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책을 읽자

일본의 노예 - 박태석

튼씩이 2022. 4. 6. 07:56

 

 

일본이 군국주의를 앞세워 일으킨 전쟁에서 저지른 피지배 국가들에 대한 잔인한 행위들에 대해 어떠한 반성도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 내용에 대해서는 자세히 모르는게 대부분이다. 군함도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후 한국인 등이 강제 노역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고, 희생자 추모 역시 미흡했다는 비판을 받았다는 사실은 어느 정도 알려져 알고 있지만, 우키시마마루호 폭파 사건의 진실 은폐, 사할린 강제징용 조선인 노동자들에 대한 학살, 중국 하이난섬 난딩에서의 대학살뿐만아니라 오키나와 등 일본 본토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정복한 거의 모든 지역에서 일으킨 학살과 집단 자살, 식인 잔치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았던 내용이라 충격이 컸다.

 

우리는 흔히 임진왜란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으킨 영토 확장 전쟁이라고 알고 있는데, 임진왜란을 노예 전쟁이라고 보는 학자들이 많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넘어 참담한 마음이 든다. 당시 납치된 조선인은 학자마다 다르게 보고 있지만 최소 10만 명 이상으로 추측하는데, 이들은 아프리카 노예보다 훨씬 헐값에 유럽으로 팔려갔다고 한다.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었던 이유를 이 책에서는 일본 중세의 인취와 난취로부터 시작했다고 이야기한다. 전쟁에서의 승자가 전리품의 일부로 남녀를 납치해 가서 이웃나라에 팔거나 노예로 활용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16세기 중반 지방 영주들이 영토를 보존하기 위한 방편으로 주변 국가의 남녀를 납치하여 상인들에게 노예로 팔고 대신 무기와 화약을 구입하였으며, 16세기 후반에는 임진왜란으로 연결되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어두운 과거인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징용을 들추어내는 것이 즐거운 일이 아니지만, 슬픈 과거가 재발하지 않도록 기억하고 대비하기에는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다. 연구에 투자한 시간이 많아서 모든 내용을 담고 싶어서였는지 중복되는 내용이 계속되는 것이 아쉬운 점으로 남았다.

 

 

‘네버 어게인! Never Again!’

1945년 4월 독일 바이마르에 있는 나치의 부헨발트 수용소에서 살아 남은 유대인들이 사용한 슬로건입니다. 그 이후 전 세계의 거의 모든 유대인 홀로코스트 기념관에서 슬로건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원래 이 용어는 유대인 이츠학 람단의 1927년 서사시 <마사다 Masada>의 ‘마사다여, 절대로 다시 무너지지 마라! Never again shall Masada fall!’라는 구절에 나옵니다. 오늘날에는 ‘마사다, 네버 어게인’으로 줄여서 부릅니다. - 5쪽 -

 

1941년 12월 7일 일본이 진주만의 미 해군기지를 공격했습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일본의 미국 서부 해안 지역 대규모 추가 공세를 우려하여 1942년 2얼 19일 행정명령으로 미국 서부에 거주하는 약 12만 명의 일본인들을 수용소에 약 3년간 격리했습니다. 그리고 1945년 1월경 일본의 패색이 짙어지자 이들을 석방했습니다. 일본인 피해자들과 그들의 자녀들인 닛세이들과 산세이들은 수십 년 동안 끈질긴 인내와 노력으로 미국 정부에 인권침해의 구제를 호소했습니다. 결국 1988년 미국 의회에서 ‘시민자유법’을 제정하여 미국 정부가 일본인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많은 보상을 했습니다. - 9쪽 -

 

일본 학자들은 해외로 팔려 간 조선인 노예의 수를 수만 명으로 보기도 한다. 당시 일본에 체류하던 선교사들은 이런 비인도적 행동을 혐오하며 노예 상인들에게 파문하겠다고 경고했지만 실효는 미미했다. 이 당시 조선인들은 아프리카인들보다 훨씬 헐값에 판매되었는데, 당시 기준으로 쌀 2가마 4말에 해당하는 2.4스쿠디(scudi)였다. 이에 비해 아프리카 노예 가격은 170여 스쿠디에 이르렀다. 스쿠디(단수형 scudo)는 1866년 이전까지 사용되던 이탈리아 화폐다. 그야말로 헐값이었다. - 99쪽 -

 

여성을 성적 도구로 바라보는 일본 제국주의는 이들(가라유키상)을 일본 제국의 상품으로서 철저하게 이용하고 필요가 없어지자 가차 없이 버렸다. 일본의 우익이 납치 등의 인신매매 범죄로 이루어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자발적 매춘으로 비하하는 패륜적 주장의 밑바탕에는 이러한 일본 제국주의의 영향이 있었던 것이다. - 147쪽 -

 

국가 성 방파제, RAA는 국가적 강간 시스템

40만 명의 점령군 상륙을 2주일 앞두고 일본의 전쟁 지도자들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미군 병사에 의한 성범죄였다. 그래서 ‘성 방파제’로 자리매김한 것이 새롭게 설립된 국책 성매매 조직인 ‘특수 위안 시설 협회’였다. 영어 명칭인 ‘RAA(Recreation and Amusement Association)’로 더 잘 알려져 있다. - 160쪽 -

 

중국 하이난성 싼야시 난딩촌에는 일제강점기 당시 강제징용 조선인들의 집단 매장지가 있다. 1,200여 구의 조선인 유골이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1,000명이 묻힌 굴’이라는 뜻으로 ‘천인갱(千人坑)’으로 불리게 되었다. 난딩은 일본군에게 끌려와 일했던 조선인들이 모여 있었던 곳이라고 해서 ‘조선촌’이라고 불렸다. 조선촌 마을 한쪽에는 축구장 4배 크기의 커다란 공터가 있는데, 이곳이 숨진 조선인들이 묻힌 천인갱이다. - 402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