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말이 낯선 외국인에게 우리말은 어떻게 들릴까? 이제 갓 한글을 떼고서 짧은 문장을 만드는 외국인 학습자들이 종종 하는 말이 있다. 어떤 표현을 마치면서 마지막에 미소와 함께 ‘세요’를 붙이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나 오늘 집에 일찍 가요. 선생님, 세요.” 하고 말한다. 마치 영어의 ‘Please’처럼, 한국말에 ‘세요’를 붙이면서 설득하려는 모양새인데, 이것은 한국말 ‘세요’가 적어도 외국 사람의 귀에는 공손한 표현으로 들렸음을 알려준다. 또 많은 중국인이 말하기를, 어떤 방송프로그램에서 ‘Wuli(우리)’와 ‘Ouba(오빠)’, 그리고 ‘Simida(습니다)’가 들리면 그것은 한국 방송이라 생각한다고 한다. 어떤 중국인들은 한국말을 두고 ‘습니다(思密达, simida)의 언어’라고 불러준다. 한국말은 잘 모를지라도 한국말이 ‘습니다’로 마치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런데 요즘 한국에서는 끝을 맺지 않고 말하는 게 유행인 듯하다. 끝난 것도, 그렇다고 끝나지 않은 것도 아닌 모양새로 말끝을 흐리는 말투가 그것이다. 누리 소통망에서 실례를 찾아보면, ‘저기요, 지금 이거 뭐 하는?’, ‘서울도 더운데 대구는 이런 날 나가면 그냥 습하고 더워 죽는’, ‘이 동영상 봐봐, 알고리즘이 또 보여줘서 가져온’과 같은 예들이 허다하게 나온다. 이런 말투는 누리 소통망의 쪽지창에서만 머물지 않고, 만화의 말풍선 또는 드라마 언어로 세상에 노출된다. 원래는 쪽지창에서 친한 상대에게 편하게 쓰던 말이었지만, 이제는 원래 말투를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익숙해져 버렸다. 외국인들이 ‘세요’와 ‘습니다’를 듣는 동안, 자국민들은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으니 참 모순적이다.
기차에서 있었던 일이다. 부산 여행을 다녀오는 듯한 10대 학생 예닐곱 명이 조용한 특실에서 소란스럽게 대화하고 있었다. 외모로는 특이한 점이 없었는데 영어로만 대화하면서 몸짓언어가 다른 것으로 보아 교포 2세나 3세쯤 되지 않나 싶었다. 먼 곳에서 하는 여행의 흥겨움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한참이 지나도 대화가 잠잠해지지 않자, 승객 몇몇이 조용히 해 달라고 우회적으로 말했다. 그렇지만 단 한 명을 빼고는 다들 한국말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때 문제를 해결할 승무원이 누군가의 요청으로 객실에 등장했다. 객실 전체의 주목을 받으며 학생들 앞으로 간 승무원이 한국말로 소통할 사람을 찾으니, 한 명이 긴장한 얼굴로 손을 들며 “나는.” 하고 답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승무원도 학생도 서로 다음 말을 기다리며 쳐다보는 5초가 그렇게 길 줄이야! 머릿속에서 ‘I do.’를 번역한 듯, 영어가 편한 교포로서는 응답을 마쳤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승무원은 ‘나는 한국말을 할 수 있어요.’와 같은 뒷말을 예상하며 학생의 입만 보고 서 있었다. 한국말에서는 격식적인 상황에 처할수록 말을 끝까지 수행할 것이 기대된다. 말을 덜 맺은 것은 공손한 행위가 아니다.
말은 문법이나 어휘 사용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쓰는 것이 맞는지, 그것은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것인지 등은 언어별로 다르다. 놀라고 어이없을 때 하는 외마디, ‘헐!’이 있다. 표준어도 아니면서 짧은 시간에 확산돼 이제는 더는 신조어도 유행어도 아니다. 만화는 움직이지 않는 그림으로 이야기를 엮어가야 하는 매체이다. 소리는 표현할 길이 더욱 없다. 그런 제한된 조건에서 만화는 온갖 의성어와 의태어, 감탄사 등을 다양한 디자인으로 그려 넣어 가며 장면을 재생한다. 이것이 인터넷 공간과 매체를 통해 너나 할 것 없이 쓰면서 이제는 유치원 아이들도 앙증맞게 ‘헐!’이라는 것을 그저 지켜보는 상황이다.
문제는 이런 언어문화에 노출된 아이들이 표현력을 잃어간다는 것, 그리고 인간관계에 맞는 사회문화적 표현에서 멀어진다는 것이다. 마치 이국땅에서 자란 아이들처럼 적절한 말을 이어가지 못할지도 모른다. 한 아이가 20살이 되기 전에 사회에서 요구하는 수준으로 언어를 배우지 못한다면, 이후 그 사람의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삶은 보장되지 않는다. 수준 높은 말을 배워가는 것은 한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긴 시간 동안 잘 풀어가야 할 숙제다. 그리고 아이들의 말살이를 잘 챙기는 것은 먼저 어른이 된 이들이 해야 할 사회적 의무이다.
글: 이미향(영남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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