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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싱크홀’의 제목이 ‘땅꺼짐’이었다면?

튼씩이 2022. 3. 10. 08:00

외래어나 외국어를 우리말로 바꾸자는 주장에 외래어나 외국어를 우리말로 바꾸면 원래 의미가 잘 와닿지 않는다는 이유를 대는 일을 흔히 접하곤 한다. 그러나 ‘텔레비전’과 ‘전화’를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전화’도 우리 고유어는 아닐 뿐만 아니라 근대 문물의 수용 과정에서 우리의 주체성이 발현된 경우도 아니므로 적당한 예가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텔레폰’이 아니어서 그 의미가 잘 와닿지 않는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를 보면 외래어나 외국어를 우리말로 바꾸는 순화 작업(순화 작업의 결과물인 ‘순화어’를 더 쉽게 ‘다듬은 말’이라고 하기도 한다. 즉 ‘다듬은 말’은 ‘순화어’를 ‘다듬은’ 말이기도 하다.)은 순화어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말을 꾸준히 사용하는 데 성패가 달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말을 직접 사용하는 언중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결국 잘 만들어낸 순화어도 언중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정착할 수 없어 생명력이 다하는 것이다. 따라서 언중들이 다듬은 말을 잘 선택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널리 알리는 일은 다듬은 말의 정착 여부를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 개봉한 영화 ‘싱크홀’은 이러한 점에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비전문가라 작품의 내용에 대한 평가는 어렵지만, 이 영화는 200만 명 이상이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한 것으로 보도된 바 있다. 코로나19 상황의 위중성을 생각한다면 이 정도의 수치는 흥행 성적표로는 매우 훌륭하다는 데 이견이 없을 것 같다.

 

우리의 관심은 외래어나 외국어의 순화이므로 이러한 관점에서 영화를 살펴보자면, 특정 지역이 어느 날 갑자기 땅 밑으로 꺼지는 현상을 ‘싱크홀’로 표기하여 제목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 관심이 간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영화 속에서 이를 속보로 보도하는 뉴스 장면에서는 ‘싱크홀’이 아니라 ‘땅꺼짐’으로 보도하였는데, 이 장면에 주목한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을 듯싶다. 이는 곧 언론에서는 ‘싱크홀’을 ‘땅꺼짐’으로 순화하여 사용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제목이 노출된 정도에 비할 수 없이 순화어가 노출된 찰나의 순간을 보며 현재 우리의 다듬은 말 정비 사업이 이러한 비대칭적 상황에 놓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떨쳐 버리기 어려웠다.

 

지금 이 순간에도 국립국어원을 비롯한 많은 유관 단체들에서 외래어나 외국어 순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의 손에서 탄생한 순화어는 그 자체로는 아직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없다.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일차적으로 전문가의 손에서 탄생한 순화어는 일반 언중들이 사용하면서 비로소 온전한 생명력을 가지게 된다. 사실 이 과정에서 웃지 못할 일들이 생기기도 했다. 과거의 일이기는 하지만 일반 언중들이 선택하여 탄생한 순화어들이 정작 일반 언중들의 외면으로 정착하지 못한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핫팬츠’에 대한 순화어로 선정된 ‘한뼘바지’가 이의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한다. ‘한뼘바지’는 언중의 관심을 끄는 데는 성공했지만 널리 쓰이기에 알맞은 조건을 충족시키지는 못한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300개 정도의 순화한 말들 가운데 《요긴하게 쓸 만한 다듬은 말 61개》에 ‘한뼘바지’가 들지 못했다는 사실은 이러한 점에서 의미하는 바 크다. ‘USB메모리’를 ‘정보막대’로 순화한 것도 언중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이제는 ‘막대’ 모양이 아닌 ‘USB메모리’가 적지 않아 ‘정보막대’라는 다듬은 말을 쓰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은 아이러니하기까지 하다. ‘인터넷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즐기는 노년층’의 의미인 ‘웹버족’에는 ‘실버’가 들어가는데 이를 축자적으로 반영하여 ‘은빛누리꾼’이라고 바꾼 것도 역시 선택을 받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 우리말에서 ‘은빛’은 아직 ‘노년층’을 의미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간과하였기 때문이다.

 

 

그림 2. 다듬은 말 중에서도 언중의 선택을 받은 말이 살아남는다.

 

이들에 비하면 ‘싱크홀’을 다듬은 말인 ‘땅꺼짐’은 잘 만들어진 것이면서 잘 정착할 수 있는 요건을 갖추었다고 판단된다. 원말에 ‘홀’이 뒤에 있으니 ‘꺼진구멍’처럼 축자적으로 바꾸는 것도 가능하지만, “싱크홀 현상이 발생했다.”처럼 쓰이는 경우 ‘싱크홀 현상’을 ‘꺼진구멍 현상’으로 바꾸어 쓰는 것은 어색하다. 따라서 ‘꺼진구멍’보다 ‘땅꺼짐’이 더 낫다고 할 수 있다. ‘싱크홀’이나 ‘꺼진구멍’에는 꺼진 대상인 ‘땅’이 드러나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이를 드러낸 ‘땅꺼짐’이 의미 전달의 측면에서도 유리한 측면이 있어 보인다. 무엇보다 ‘싱크홀’과 비슷하면서도 차이가 나는 ‘포트홀(pothole)’을, ‘땅꺼짐’을 참조하여 ‘땅파임’로 순화한 것도 서로 짝이 맞아 오히려 원어보다 좋은 것 같다. 물론 그 의미를 더욱더 잘 전달하기 위해 ‘땅꺼짐’의 ‘땅’ 대신 ‘도로’로 바꾸는 정도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앞서 순화어의 성패가 정착에 달려 있다고 강조하였는데 사실 ‘땅꺼짐’은 그 나름대로 사용 빈도가 높은 순화어에 해당한다. 그러나 만약 200만 명 이상이 관람한 영화 제목 ‘싱크홀’이 ‘땅꺼짐’이었다면 어땠을까?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땅꺼짐’이라는 순화어를 정착시키는 데 이보다 더 큰 홍보 효과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가장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질문을 바꾸어 영화의 제목을 ‘싱크홀’이 아니라 ‘땅꺼짐’이라고 했다면 관객 수에 영향이 있었을까? 너무 이상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겠지만 이렇게 영화 제목을 바꾸었을 때 더 많은 관객이 찾는 날이 왔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가져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점점 더 많이 쏟아지는 외래어나 외국어를 다듬는 과정에서부터 ‘정착’을 염두에 두는 발상의 전환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최형용 /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