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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2010년에 보낸 우리말 편지입니다.
[구제역]
안녕하세요.
점심 맛있게 잘 드셨나요?
오늘 아침 7:36에 KBS2에서 진행자가 유자를 들고 "피로회복에 좋다"고 했고, 자막에는 '피로해소에 좋다'고 나왔습니다. 왜 '피로회복'이 입에 붙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피로해소, 원기회복이라는 바른말을 두고 말도 안 되는 '피로회복'을 못 버리는지요. 그놈의 '피로'는 '회복'해서 어디에 쓰시려고... ^^*
아침 뉴스에 보니 경북에서 구제역이 또 나타났군요. 걱정입니다. 이번에도 아무것도 모른 채 많은 동물이 죽어나가겠네요.
뉴스에서 '살처분'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낱말은 국어사전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네이버 뉴스에서 살처분을 뒤져보니 13,006개의 기사가 나오네요.
이 '살처분'은 죽일 살(殺 ) 자와 "처리하여 치움"이라는 뜻의 처분을 합친 낱말입니다. 게다가 처분은 處分(しょぶん[쇼분])이라는 일본 낱말에서 왔습니다. 굳이 뜻풀이하자면 "죽여 없앰" 정도 되겠죠.
정부에서 먼저 썼는지 언론에서 먼저 썼는지는 모르지만 살처분은 좀 껄끄러운 낱말입니다.
중앙일보에서는 '살처분'이란 말보다는 '도살 매립' '도살 소각' 따위로 풀어쓰는 게 좋겠다고 하고,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2542383 농식품부에서는 '강제 폐기'로 바꾸자는 법안을 내놓은 상태라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도 맘에 안 듭니다. 그냥 '죽여 없앰'이라고 쓰면 안 되나요? 살처분이나 도살 매립, 도살 소각, 강제 폐기...... 뭐가 다르죠? 꼭 이렇게 한자로 낱말을 만들어야 하나요?
바로 이럴 때, 우리말에 없는 낱말을 만들어야 하는 이런 경우에, 정부와 언론이 신중해야 합니다. '노견' 대신 '어깨길'을 만들 생각을 하지 말고, '갓길'을 찾는 데 더 힘을 써야 합니다.
학자들이 머리 맞대고 알맞은 낱말을 찾거나 만들어야겠지만, 저라면, '묻어 없앰'이나 '죽여 없앰'을 쓰겠습니다.
좀 다른 말이지만, 대부분의 의대에는 동물 위령비가 있습니다. 사람의 병을 치료하는 기술을 만들면서 실험용으로 쓴 동물들의 넋을 위로하고자 만든 비입니다. 미안한 말이긴 하지만, 그렇게 죽어간 동물들은 인간을 위해 기술이라도 발전시켰죠. 이번에 구제역이 왔다고 그 둘레 몇 km 안에 산다는 까닭만으로 죽어간 소나 되지는......
저는 오늘 하루만이라도, 아니 편지를 쓰는 지금 이 순간만이라도 죄없이 죽어간 동물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