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배우자/쉼표,마침표(국립국어원 온라인소식지)

재미있는 우리 속담 -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

튼씩이 2022. 3. 24. 12:52

 

속담은 사람들이 살면서 경험적으로 인식하는 내용을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과정을 통해 갈무리된, 공동체적 지혜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의 입을 통해 연행되거나 전승되는 모든 종류의 텍스트에 속담이 쉽게 끼어 들어 가곤 합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판소리’가 있지요.

 

판소리는 양반가의 사랑방에서 향유되기도 하고 라디오나 레코드판에 실려 전승되기도 했지만, 연행과 전승의 핵심은 거리의 판놀음에 있습니다.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숱한 말과 노래와 이야기들이 광대들의 사설 엮음을 통해 판소리로 흘러들기도 하고 판소리의 유명한 대목이나 흥미로운 표현이 사람들의 입을 통해 다시 시정의 일상 문화 속으로 스며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판소리에는 일상적인 말의 문화가 남긴 흔적으로서, 다양한 속담들이 삽입되어 있습니다.

 

<심청가>에도 심 봉사가 갓 태어난 심청이를 안고 어르는 장면에 “외 붇듯 달 붇듯 잔병 없이 잘 자라나 일취월장하게 하옵소서.”라는 축원이 나옵니다. 아이가 무럭무럭 커 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사물의 변화를 비유한 “외 붇듯 달 붇듯 한다.”라는 속담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지요. 봉사 잔치를 향해 떠나던 심 봉사가 방아 찧던 아낙들에게 방아를 찧어 주는 대신 밥을 달라 청하는 대목에서도 “일포식도 재수”라는 속담이 나옵니다.

 

      삼십삼천 도솔천 신불 제석       삼신 제왕님네 화위 동심하여 다 굽어보옵소서 -중략-       삼신님 넓으신 덕택 백골난망 잊으리까?       다만 독녀 딸이오나       동방삭의 명을 주고 태임의 덕행이며       대순 증자 효행이며 길량의 처 절행이며       반희의 재질이며 석숭의 복을 주어       외 붇듯 달 붇듯 잔병 없이 잘 자라나       일취월장하게 하옵소서       심봉사 백배사례 하직하고       낙수교를 건너 녹수정을 지나 한 곳에 당도하니       여러 부인네들이 방아를 찧노라고 야단이것다 -중략-       “아, 방아만 찧어주면 고기 반찬에 밥도 주고 술도 주고 담배도 한 묶음 주지라우.”       “그것, 참 실없이 여러 가지 것 준다. 그럽시다 일포식도 재수라고, 한 번 찧어보지요.       그러나 여보시오 부인네들 망노이가라 하였으니       방아를 찧더라도 선소리를 맞어가며 찧읍시다.”

보성제 <심청가>, 성창순 씨 연행 사설

 

판소리 <수궁가>에는 숲 속 짐승들이 모여 나이 자랑을 하며 상좌 자리다툼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 부엉이가 까마귀를 누르기 위해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라는 속담을 앞세워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니 세상의 미운 놈은 너밖에 또 있느냐?”라고 소리치기도 합니다. 또 별주부가 토끼를 수궁으로 데려가기 위해 유인하는 대목에서 토끼의 삶이 얼마나 고단한지 사설을 늘어놓으며 토끼몰이에 황급히 도망가는 토끼 모습을 ‘선술 먹은 초군’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부엉이 허허 웃고,       네 암만 그런데도 심성 불측하야       열두 가지 울음으로 과부집 남게 앉어 울음으로 동할 적에       까옥까옥 또락또락 괴이한 음성으로 수절 과부 유인할 제       네 소리 꽉꽉 나면 세상의 인간들이 돌을 들어서 날릴 적에       너 날아가자 배 떨어지니 세상의 미운 놈은 너밖에 또 있느냐?       빈 통이나 찾어가지 이 좌석은 불길하다       들로 닫는 퇴끼 초동목동 아이들 몽둥이 들어메고       ‘들퇴끼 잡으러 가자’ 없는 게 호구리니       허둥지둥 도망갈 제 선술 먹은 초군이요       그대 간장 생각하면 백등 칠일 곤궁하던 한태조 간장       적벽강 추야월에 조맹덕 정신이라       짜룬 꼬리를 샅에다 찌고 층암절벽 석산 틈에 정신없이 도망갈 제       무슨 정으로 유산? 무슨 정으로 완월?

강도근제 <수궁가>, 임현빈 씨 연행 사설

 

판소리 사설 가운데 가장 많은 속담이 들어간 것은 가장 많은 인기를 누린 <춘향가>입니다. <춘향가>는 많은 사람이 사랑한 노래였던 탓에 노래를 부른 광대도 많고 그 광대의 숫자만큼 여러 종류의 사설로 전승되고 있습니다. <춘향가>의 이본異本에 따라 사설 내용도 큰 폭으로 달라지는데 어느 사설에서나 다양한 문맥에서 속담이 발견됩니다. 일상적인 말 문화 속에 빛나던 ‘탁월한 표현’과 ‘흥미로운 말장난’이 판소리 사설 곳곳에 스며들어 있지요. 다음 편에서 <춘향가>와 <흥보가> 사설을 살펴보겠습니다.

 

 

글_ 김영희 경기대학교 교양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