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하면 패자가 된다?
모든 사람은 크고 작은 잘못을 저지르며 살아간다. 완벽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에 따르는 책임을 져야 한다. 잘못에 대한 제대로 된 해명과 사과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피해자는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더 큰 피해를 입게 된다.
갈등 해결의 첫 단추는 최대한 빨리 잘못을 깨닫고 사과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직후 ‘잘못을 인정함으로써 내가 손해를 보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를 하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자신을 방어하고자 하는 이기적인 본성의 속도가 많은 이의 양심을 앞지르기 일쑤다. 또한 사과를 하는 것을 마치 패배를 인정하는 것과 같이 여겨 자신의 체면을 깎는 일로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과연 사과하는 사람은 실제로 패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기만 할까?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사과
유명한 사회심리학자 로버트 치알디니(Robert Cialdini)는 사과를 ‘신뢰 리더십의 언어’라고 정의했다. 리더가 자신의 약점을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오히려 그 리더의 신뢰와 권위를 세울 수 있는 현대적인 방법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전문가의 견해는 잘못을 빌며 용서를 구하는 것이 ‘패배자’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인식에 경종을 울린다.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 역시 “책임의 시대에는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 아니라, 실수를 깨끗하게 인정하고 다시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말했다. 실제로도 그는 사과를 그만의 ‘리더십의 언어’로 훌륭하게 구사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대통령 후보 시절, 자동차 생산 공장을 방문한 그가 노동자에 관련한 질문을 던진 여성 기자에게 “잠시 기다리세요. 스위티(sweetie).”라고 대꾸한 적이 있다. 말 한마디가 지지율을 떨어뜨릴 수 있는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던 데다, 그가 입에 담은 ‘스위티’는 애인이나 가까운 친구에게 쓰는 말이었기에 공식적인 자리에서 여기자에게 쓸 표현으로는 부적절했다. 결국 다음날 오바마의 발언은 큰 논쟁거리가 되었다. 그런데 논란이 일자마자 오바마는 현명하게도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바로 인정했다. 그는 직접 그 기자에게 사과를 전했다.
“당신에게 ‘스위티’라는 표현을 쓴 것에 대해 사과합니다. 그건 저의 나쁜 말버릇입니다. 당신에게 실수를 저지른 것이 매우 유감스럽습니다. 제게 전화 한번 주세요. 다음에 디트로이트를 방문할 때, 제 홍보팀을 통해 당신에게 사죄할 기회를 만들겠습니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지에 대해 적극적으로 상대에게 얘기했다. 그의 신속한 사과는 결국 그에 관한 논란과 비난이 더 커지지 않도록 만들었다. 구설에 휩싸일 위기에 처했음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실수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남다른 자세 덕분에, 그는 결국 그해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영예를 안았다. 어쩌면 오바마는 사과를 하는 사람이 패자가 아니라, 사과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 패자라는 진실을 우리에게 알린 셈이다.
사과가 곧 능력인 시대
우리나라에서는 유명 요리사로 많은 사람들에게 선망을 받던 에드워드 권이 2010년 9월, 신문 인터뷰를 통해 그간 부풀려졌던 자신의 경력에 대해 솔직하게 해명한 적이 있다. 미국 최고의 요리 학교를 졸업했다고 알려진 것과는 달리 실은 6주의 단기 과정을 마쳤을 뿐이라는 점, ‘미국 요리사 협회 선정 젊은 요리사 10인’에 들었다는 소문과는 달리 캘리포니아에 있는 한 지역의 요리사 협회에서 선정한 것에 불과했다는 사실 등을 털어놓은 것이다. 자신에 대한 의혹을 스스로 이야기하고 사과하자 그를 향했던 대중의 분노는 점점 줄어들었다. 온갖 의혹과 비난이 퍼져 나가던 인터넷에서도 자신의 잘못을 시인한 에드워드 권을 동정하는 분위기가 널리 퍼졌다.
이러한 사건을 ‘투명성의 패러독스(paradox of transparency)’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부정적인 이야기는 감출수록 유리해 보이지만 사실은 그 반대라는 것이다.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밝히는 태도는 실제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무척 중요한 능력이다. 정보 통신 기술의 발달과 함께 등장한 트위터, 페이스북 등 누리소통망(소셜 미디어)은 그 어떤 사람도 더 이상 신비 속에 숨어 있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결국 에드워드 권처럼 나서서 사과할 수 있는 용기가 현대를 살아가는 데에 있어 현명한 미덕인 것이다.
올바른 사과를 완성하는 세 가지 요건
그렇다면 어떻게 사과해야 갈등을 진정으로 해소시키고 위기를 타개할 수 있을까? 미안하다는 말이 그저 당장의 곤란함을 피하기 위한 것이거나 공허한 단어의 연속이거나, 핑계가 많아 궁색하게 들리는 경우 오히려 상대의 분노는 더욱 커질 수 있다. 진정 의미 있는 사과를 하고 싶다면 적어도 세 가지 요소를 갖추어 말해야 한다. 유감 표현, 책임 표현, 재발 방지 및 대책 마련에 대한 약속이다.
- 유감 표현: 상대방에게 불편, 고통, 피해를 주어 미안하다는 말이 필요하다. 진심으로 후회하고 부끄러워하는 마음, 다시는 자신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뉘우침, 상대의 비난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태도가 담겨 있어야 한다.
- 책임 표현: 상대의 피해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 여기에는 윤리적, 법적 책임도 감수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어야 할 것이다. 정직한 자세와 상대의 말을 수용하려는 태도가 기본이다. 자신의 잘못을 모호하게 인정하는 표현이나 수동적인 표현, ‘만일 실수가 있었다면’과 같은 조건 표현, 상대의 피해 사실을 의심하거나 자신의 잘못을 축소하는 표현은 덧붙이지 말아야 한다.
- 재발 방지 및 대책 마련에 대한 약속: 잘못이 벌어진 배경을 분명히 밝히고, 이 사건으로부터 자신이 무엇을 배웠으며 앞으로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를 명시해야 한다. 여기에는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구체적인 다짐과 그 실천을 약속하는 내용이 들어가야 한다.
때로는 올바르고 진심 어린 유감과 책임 표현, 앞으로는 같은 잘못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포함한 사과로 충분히 상대의 용서를 구할 수 있다. 그러나 상대가 물적, 정신적 피해를 입었을 경우 잘못에 대한 사과와 함께 피해를 보상하겠다는 약속 또한 반드시 필요하다.
※ 참고 자료
아론 라자르, ≪사과 솔루션≫, 지안, 2009
김호, 정재승, ≪쿨하게 사과하라≫, 어크로스,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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