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했던 유년의 추억이 깃들어 있는 구멍가게, 전국 구멍가게를 20여년 동안 찾아 다니며 펜화로 옮긴 이미경 작가의 그림과 글을 엮어 놓은 책이다.
구멍가게 대부분에 나오는 평상과 담배 표지판을 보면서 그 때에는 지나가다 쉬어 가기도 하고, 담배 심부름도 다녔던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지금은 편의점과 대형마트들에 밀려 점점 사라져 다시 찾아보기는 힘들지만 그림으로나마 볼 수 있어 좋았고, 직접 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아쉬웠던 점은, 구멍가게와 주인에 얽힌 이야기보다는 작가의 회상이 많았다는 점과 가게 위주로 그리다보니 주위가 없이 휑해 보여 외톨이 같은 느낌과 더불어 세상과 동떨어져 혼자만의 세계의 갇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구멍가게는 동네가게들과 함께 있을 때 더 다정해 보이는데 주위 배경은 빼고 가게만 그리다보니 웬지 어색해 보였다. 거의 모든 사진에 비슷하게 나오는 나무들은 너무 인위적인 느낌이 들었으며, 안에 진열되어 있는 상품들 모습도 함께 그렸으면 더 푸근해 보이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내 그림엔 평상이 단골로 등장한다. 평상은 함께 앉는 것이다. 그리고 누구나 앉을 수 있는 자리다. 나눠 앉을 수도 있고 둘러앉을 수도 있고 누울 수도 있다. 누군가의 자리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어서 어제 내가 앉았던 자리에 다른 사람이 앉는다고 뭐라 할 수도 없다. 또 사람이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유연하게 쓸 수 있는 자리다. 낯선이들과 어우러져 앉아도 어색하지 않다. 평상은 나눔의 자리다. 가게 앞에는 평상이 하나씩 있다. - 88쪽 -
계절에 따라 겉옷을 갈아입는 구멍가게 풍경. 꽃이 피고 녹음이 짙어지고 산이 붉어지고 시린 가지 위 잔설이 날리고……. 구멍가게의 사계를 그리다 보니 작업실 벽면은 매일매일 봄, 여름, 가을, 겨울이다. - 116쪽 -
得之本有 失之本無 득지본유 실지본무
얻었다고 하나 본래 있었던 것이고, 잃었다고 하나 원래 없었던 것이다.
- 170쪽 -
가게 안은 만물 백화점처럼 갖가지 물건이 가득했다. 언제 올지 모르는 손님을 위해서라도 이것저것 다 갖춰야 하는 게 점방 하는 사람의 도리라 하셨다. 구석에 앉아 먼지 쌓이고 빛바랜 물건들은 저 자리에서 얼마를 기다리며 늙어버렸을까? - 199쪽 -
오랜 세월 한자리를 지켜온 구멍가게와 주인 어르신을 만나면서 삶을 대하는 한결같은 모습을 보았고, 그로 인해 나 또한 조금씩 바뀌어 갔다. 빠를게 변화하는 시대에 ‘한 우물 파는 일’보다는 다양한 경험과 시도를 하는 것이 많은 이들이 말하는 성공적인 삶에 가까이 가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일을 오랫동안 이어 온 삶에서는 감히 흉내낼 수 없는 연륜과 감동이 풍겨 온다. - 204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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