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배우자/쉼표,마침표(국립국어원 온라인소식지)

아 다르고 어 다른 우리말 - 국가와 나라,같은 듯 다른 쓰임새

튼씩이 2022. 3. 25. 08:00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막을 내렸다. 대통령 선거는 국정을 책임지는 국가의 원수를 뽑는 행위이다. 따라서 대통령에게는 국가 운영을 책임질 만한 자질이 요구된다. 또한 정부 부처를 비롯한 여러 집단 간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아우를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다. 국가는 매우 복잡다기한 구조물이므로 무엇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

 

우리는 국가를 흔히 나라라고도 부른다. 국가와 나라, 이 둘 사이에 근본적 개념 차이는 거의 없다. 실제로 우리 일상에서 두 단어는 구별 없이 사용될 때가 많다. 그렇다면 국가와 나라는 완전히 같은 말일까?

 

먼저 국가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국가’와 ‘나라’는 ‘일정한 영토와 거기에 사는 사람들로 구성되고, 주권에 의한 하나의 통치 조직을 가지고 있는 사회 집단’으로 풀이가 똑같다.

 

 

실제 쓰임새를 살펴보아도 ‘국가의 재정이 궁핍하다’와 ‘나라의 재정이 궁핍하다’에서 둘의 차이를 발견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국가와 나라가 완전히 같은 말은 아니다. 둘은 미묘하게 다르다.

 

가. 가깝고도 먼 [나라/국가], 일본
나. [나라를/국가를] 빼앗긴 백성
다. 철새는 때가 되면 따뜻한 남쪽 [나라로/국가로] 날아간다.

 

맥락을 살펴보면 ‘나라’는 일정한 범위의 땅이라는 의미에 가깝다. 그에 비해 ‘국가’는 정치 공동체로서의 집단, 조직이라는 점에 의미의 초점이 놓인다. 곧 나라는 감각이나 감성으로 포착할 수 있는 구체적 대상을 뜻하는 어감이 강하고 국가는 관념으로 접근할 수 있는 추상적 대상을 가리키는 어감이 강하다.

 

가령 일본은 우리에게 공간적으로는 가까워도 심리적으로는 먼 나라일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두고 ‘가깝고도 먼 국가’라고 표현하기는 어렵다. 또 ‘나라를 빼앗긴 백성’은 자연스럽지만 ‘국가를 빼앗긴 백성’은 부자연스럽다. 나라는 구체적 대상으로서의 땅이므로 물건처럼 빼앗길 수도, 되찾을 수도 있지만, 국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 대상이다.

 

그런가 하면 나라는 삶의 터전이 되는 어느 곳이나 지역을 가리킬 수 있다. 가령 제비는 가을이 되면 따듯한 곳을 찾아 남쪽 나라로 간다고 할 수 있지만, 남쪽 국가로 간다고 하기는 어렵다. 국가는 다른 단어와 어울려 숙어나 개념어를 만드는 특성이 강하지만 나라는 그렇지 못하다.

 

라. [군주 국가/군주 나라, 민주 국가/민주 나라, 법치 국가/법치 나라]

 

한편 나라는 일부 명사나 관형격 조사 ‘의’ 다음에 쓰여, 그 사물이 존재하는 세계나 세상을 가리킬 수 있으나 국가는 그럴 수 없다.

 

 

 

 

마. 달나라/달 국가, 하늘나라/하늘 국가, 동화 나라/동화 국가, 모험의 나라/모험의 국가

 

달나라나 하늘나라는 달이나 하늘에 있는 국가가 아니다. 다만 그곳에 있다고 믿어지거나 상상되는 세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동화 나라도 동화에서나 있을 법한 세상을 가리키고, 모험의 나라는 모험을 체험할 수 있는 세상을 가리킨다.

 

 

글: 강은혜

※ 참고 자료  안상순, 『우리말 어감 사전』, 도서출판 유유,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