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배우자/쉼표,마침표(국립국어원 온라인소식지)

한글을 다시 일으킨 최세진

튼씩이 2022. 4. 11. 07:56

 

 

백조라 슬픈 미운 오리 새끼

 

최세진(崔世珍, 1468~1542)은 사역원정(司譯院正, 조선 시대에 외국어 번역 및 통역 일을 맡아보던 관아인 사역원에 두었던 정삼품 관직) 최정발(崔正潑)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중국어를 배운 최세진은 신분은 낮았지만(중인 계급) 외국어 능력으로는 보통 사람들이 쉽게 따를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났다. 바로 이 점이 사대부들에게는 ‘눈엣가시’ 같았다. 신분은 낮은데 능력이 뛰어나니 인정할 수도, 인정하지 않을 수도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최세진은 여러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연산군 때 최세진은 왕을 비방하는 익명의 투서를 쓴 범인으로 지목되어 누명을 뒤집어 쓸 위기에 처했다. 승지 권균이 그의 무죄를 입증해 주지 않았다면 그는 화를 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 중종 때는 ‘중인’이라는 신분상의 꼬리표 때문에 억울하게 직위에서 물러나기도 했고, 장사로 재물을 모아 부유하다는 이유로 사대부에게서 큰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최세진은 중국어와 운서(韻書)1) 연구의 대가였고, 이문(吏文)2)에서는 따라올 사람이 없었으며, 중국과의 외교 문서 작성과 사신 내방을 담당할 수 있는 유일한 관리였다.

 

최세진의 뛰어난 능력을 꿰뚫어 본 중종은 시시때때로 그를 옹호하고 보호했다. 최세진이 책을 지어 바치면 상만 내리는 것이 아니라 직위도 함께 내려 그 공을 충분히 치하했다. 대간(조선 시대의 대관과 간관)이 최세진의 미천함을 이유로 들어 강예원(講隸院)의 교수로 적합하지 못하다고 직위 해제를 청했지만 중종은 최세진을 감싸 주었다. 중종의 총애에 보답하듯, 최세진은 다양한 외국어 학습 서적을 편찬해 누구든지 외국어를 익힐 수 있도록 했다. 최세진의 이 같은 노력은 그를 단순한 외국어 전문가나 통역가로 치부할 수 없는 까닭이 되었다.

 

불후의 명작 ≪훈몽자회≫

 

최세진이 많은 책을 편찬했지만 그중에서 한글 역사에 한 획을 긋는 걸작은 바로 ≪훈몽자회(訓蒙字會)≫다. 이 책은 어린이를 위한 ‘한자 교육용’ 도서로 천자문과는 확연히 다른 한자 학습법이 담겨 있다. 천자문이 일상생활과 거리가 먼 고사나 추상적인 내용이 많아 학습서로 부적당했다면, ≪훈몽자회≫는 비슷한 뜻이 있는 글자들을 종류별로 모아서 한글로 음과 뜻을 달아 한자를 더 쉽게 학습할 수 있게 했다. 또 천자문은 한자 1,000자를 싣고 있는데, ≪훈몽자회≫는 3,360개의 한자를 수록하고 있다. 이 책은 조선 시대를 통틀어 가장 많이 보급된 한자 학습서였을 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널리 이용되었다. 이렇듯 ≪훈몽자회≫는 일본에서도 인정받을 정도로 효과적인 학습서였지만 이 책의 진면목은 권두에 실린 범례(凡例)에 드러난다.

 

 

 

≪훈몽자회≫ ‘범례’는 첫째, 한글 자모의 이름을 밝힌 첫 기록이다. 세종은 훈민정음을 창제했지만 각각의 이름은 짓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둘째, 자모의 순서와 받침 등을 정리해 국어학 발달에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여기에 보인 한글 자모 배치는 한글을 쉽게 가르치는 음절표의 틀이 되었다. 셋째, ≪훈몽자회≫를 공부하는 어린이들이 먼저 한글을 익힌 다음 이를 바탕으로 한자를 배우게 함으로써 조선의 수많은 어린이가 한글을 익히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이 내용은 이후 한글에 대한 근대적 정리와 학습법이 정해지기 전까지 규범으로서 역할을 한다.

 

쇠퇴한 한글을 다시 일으키다

 

최세진은 ≪훈몽자회≫뿐만 아니라 수많은 외국어 학습서를 편찬했다. 어린이용 학습서로 발간한 ≪소학편몽≫은 중국 송나라 때 발간된 학습서 ≪소학≫을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재편집하여 어린이들이 쉽게 배울 수 있게 한 책이다. 또 최세진은 당시 통역을 맡아보는 관리들이 주로 보던 중국어 회화 학습 교재인 ≪노걸대≫와 ≪박통사≫를 한글로 번역하여 각각 ≪번역노걸대≫와 ≪번역박통사≫로 편찬하였다. 그리고 외교 문서 작성 지침서인 ≪이문집람(吏文輯覽)≫도 편찬했다. ≪이문집람≫은 이문 가운데 난해한 것을 해석한 것으로 최세진은 이 책을 교재 삼아 승문원(조선 시대에 외교 문서를 맡아보던 관아)에서 직접 강의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최세진이 편찬한 중국 본토 자음용(中國本土字音用) 운서책인 ≪사성통해(四聲通解)≫는 명나라 시대의 중국음을 한글로 적은 것으로 국어 연구의 귀중한 문헌이기도 하다.

 

연산군 때에는 훈민정음이 박해를 받았다. 왜냐하면 연산군 10년(1504년)에 연산군을 비난하는 내용의 한글 투서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연산군은 이 일로 전 백성에게 한글을 배우지도 쓰지도 말 것을 명했다. 또 한자를 한글로 번역하는 것도 금했다. 이때 최세진은 여러 책을 집필하여 자신의 재능을 어린이와 백성, 심지어 경쟁자가 될 관리들과도 기꺼이 나누었다. 최세진이 집필한 책 대부분은 외국어 학습을 위한 길잡이 책이었다. 이는 최세진이 실용적인 외국어 학습을 위해 가장 먼저 기초가 되어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말과 우리글, 바로 ‘한글’이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명확하게 통찰하고 있었다는 증거이지 않을까.

 

1) 한자의 운(韻)을 분류하여 일정한 순서로 배열한 서적을 통틀어 이르는 말.

2) 조선 시대에 중국과 주고받던 문서에 쓰던 특수한 관용 공문의 용어나 문체.

 

※ 참고 자료


김흥식, ≪한글전쟁≫, 서해문집, 2014.
≪조선왕조실록≫, <중종실록> 86권, 32년(1537 정유 / 명 가정(嘉靖) 16년) 12월 15일(경신)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4권, 10년(1504 갑자 / 명 홍치(弘治) 17년) 7월 22일(경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