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배우자/한글문화연대

지금 우린 번역체를 쓰고 있다

튼씩이 2022. 7. 22. 07:52

우리의 일상엔 수많은 번역체가 숨어있다. 번역체는 영어나 일본어 등 외국어를 직역하면서 생기기 쉬운 이질적인 문장을 뜻한다. 예를 들어 ‘수많은 아이들과의 관계에 있어 나는 전형적인 선생들 중 하나일 뿐이었던 것이다.’ 이런 문장은 얼핏 보면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한글로 쓰여서 읽을 수 있고, 무슨 뜻인지 알아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문장처럼 보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읽히지도 않는다. 이런 번역체를 잘 구별하기 힘든 이유는, 외국어 문학이 번역되고 널리 읽히면서 독자들이 번역체를 자주 접하기 때문이다. 번역체를 고치기 위해서는, 어떤 말이 번역체인지 구분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한국어와 외국어의 차이를 알아보고,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고 자주 쓰는 번역체를 몇 가지 알아보자.



‘들’ 남발하지들 말자


가끔 사람들은 ‘모든 사람들이 손에 책들을 들고 걷고 있다’, ‘수많은 무리들이 광장에 모여 아이스크림들을 먹고 있었다.’와 같이 ‘들’을 남발하는 문장을 쓴다. 이는 영어에서 복수형으로 쓰인 걸 그대로 옮기다가 벌어지는 문제이다. 우리말 문장에서 복수를 나타내는 접미사 ‘-들’은 조금만 써도 문장을 어색하게 만든다. 더군다나 관형사 ‘모든’으로 수식되는 명사에는 복수를 나타내는 접미사 ‘-들’을 붙이지 않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무리’나 ‘떼’처럼 복수를 나타내는 명사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복수형을 쓰고 있는데 ‘-들’을 또 붙일 필요는 없다. 위의 문장들은 ‘모든 사람이 손에 책을 들고 걷고 있다’, ‘수많은 무리가 광장에 모여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다’와 같이 고치는 것이 자연스럽다.
‘-들 중 하나’, ‘-들 가운데 하나’, ‘-들 중 한 사람’ 등의 표현 역시 영어 표현에서 빌려온 말이다. ‘그는 내가 믿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라는 문장에서, 내가 몇 명의 사람들을 믿는지는 중요치 않아 보인다. ‘그는 내가 믿는 사람이다’로 문장을 정리해도,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전달할 수 있다.

 


‘-에 있어’는 과연 있어야 할까


보통 영어의 ‘for~’나 ‘in~ing’ 또는 일본어의 ‘~にあって'나 ‘~において'를 ‘~에(게) 있어(서)’로 번역하곤 한다. 이는 한국어 표현처럼 사용되고 있지만, 오히려 문장을 더 어색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녀는 친구와 가까운 관계에 있었다’, ‘나는 내 일에 있어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에서 ‘-에 있어’는 어떠한 역할도 하지 않는다. 불필요한 장식이나 다름없다. 위의 문장들은 ‘그녀는 친구와 가까운 관계다’, ‘나는 내 일에 자신감이 있다’와 같이 ‘-에 있어’를 삭제하는 것만으로도 훨씬 깔끔해 보인다.



‘-로부터’에 ‘대하여’ 설명하자면


‘-로부터’는 영어 ‘from’에서 온 번역체다. 굳이 ‘-로부터’를 쓸 필요 없이, ‘-에(게)서’로 대체하여 쓰면 문장이 한결 매끄러워진다. ‘나는 미국으로부터 왔어’라는 문장은 ‘나는 미국에서 왔어’로 쉽게 대체할 수 있다. ‘우리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편지야’는 ‘우리 선생님에게서 받은 편지야’로 쓰면 자연스럽다. ‘음악은 국가의 단속으로부터 자유롭다’와 같은 문장은 ‘음악은 국가의 단속을 받지 않는다’로 완전히 바꾸어 쓸 수도 있다.


‘-에 관하여/대하여’라는 표현은 영어의 ‘about’을 번역하면서 나타난 번역체 표현이다. 흔히 쓰이는 표현이지만, 조사로 대체하여 쓰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예를 들자면 ‘나는 이 책에 대하여 독후감을 썼다’라는 문장보다는 ‘나는 이 책의 독후감을 썼다.’가, ‘그 의도에 관하여 설명하겠습니다’보다는 ‘그 의도를 설명하겠습니다’가 훨씬 직관적으로 느껴진다.



피동표현


영어는 ‘수동형’을 주로 쓴다. 하지만 한국어는 ‘능동형’으로 바꾸어 쓸 때 더 자연스럽다. 그 이유는 한국어가 사람이나 동물 등 감각이 있는 생물을 뜻하는 ‘유정물’과 나무와 돌 같이 감각이 없는 사물을 뜻하는 ‘무정물’을 암묵적으로 구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어에서는 ‘친구’, ‘책’, ‘빌리다’를 보면 한국어 화자들은 자연스럽게 ‘친구’를 주어로 두고 싶어진다. ‘책’을 주어로 두어 ‘책이 친구에 의해 빌려졌다’와 같이 쓰면 매우 어색해진다. 무조건 피동표현을 사용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능동형으로도 자연스럽게 쓸 수 있는 말을, 피동형으로 쓰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


감정표현을 할 때도 피동표현을 유의해야 한다. 영어에서 감정을 표현할 때는 ‘I am tired’와 같이 ‘be 동사’를 사용하여 피동형으로 표현한다. 만일 앞의 문장을 능동형으로 바꾸어 ‘I tired~’와 같이 썼다면, 이는 주어가 피곤함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피곤하게 만드는 사동 표현이 된다. 그래서 ‘그는 흥미롭게 됐다(He is interested)’라는 문장은 ‘그는 흥미로워한다’로 고쳐 쓰는 것이 맞다.

 


아는 것이 힘이다


지금까지 혼동하기 쉬운 번역체 표현을 함께 알아봤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번역체는 그 기준이 명확하게 정해져 있지는 않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언어에는 일본어의 잔재와 영어에서 파생된 번역체의 흔적이 존재한다. 위에서 소개한 예시보다도 훨씬 많은 번역체가 지금도 거리낌 없이 우리 언어에 슬그머니 녹아들어 올바른 언어 사용을 방해하고 있다. 번역체는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는 문장을 복잡하게 만들며 때로는 사람들 사이에서의 소통을 방해한다. 이 때문에 우리는 어떤 것이 번역체 표현일지 스스로 공부하고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다만 번역체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견해 차이가 있을 수 있으므로, 지속적인 논의도 필요할 것이다.

 

※ 본 기사는 국립국어원, 도서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각종 블로그 등을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한글문화연대 대학생기자단 9기 박예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