서다. 이미 신뢰가 깨진 마당이라 개성공단 폐쇄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됐지만, 대통령께서 이 책을 통해 ‘내가 무슨 일을 했던가?’ 정도는 느껴 보시면 좋겠다.
5. <댓글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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