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람하는 ‘챌린지’란 말, 그러나 ‘챌린지’는 틀린 ‘일본식 영어’
- ‘일본식 영어 베끼기’를 그만둬야 할 이유
공공기관들의 부끄러운 ‘챌린지’ 홍보
우리 주변에서 ‘챌린지’라는 말을 최근 들어 부쩍 많이 사용하고 있다. 특히 전국 지자체들이 앞다퉈 각종 행사에 ‘챌린지’란 말을 붙여 홍보에 나서고 있다.
창녕군은 오는 6일부터 30일까지 25일간 모바일 걷기 앱 워크온을 활용해 ‘책 읽는 창녕, 독서하는 군민’ 운동 활성화를 위한 걷기 챌린지를 운영한다고 밝혔다(2021년 9월 3일).
그림 1. 걷기 챌린지 홍보물
(출처: 창녕군청)
경기도의회 의장이 3일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인권보호와 안전보장을 촉구하는 ‘세이브 아프간 위민(Save Afghan Women)’ 챌린지에 동참했다(2021년 9월 6일).
무안군은 최근 자살에 대한 인식 변화와 생명존중 문화 확산을 위해 생명사랑 챌린지 캠페인에 동참했다고 6일 밝혔다(2021년 9월 6일).
공공기관들이 앞다퉈 ‘챌린지’란 용어를 내세우고 있는 것은 우리말을 사용하지 않고 외국어 단어를 남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다. 지자체를 비롯한 공공기관들의 외국어 단어 남용은 계속 지적되어 온 문제다.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지점이다.
더구나 너도나도 앞다퉈 쓰는 이 ‘챌린지(challenge)’는 오용되고 있는 말이다. 본래 영어 ‘챌린지’는 대부분 긍정적인 의미에서는 사용되지 않는다. ‘챌린지’의 어원인 라틴어의 원래 의미는 ‘중상모략’ 혹은 ‘비방’이다. 당연히 그로부터 나온 ‘챌린지’ 역시 부정적 의미를 지닌다. 영미권에서 ‘챌린지’라는 말은 ‘커다란 난관’이나 ‘곤경’ 또는 ‘이의 제기’를 뜻하는, 긍정적인 의미가 없는 단어다. 우리 주변에서 남발하는 것처럼 “좋은 목표나 꿈에 도전한다”와 같은 의미로 사용하지 않는다.
동사로서 ‘챌린지’는 사람에게 도전한다는 용법으로 사용되며, 따라서 항상 목적어가 있어야 한다. 명사 ‘챌린지’는 ‘매우 어려운 시련’이라는 뜻다.
그림 2. ‘챌린지’는 원래 ‘커다란 난관’이나 ‘곤경’ 등 부정적인 뜻을 지닌다.
영어 ‘챌린지’는 본래 ‘긍정적인’ 의미를 담을 수 없는 말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 ‘챌린지’란 말이 바로 일본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는 일본식 영어라는 사실이다. 일본에서 ‘틀리게’ 사용하고 있는 ‘챌린지’란 일본식 영어를 한국 사회가 그대로 ‘베껴서’ 사용하고 있다. 이런 부정확한 일본식 영어를 우리 사회에 들여와 ‘홍보용’으로 이용하는 것은 참으로 어이없고 부끄러운 일이다.
특히 공공기관이 앞장서서 ‘챌린지’라는 말을 쓰는 일은 민족의 자존심과 주체성의 차원에서도 크게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일제 강점기에 왜 일제는 우리말과 글을 송두리째 빼앗고 없애려고 광분했으며, 우리 선열들이 왜 그토록 우리말과 글을 지키려 노력하고 헌신했는가를 이 시점에서 깊이 성찰해야 한다.
TV에서 출연자들이 “도전!”을 외치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다. 그간 일본 방송을 모방해 온 우리 방송계의 관행으로 미뤄볼 때 이 장면 역시 일본 방송에서 쓰는 ‘챌린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틀린’ 일본식 영어, ‘챌린지’란 말 이제 쓰지 말아야 한다.
‘프리토킹’ 소통? 역시 ‘잘못된 일본식 영어’
수원시는 11일 오후 2시부터 수원시청 중회의실에서 ‘2030 소통 프리토킹’를 개최해 청년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청취했다(2021년 5월 11일).
그림 3. ‘2030 소통 프리토킹’ 행사 모습 (출처: 수원시청)
한편, ‘프리토킹’ 역시 잘못 사용되고 있는 일본식 영어다. ‘프리토킹’이란 말은 없으며, ‘프리 컨버세이션(free conversation)’이 정확한 영어 표현이다. ‘자유토론’이란 말을 놔두고 왜 하필 ‘틀린’ 일본식 영어를 쓰는가! 소통을 내세우고 있지만 이렇게 잘못된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오히려 소통을 방해하게 된다. 우리 사회 2030 청년들을 대상으로 공공기관이 하는 행사이기 때문에 더욱 아쉽다.
일본식 영어는 대부분 본래 용어가 지닌 본디 뜻, 즉 원의(原義)에서 벗어나 자의적으로 사용됨으로써 의사소통을 교란한다. 올바른 언어 사용은 사회 구성원들의 일상을 이끄는 기본이며 토대다. 그 기본과 토대가 뒤틀리게 되면 전체 사회 구성원의 정체성을 훼손한다. 나아가 국제 차원의 정상적인 의사소통도 가로막고 왜곡한다. ‘일본식 영어 베끼기’를 그만둬야 할 이유다.
소준섭(전 국회도서관 조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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