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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 제로? 탄소 중립?

튼씩이 2022. 6. 21. 07:52

“넷째로, 넷째로 자꾸 그래서 무슨 말을 하려고 계속 ‘네 번째’만 반복하나 했다니까. 그런데 분명 환경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거야, 참 내…” 어떤 선배가 투덜대면서 환경학자인 내게 건넨 말이다. 시민운동가와 학자들이 모여서 이런저런 논의를 하는 자리였나 본데, 참여자 한 분이 논의 대상이 될 만한 주제를 나열하면서 이 말을 꺼냈다고 한다. 환경 정책가와 학자, 시민운동가들 사이에서는 이미 널리 퍼진 말, ‘넷째로’는 ‘net zero’를 좀 우악스럽게 소리 나는 대로 적은 것이다. 요즘은 공식적으로 ‘탄소중립’이라고 말하지만 아직도 이 말을 쓰는 사람이 많은가 보다.

 

그림1. 이산화탄소 배출량과 흡수량이 동등할 때 ‘탄소중립’을 이룬다.

 

탄소중립이란 단순하게 이야기하자면 이산화탄소가 배출되는 양과 흡수되는 양을 동등하게 해서 추가적인 탄소의 순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것을 말한다. 흡수는 산림이나 습지, 갯벌, 해양 식물과 같은 자연기반 흡수원으로 이산화탄소를 흡수 저장하며, 자연기반 흡수가 충분하지 않을 경우 인위적으로 탄소포집이용저장(Carbon Capture Utilization and Storage, CCUS) 기술로써 제거하는 것까지를 말한다. 하지만 배출한 이산화탄소를 흡수 제거하는 일은 상당히 어려우므로 배출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럼에도 배출할 수밖에 없는 이산화탄소는 흡수함으로써 추가적인 배출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탄소중립은 이산화탄소 배출을 기준으로 하지만 이산화탄소 이외 메탄, 아산화질소, 수소불화탄소, 과불화탄소, 육불화황, 삼불화질소 등 온실기체 모두의 순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것을 기후중립(Climate Neutrality)이라 한다. 그런데 이때 온실기체 배출량을 이산화탄소 배출량으로 환산해서 계산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온실기체 순 배출량을 0으로 하는 것을 ‘탄소중립’이라 통칭해서 부르는 것이다.

심각한 기후위기 상황에서 국제사회는 2015년 12월 파리기후변화 협정(파리협정)을 맺어 지구 평균 온도를 산업화 이전 대비 1.5℃를 넘지 않도록 하자는 데 합의하였다.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에 따르면, 산업화 이전 대비 1.5℃를 넘지 않으려면 전 세계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탄소중립은 국가 과제로 자리를 잡았다. 2020년 10월에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2021년 5월 대통령 소속 2050 탄소중립위원회가 출범하였다. 이후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이 제정되어 2022년 3월 25일부터 시행됨에 따라 탄소중립위원회는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로 이름이 바뀌었다.

2050년 탄소중립으로 가기 위해서는 징검다리가 되는 2030년까지 배출량을 얼마나 줄이는지가 관건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는 2018년 보고서에서 2030년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을 2010년에 비해 45% 줄여야 한다고 권고하였으며, 2022년 올해 4월에는 현재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은 1.5℃ 경로에 있지 않다고 단언하였다. 1.5℃로 온난화를 제한하기 위해서는 2025년 이전에 온실기체 배출이 정점에 도달해서 2030년까지는 2019년 대비 43%를 감축해야 한다고 제시하였다. 또한 2050년까지 2019년 대비 온실기체 배출을 84% 감축해야 한다고 언급하였다.


이에 항상 함께 뒤따라 나오는 용어가 바로 엔디시(NDC)이다. 원어는 ‘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 번역하면 ‘국가 결정 기여’이다. 이는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중간 목표로, 파리협정에 따라 각 참가국이 스스로 정한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라고 할 수 있다. 이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의 경우 파리협정 채택 이전에 제시한 목표는 탄소중립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기에 더 높여야만 했다. 그래서 2021년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 개최 이전까지 136개 국가가 새롭게 상향된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제출했지만 이 목표가 달성된다 해도 지구 평균 온도는 2.4℃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래서 당사국들은 총회에서 채택한 글래스고 합의(Glasgow Climate Pact)를 거쳐 올해 2022년까지 더 강화된 목표를 제출하기로 했다.


우리나라도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2030년까지 2018년 총배출량 대비 35% 이상 감축이라는 최저선을 넘어 40% 감축으로 상향된 목표를 발표하고, 보고서를 유엔기후변화협약에 제출하였다. 이 목표가 여전히 너무 느슨하다거나 너무 과도하다는 평가도 있지만 파리협정의 진전 원칙(감축목표를 제시할 때 이전보다 진전된 목표를 제시해야 함)에 따라 목표를 뒤로 물릴 수는 없으며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하자면 지금부터 노력해서 속도를 높여 나가야 한다.

 

그림2.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해, 한국은 2030년까지 2018년 총배출량 대비 40% 감축을 목표로 한다.

 

한 번 배출된 온실기체는 온실효과를 한 번만 일으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대기 중에 머무르면서 지속적으로 온난화를 일으킨다. 세계 온실기체 배출량의 75%를 차지해서 가장 문제가 되는 이산화탄소는 50~200년 동안 대기 중에 체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15% 이상은 1000년을 넘게 머무른다고 한다. 그만큼 빠른 감축이 중요하다.

우리의 언어 환경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공공 영역에서 사용한 외국어 용어가 한 번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퍼지고, 지속적으로 쓰인다.

이제 지구온난화나 기후변화란 말보다 기후위기란 말이 일반적으로 더 많이 쓰인다. 2019년 5월 영국의 가디언지가 ‘기후변화’란 말 대신 ‘기후위기’라 부르자 제안하였다. 기후변화란 용어가 그 자체로는 변화의 방향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변화가 얼마나 심각한지, 그래서 그 변화에 대한 대응이 얼마나 긴급하게 요구되는지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위기 상황을 해결해 나가고자 계획을 세울 때에는 변화의 심각성과 대응의 긴급성을 드러낼 수 있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갈수록 깊어져 가는 기후위기는 이제 북극곰에게만 일어나는 일도, 먼 미래에 일어날 일도, 어디 가난한 나라에서만 일어나는 일도 아니다. 바로 여기 지금 우리에게도 일어나는 현실이다. 기후위기의 심각성과 이를 해결하고자 세운 목표를 국민들이 실천할 수 있으려면 용어의 의미부터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 누구나 이런 용어들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생활 목표로 삼아야 그나마 살 만한 지구 환경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쉬운 말로 쓰자.

 

 

윤순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계획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