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로 진출한 한국인 운동선수들이 여러 분야에서 맹활약 중이다. 한국 출신 선수가 팀의 승리를 이끈 순간, 모두가 환호하며 오늘의 주인공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무슨 말씀을요, 실력이 부족한데 노력이라도 해야죠.”라고 겸손히 인사한다. 개인의 성취를 축하해 주는 서양 문화권에서 이 인사말은 과연 적절했을까? 다들 기뻐하며 들뜬 자리에서 스스로를 낮추는 이런 응답은 종종 승리에 도취된 팀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다고 한다. 이런 경험담은 스포츠계뿐만 아니라 유학생으로 간 한국인에게서도 많이 듣는다. 아무리 좋은 뜻으로 한 말이라도 사회문화적으로 맞지 않으면 제구실을 못하는 법인데, 한국 사회는 지금까지 외국어 학습 분야에서 말의 쓰임을 어휘 몇 개 외우기보다 소홀히 해 온 것이 사실이다.
“선생님, ‘안녕하세요’와 ‘안녕하십니까’는 어떻게 달라요?” 초급반에서 1주일 안에 꼭 나오는 질문 중 하나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다중언어 다중문화 환경을 기반으로 한 국가에서 온 학생들이 이 질문을 더 많이 한다. 말의 규칙보다 말의 사용에 관심이 많을 때 나올 수 있는 질문이다. 특히 인사말은 그 나라 또는 지역에서 소통되는 방식과 다르게 쓰거나 잘못 알아듣는다면 소용이 없다. 영국에서 방문 교수로 머물 때의 일이다. 아침에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나올 때, 이웃들이 나를 보며 “Are you alright?”이라 한다. 내가 배운 미국식 영어는 ‘How are you?’이었고, 그러면 “I’m fine. And you?”라고 공식처럼 응답하려 했던 나는 당황스러웠다. 혹시 저들에게 내가 초라하거나 아파 보이나 싶어서 다음 날은 화장을 하고 나서기도 했다. ‘너 괜찮아?’로 해석되는 그 말이 그 지역의 인사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몇 달을 살고 난 이후였다. 타국에 사는 아시아계 여성으로서 외국어책에서 배운 것과 다른 상황에 놓이자, 불현듯 같은 형편에 놓인 한국 거주 이주 여성이 눈앞에 겹쳐졌다.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 학습자는 한국의 인사말을 보고 들으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처음에는 ‘안녕’이란 말 하나에 안심하는 모양새이다. 아침에도 점심에도 때에 상관없이 ‘안녕하세요?’ 하나면 된다니 부담이 적다. 웬만한 상황은 표현의 팔방미인인 ‘괜찮아요’로 넘어갈 수 있다. 그런데 한국 생활을 하다 보면 사전으로 해석되지 않는 여러 인사말에 놀라게 된다. 한국인은 식당에서 나오는 사람을 보면서도 “밥 먹었어요?”라고 묻는다. 그럼 식당에서 무엇을 했단 말인가? 길에서 저기쯤 가고 있는 사람을 보면서 하는 인사가 “어디 가세요?”란다. 같이 일하다가 먼저 나가면서 남아 있는 사람에게 위로차 하는 인사가 “그럼 수고하세요.”이다. 물건을 구경하다가 발길을 돌리면서 “나중에 올게요.”라고 하고, 그 결과를 거의 아는 주인은 “둘러보시고 오세요.”라고 한다. 그리고 애써 준비한 선물을 전해 주면서 “이거 별거 아닌데요.”라고 하니 이쯤 되면 인사란 책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 정도이다.
사실 인사는 친교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서 말의 규칙이나 원뜻이 크게 중요하지 않을 때가 많다. “밥 먹었어요?”가 그 대표적 예이지만, 한국어 학습자는 잠시 생각하다가 “아뇨, 오늘은 햄버거 먹었어요.”라고 답하는 경우까지 있다. 왜 남의 식사를 챙기는지, 안 먹었을 때는 어떻게 답해야 하는지 곤란하다는 반응도 보인다. 모처럼 마주친 유학생에게 헤어지는 아쉬움을 담아 “다음에 밥 한번 같이 먹어요.”라고 인사하면, 그날부터 그 학생은 전화기만 보고 있다고 한다. 그 경험으로 한국 사람들이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다고 하거나 아예 약속 개념이 없다고 오해하기도 한다. 친근함을 담은 헤어질 때의 인사로, 어떤 문화권에서는 자신의 집에 초대를 하고, 또 다른 문화권에서는 차나 커피를 한잔하자며 빈말을 전한다. 이런 빈말이 아예 없는 언어와 비교해 보면, 이 또한 인사가 보여주는 문화의 한 부분이다.
새하얀 눈밭에서 죽은 연인을 그리워하며 잘 지내고 있냐고 외치던 일본 영화가 있다. 그 영화의 제목은 몰라도, 건강히 지내냐는 일본어 표현 하나면 누구나 그 영화를 떠올린다. 흔히 생각하는 일본의 정서와 잘 맞는 장면을 연출했기 때문이리라. 이처럼 사용 상황에 꼭 맞는 인사말은 그 국민의 정서, 그 사회의 문화를 보여준다. 그래서인지 한국 생활을 좀 했다는 외국인들은 밥 먹었는지 물어보는 말이 자신에 대한 이웃의 호감과 관심이라는 것을, 안 사고 나가면서 나중에 다시 올 거라는 표현은 주인에 대한 배려의 말이었다는 것을 알아 간다.
얼마 전 아부다비 국제수영대회에서 세계 신기록이 세워졌다. 텔레비전에는 출렁이는 수영장을 배경으로 기록의 주인공인 한국 선수가 현장에서 인터뷰하는 장면이 나왔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외국인 진행자는 마이크에 대고 “소리 질러!”라고 한껏 외쳤다. 어딘가에서 제대로 배운 것 같은 자신 있는 모양새였다. 이전에는 외국인이 ‘안녕하세요’란 한마디만 해도 공연장이 환호하며 술렁거렸는데, 이제는 아부다비에서 ‘소리 질러’도 듣는 순간이 왔다. 말이 제 쓰임대로 상황에 맞게 잘 제시되면 나의 학습자도 저 사회자처럼 마음껏, 무엇보다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한국어 교사는 언어에다가 문화를 담아 전해야 한다. 한국어 교사는 학습자가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격식 있는 표현을 자연스럽게 쓰도록 관심을 기울인다. 그래서 우리는 말의 그릇과, 그 그릇이 놓인 잔칫상이 소통의 장에 잘 맞는지 늘 고민하며 살핀다.
이미향(영남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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