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보급률이 높아지면서 사람들은 곧잘 일상을 사진으로 남긴다. 그리고 매일 찍은 사진들이 쌓이면 그것을 따로 모아 둘 저장 매체가 필요해진다. 요새는 인터넷상에 마련된 개인용 저장 서버인 ‘클라우드’를 많이 사용한다. 요즘 아이들에게 클라우드에 사진을 저장하는 것은 익숙하지만 ‘디스켓’은 좀처럼 접할 일 없는 단어일 것이다. 하지만 작성한 문서 파일을 저장하기 위해 디스켓을 쓰던 때가 불과 십여 년 전이다. 지금도 컴퓨터에서 ‘저장’을 뜻할 때 디스켓 모양의 아이콘을 쓰는 경우가 종종 보이는데, 디스켓을 본 적도 없는 아이들에게는 그 모양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알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요즘의 ‘클라우드’가 그렇듯이, ‘디스켓’이라는 단어 역시 과거 어느 순간에는 새로운 말이었을 것이고, 널리 쓰이게 되자 사전에 실리던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사전에는 지금 사람들이 쓰고 있는 말이 실린다. 어떤 개인이 만들어내서 혼자 쓰는 말이 실리는 것은 아니고, 여러 사람이 쓰고 이해하며 오랜 시간 동안 우리 곁에 머물러 있는 말들이 사전 편찬자들에 눈에 띄어 사전에 올라가게 된다. 각 사전의 특징에 따라 다를 수는 있지만, 한번 사전 안에 실린 말은 좀처럼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새로 나타나는 말이 있으면 사라지는 말도 있는 법이다. 시간이 흘러 지금은 잊어버리거나 잘 쓰이지 않는 말을 우연히 보게 되면, 사람들은 사전을 찾아본다. 사전에 한번 실린 말이 쉽게 빠지지 않는 이유이다. 사전은 현재를 기록해 나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늘 우리 곁에서 과거와 현재를 이어 주는 셈이다. 사전이 늘 현재를 반영하는 매체이다 보니, 이것이 쌓이면 역사가 된다.
단어만 그런 것이 아니다. 하나의 단어가 가지고 있는 여러 뜻 중에 어느 것은 점차 쓰임이 보이지 않고 어느 하나만 널리 쓰이는 경우도 있다. “열심히 운동한 보람이 있어 그는 작년보다 체력이 많이 좋아졌다.”라는 문장을 보자. 여기서 ‘보람’이라는 말의 뜻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보람’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은 뜻풀이를 볼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쓰는 뜻은 위에서 「3」번 뜻이다. 그리고 이 말은 대부분 잘 아는 뜻이기 때문에 사전에서 ‘보람’을 찾아볼 일도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보람’을 찾아보면, 우리가 잘 아는 「3」번 뜻뿐만 아니라 조금은 낯선 「1」, 「2」번 뜻도 보인다. 「2」번 뜻풀이 아래에는 용례도 들어 있어 어떤 맥락에서 쓰이는지도 알 수 있다. 상대적으로 지금은 잘 쓰이지 않는 뜻이지만 이렇게 사전에는 남아 있어 현재의 우리는 잊어버릴 수 있는 말의 한 부분도 찾아볼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단어의 뜻이 변하거나 혹은 새로운 뜻이 더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대형 마트에 가면 많이 보이는 ‘착한 가격’이라는 말도 그렇다. ‘착하다’는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다.’라는 뜻이기 때문에 사전적 의미만으로 보면 ‘가격’은 ‘착하다’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없는 대상이다. 그러나 ‘저렴하고 합리적인 가격’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착한 가격’이라는 말은 이제 사람들에게 크게 어색하지 않은 표현이 되었다. 아직은 ‘착한 가격’보다는 ‘알맞은 가격’과 같은 표현으로 바꿔 쓰자는 이야기도 있고, 사전에는 실리지 않은 뜻이지만, 사전이 좀 더 광범위한 언어의 변화까지 담아내겠다고 하면, ‘의미적 신어’라는 개념에서 이런 새로운 뜻 역시 사전에 추가될지도 모를 일이다.
당시에는 익숙하고 당연했던 것도 시간이 지나면 낯설어지고 사라진다. 앞에서 언급한 예시들 역시 나중에는 또 어떤 변화가 생길지 모른다. 그러나 사전은 이런 말들까지 담아 쌓아 가는 기록의 매체이다. 더 이상 쓰이지 않는 말이나 뜻이어도 사전에 실릴 당시의 언어 현상을 담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완전히 빼 버리지 않는다. 게다가 종이책 형태의 기존 사전에는 지면의 제한이 있어 무엇을 싣고 뺄지 고민했지만, 요즘의 웹 사전에는 고민 없이 거의 모든 것을 담아둘 수 있게 되었다. 사전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 주는 매체이며, 언젠가는 과거가 될 미래를 준비하는 매체이다. 시간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어도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려면, 지금은 낯선 말도 사전에 담아 두고 찾아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글: 이유원(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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