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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연결망 시대의 연결터 또는 이음터

튼씩이 2022. 3. 11. 07:58

인터넷이 공기가 되어버린 시대에 갑작스러운 접속의 끊김은 사람들에게 대혼란을 안겨 준다. 특히 코로나 대유행으로 비대면 수업을 듣고 비대면 시험을 보아야 하는 시대에, 접속 불량이나 접속 끊김은 학생들의 새로운 불안 거리가 되었다. 시험을 보다가 갑자기 인터넷이 먹통 되면 당혹스러움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가 된다. 물론 불안은 학생들만의 몫이 아니다. 인터넷 연결망(network)을 통해 각종 정보를 주고받아야 작업을 하거나 영업을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도 불안 거리이긴 마찬가지이다. 갑자기 공기가 사라져 숨을 쉴 수 없게 된 것처럼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이처럼 대부분 사람이 휴대전화 단말기로 접속하는 인터넷 환경을 당연하게 여기고 살아가는 시대가 되면서,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나 서로 연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일상적인 연결과 접속의 시대가 된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사람들을 잇는 가상현실의 연결 공간들 가운데, 특정한 목적으로 서로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연결해줌으로써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모여들게 된 공간들은 언제부턴가 플랫폼(flatform)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그림 1. 플랫폼의 가장 익숙한 용법은 기차역 승강장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영어에서 플랫폼은 다양한 의미로 사용된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용법은 기차역 승강장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영어에서 플랫(flat)은 평평하다는 의미이고, 폼(form)은 모양새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기차에서 오르내리는 평평한 모양의 승강장을 플랫폼이라 부른다. 한편 이런 평평한 기반은 어느 컴퓨터에서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작동하게 하는 공통의 기초라는 인상을 주기도 하는데, 이때 운영체제로서의 플랫폼은 ‘공통운영기반’으로 번역할 수 있겠다.

 

한편 게임산업 분야에서는 개인용 컴퓨터에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이동식 단말기, 게임용 기기에서도 작동하여 어디에서나 어느 기기를 통해서도 똑같은 게임에 접속하여 즐길 수 있도록 지원하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는데, 이것을 멀티 플랫폼이라 부른다. 이것은 좀 길지만, 다중 공통운영기반으로 번역할 수 있겠다.

 

공통운영기반과 유사한 의미의 플랫폼이라는 용어는 물론 컴퓨터에서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자동차 회사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차량이 공유하는 기본 골격을 플랫폼이라 부른다. 공통의 설계를 통해 차바퀴와 차체를 연결하는 현가장치(서스펜션), 주행 방향을 조작하는 조향장치(스티어링), 원동기(엔진)의 동력을 차바퀴에까지 전달하는 동력전달장치(파워트레인) 등 다양한 부품들을 공유하게 되면, 약간의 변형을 통해 다양한 모형의 자동차를 개발할 수 있고 기술적 완성도도 높일 수 있어서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면서도 좋은 품질의 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게 된다. 회사마다 공유의 범위나 방식은 달라질 수 있지만, 이렇게 공통의 설계를 통해 플랫폼을 갖추면 자동차 생산에서 다양한 이점을 누릴 수 있는데, 이때 플랫폼은 자동차 생산의 ‘공유작업기반’이나 ‘공통작업기반’으로 부를 수 있겠다. 좀 줄여서 부른다면 ‘공유틀’이나 ‘공통틀’이라는 표현도 가능하다.

 

한편 오늘날 점점 널리 퍼지고 있는 플랫폼의 용법은 플랫폼 기업, 플랫폼 노동, 플랫폼 자본주의와 같은 것들이다. 여기서 플랫폼은 인터넷으로 연결된 가상공간이라는 뜻인데, 플랫폼 기업은 가상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연결 활동을 중요한 이윤 획득의 기반으로 삼고 있지만, 플랫폼 노동은 앱을 통해 가상공간에서 연결되는 거래를 현실 공간에서 실현하는 활동이다. 그리고 플랫폼 자본주의는 플랫폼을 이용한 경제활동이 사회적으로 확산되는 자본주의를 일컫는 말이다.

 

 

그림 2. 인터넷의 가상공간으로서 플랫폼은 사람들을 서로 연결하는 공간이다.

 

사람들은 플랫폼에서 서로 소통하려는 개인과 개인, 사업자와 사업자, 판매자와 구매자 등 다양한 방식으로 만날 수 있다. 카카오톡, 네이버밴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텔레그램 등은 다양한 욕구를 지닌 개인들을 필요에 맞춰 서로 이어주는 장치들이 된다. 각종 음식 배달 앱들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가상공간에서 음식 판매업체들을 모아 홍보하는 동시에 소비자들의 이용을 유도하게 되면 판매자와 소비자의 규모가 점점 커지게 되는데, 소비자들이 원하는 업체를 찾아 편리하게 주문할 수 있는 앱을 개발하고 개선해나가면, 이 공간은 하나의 거대한 플랫폼이 된다.

 

카카오택시나 네이버택시는 택시 플랫폼의 또 다른 형성 사례를 보여준다. 그들은 누리소통망(SNS), 관문(포털) 서비스, 전자우편 서비스 등을 통해 이용자들을 모으고 지도검색 및 운전 안내 서비스를 제공한 후, 이들이 택시 운전자와 승객으로 서로 만날 수 있도록 하는 가상공간과 앱을 무료로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 앱을 이용하는 택시 운전자와 승객이 늘어나면서 택시 이용이 서로 편리해지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앱이 없으면 택시를 이용하기가 불편해질 정도로 거대한 택시 플랫폼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플랫폼들은 마치 기차역 승강장이 가상공간으로 옮겨진 듯하다. 기차역 플랫폼에서는 이곳저곳에서 온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또 다른 곳으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편리하게 옮겨 다닐 수 있다. 그래서 평평한 공간으로 만들어놓았다. 이처럼 서로 다른 출발지에서 온 기차 승객들이 서로 다른 목적지로 가는 기차로 옮겨 탈 수 있도록 서로 이어주는 곳이 기차역 플랫폼의 중요한 기능이다. 이것은 가상공간에서 곳곳의 판매자들과 곳곳의 구매자들, 곳곳의 택시 운전자들과 곳곳의 승객들을 서로 이어주는 모습과 흡사하다. 그래서 인터넷의 가상공간으로서 플랫폼은 사람들을 서로 연결하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플랫폼을 한글문화연대에서는 ‘이음마당’, 국어원에서는 ‘거래터’라는 말로 대체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그런데 플랫폼 노동이나 플랫폼 기업을 이음마당 노동, 이음마당 기업으로 부르는 것은 좀 어색하며, 거래터로 부르는 것도 단지 거래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 사용이 제한적이다. 주변의 의견을 들어보면, 기능의 측면에서는 연결, 이음, 연계, 중계, 거래라는 의미를, 공간의 측면에서는 터, 장, 마당, 창구라는 의미를 떠올리는데, 이들 중에서 ‘연결’이나 ‘이음’과 ‘터’를 결합한 말이 좀 덜 어색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을 서로 이어준다는 의미에서 ‘연결터’, ‘이음터’ 등의 표현을 쓰는 것이 일반 대중들에게도 의미를 전달하기가 좀 쉽겠다는 생각이 든다. 플랫폼처럼 세 음절이라는 점에서 발음이 덜 어색해 보이기도 한다.

 

지금 플랫폼이라는 표현이 그 의미가 모호한 가운데 이미 다양하게 널리 사용되고 있어서, 쉽지 않은 말의 주도권 다툼이 벌어지겠지만 이제 ‘연결터/이음터 노동’, ‘연결터/이음터 기업’, ‘연결터/이음터 자본주의’라는 표현을 플랫폼의 대안으로 적극적으로 사용해보면 좋을 듯하다. 일상에서 사람들이 편하게 사용하면서 많은 사람의 입에 붙으면 좀 더 널리 통용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정태석(전북대학교 사범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