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선수 박태환이 큰절을 했다. 5월2일 기자회견 자리에 나온 그는 “국가에 봉사할 수 있도록 한 번만 기회를 달라”며 바닥에 엎드렸다. 올해 8월 브라질 리우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국가대표로 나가고 싶다는 게 그 이유다. 한국 수영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안겨줬고, 아시안게임에서도 많은 금메달을 딴 박태환이니만큼 이제 개인의 삶을 살겠다고 해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이 없을 텐데, 그의 봉사심은 나 같은 범인이 그 크기를 측량하기 어려울 만큼 큰 모양이다.
다들 알다시피 박태환은 2014년 아시안게임이 열리기 두 달 전, 남성호르몬 주사를 전문으로 하는 병원에서 국제수영연맹이 금지하는 약물 중 1순위에 해당되는 남성호르몬제 ‘네비도’를 투여받았다. 박태환은 억울하다고 말한다.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2개월이면 약물이 체내에서 완전히 배출될 텐데, 세계반도핑기구가 그 기간을 기다려주지 않고 불시에 검사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박 선수에 따르면 그는 그게 금지약물이란 사실을 전혀 몰랐고, 주사를 맞기 전 의사에게 몇 번이나 투여해도 괜찮은지 확인받았단다. 희한한 점은 금지약물을 투여받은 선수들이 하나같이 똑같은 말을 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말대로라면 약물을 한 선수들은 대부분 사악한 마음을 가진 의사에게 억울하게 당한 피해자인 셈, 이런 사람이 하도 많은지라 세계반도핑기구는 ‘고의성 여부에 관계없이 약을 하면 무조건 선수 책임이다’라는 조항을 집어넣고 그에 따른 징계를 하고 있다. 결국 박 선수는 아시안게임에서 딴 메달을 모조리 박탈당하고 1년6개월간 선수자격을 정지당하는 징계를 받고 만다.
그 징계는 2016년 3월로 끝났으니 리우 올림픽에 참가가 가능할 수 있지만, 또 다른 문제가 남아 있었다. 대한체육회 국가대표 선발규정에 따르면 약물로 인해 징계처분을 받을 경우 “징계 만료일로부터 3년이 경과하지 아니한 자는 국가대표가 될 수 없다”고 돼 있기 때문이다. 이 규정대로라면 박태환 선수가 리우에 가는 것은 불가능한지라, 박 선수와 그의 지지자들은 이 규정의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안 그래도 국제수영연맹으로부터 1년6개월의 징계를 받은 마당에 우리나라에서 추가로 징계하는 것은 이중처벌이라는 게 그들의 논리다. 일견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만, 현실에서 이중처벌은 생각보다 흔하다. 예컨대 모 대학에서 기생충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보이스피싱에 가담했다가 붙잡혀 징역형을 살았다고 해보자. 형기를 마치면 그가 계속 대학교수직을 유지할 수 있을까? 아마 그가 감옥에 가는 순간 해당 대학에서는 그를 해임할 것이다. 그가 출소한 뒤 “이미 법의 심판을 받았는데 해임까지 하는 것은 이중처벌이다”라며 억울함을 호소해봤자 그에게 동조할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보이스피싱과 금지약물이 어떻게 같을 수 있느냐고 하실 분들이 계시겠지만, 근육양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수영에서 남성호르몬제 투약은 보이스피싱을 능가하는 범죄일 수 있다.
국민들 앞에서 넙죽 엎드리는 것과는 별개로, 박 선수는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이미 제소를 했단다. ‘대한민국이 나를 올림픽에 못 가게 하니 너희들이 좀 압력을 넣어 달라’는 취지인데, 외국의 힘을 빌려서라도 올림픽에 가겠다고 하는 걸 보면 그가 이러는 게 진짜 봉사심의 발로인지 의심이 간다. 진정한 봉사란 해당 기관에서 도와달라고 요청했을 때 가능한 법인데, 나라에서는 제발 쉬라고 하는데 편법을 동원해서라도 올림픽에 가겠다고 우긴다면 봉사의 취지가 퇴색되지 않겠는가? 게다가 CAS가 박 선수의 출전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어떤 사람을 국가대표로 뽑을지 결정하는 것은 그 국가의 고유한 권리지, 국제재판소의 판단을 구할 일은 아니다. 뻔히 이중처벌임을 알면서도 대한체육회가 저런 규정을 만든 이유는 국가대표가 갖는 상징성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모 나라의 대통령이 우리나라에 왔는데, 알고 보니 그가 부정선거로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이었다. 그 경우 우리는 “쯧쯧, 저 나라는 어떻게 저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인정할까?”라며 나라 전체를 우습게 볼 것이다. 수영선수라고 해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약물로 징계를 받은 선수를 징계가 풀리자마자 올림픽에 참가시키면 ‘저 나라는 포용력이 넘치는구나!’라고 감탄하는 대신 ‘메달 따려고 혈안이 됐구나’라며 혀를 차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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