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https://www.youtube.com/)’에서 한 영상이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다. 화제가 된 영상을 보면 등장하는 것이라고는 흰 종이와 펜, 그리고 펜을 쥔 손뿐이다. 그런데 무려 8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 영상을 클릭했고 각자의 블로그로 영상을 퍼 나르거나 게시판에 댓글을 남겼다. 이 단순한 영상에 어떤 특별한 것이 있어서 세계인들의 이목이 집중된 걸까?
영상은 캘리그래피(Calligraphy) 고수로 알려진 세바스찬 레스터(Sebastian Lester)가 대중들에게 익숙한 상호와 로고를 그대로 재현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레스터는 의류 상표 ‘갭(GAP)’을 시작으로 개성 넘치는 서체가 인상적인, 영화 제목들과 각종 의류와 스포츠 용품 상호를 마치 기계로 찍어 내듯이 모사해서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이처럼 글씨나 글자를 아름답게 쓰는 기술을 캘리그래피라고 한다. 하지만 캘리그래피는 단순히 멋진 글씨체를 모사해 내는 능력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캘리그래피의 진정한 멋과 아름다움을 만나 보자.
멋글씨 예술에 푹 빠지다
‘캘리그래피’라는 단어는 ‘아름다움’을 뜻하는 그리스어 ‘칼로스(kallos)’와 ‘글쓰기’를 뜻하는 그리스어 ‘그라페(graphẽ)’에서 비롯된 말이다. 처음에는 ‘글씨나 글자를 아름답게 쓰는 기술’에 국한되어 있던 의미가 요즘에는 ‘아름답고 새로운 서체를 고안하여 다양한 도구를 사용해서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글씨를 쓰는 예술’로 확장됐다. 뿌리는 서예에 두고 있지만 획일적 아름다움이 아닌 새로운 서체를 고안하는 데 무게가 실리고, 붓 이외에도 여러 가지 도구를 자유롭게 사용하게 되면서 하나의 예술로 자리매김했다. ‘캘리그래피’는 우리말로 ‘멋글씨’ 또는 ‘멋글씨 예술’이라고 부른다.
멋글씨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호응은 매우 뜨겁다. 각종 문화원에서는 멋글씨 강좌를 열고 있으며, 멋글씨 서적들이 물밀 듯이 출판되고 있다. 연예인들도 멋글씨 사랑에 푹 빠졌다. 음반을 제작할 때 노랫말을 멋글씨로 써서 홍보하거나 자신이 직접 쓴 멋글씨를 광고에 싣기도 한다. 또 멋글씨 강사를 부업으로 삼거나 멋글씨로 본인의 청첩장을 꾸민 연예인도 있다.
멋글씨는 각종 도서나 소품, 영화, 드라마, 기업 등을 상업적으로 홍보할 때도 두루 활용되고 있다. 특히 유행에 민감한 분야일수록 멋글씨 예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멋글씨가 식상하지 않은 멋과 감성으로 대중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멋글씨 예술의 매력
대중을 사로잡은 멋글씨 예술의 매력은 무엇일까? 멋글씨의 장점은 첫째,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다. 멋글씨를 쓰는 데 필요한 준비물은 매우 간단하다. 종이(종이도 아무 제한이 없다) 한 장에 붓이든 연필이든 글씨를 쓰는 사람 마음에 드는 필기구만 있으면 된다. 둘째, 멋글씨를 쓰는 데 정해진 방법이 없다는 점도 매력적인 부분이다. 나만의 느낌과 감성을 글씨에 담기만 하면 그것이 곧 멋글씨이기 때문이다. 굳이 학원을 다니거나 멋글씨 강좌를 이수하지 않아도 독학으로 충분히 즐길 수 있다.
멋글씨가 사랑받는 세번째 이유는 멋글씨가 ‘나만의 글씨’이기 때문이다. 멋글씨는 나만의 매력을 표출하는 단 하나의 예술 작품이자, 나만의 이야기나 감성을 세상에 내보이는 창구 역할을 한다. 꼭 긴 글을 절절히 쓰지 않아도 이미 글씨체에 특별한 분위기와 느낌이 가득 담겨 있기 때문에 짧은 글로도 그 상징성이 충분히 표현된다. 즉, 멋글씨는 나만의 감성으로 타인과 소통하는 통로가 되는 것이다.
‘필통(Feel通)’에서 멋글씨 강좌를 진행하고 있는 김지은 멋글씨 작가는 멋글씨 예술의 또 다른 매력으로 ‘한글의 아름다움을 목격할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그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평생에 걸쳐 한글을 읽고 쓰면서 한글을 쉽게 접하고 다루지만, 정작 한글이 가진 아름다움과 과학성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려 들지 않는다.”라고 지적하며 “하지만 멋글씨는 사람들에게 한글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살펴보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라고 말했다.
멋글씨는 살아 생동하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 멋글씨의 매력에 빠지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활자에 갇혀 있던 글이 내 손끝에서 춤을 추는데, 어찌 아니 가슴이 뛸까?
자문: 김지은(멋글씨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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