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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푸드’를 ‘가까운 먹을거리’로 부르자

튼씩이 2022. 7. 27. 07:54

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새로운 말과 용어가 생겨난다. 다른 영역도 마찬가지겠지만 먹을거리 환경은 기후 위기에 더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그래서 먹을거리 관련 정책과 일상생활에서 새롭게 사용되고 있는 단어들도 많다. 최근 우리는 로컬푸드나 로컬푸드 직매장이라는 단어를 많이 접한다. 1990년대 중반에 건강과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먹을거리 운동으로 로컬푸드 운동이 시작되었고, 일본에서는 지역에서 생산된 것을 지역에서 소비하자는 지산지소(地産地消)운동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를 “로컬푸드”라고 부르고 있다.

 


먹을거리 정책, 계획을 좀 더 쉽고 깊게 접할 수 있도록

2016년 유엔 총회에서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수립하였고, 이에 따라 한국 정부도 2018년에 한국형 지속가능발전목표(K-SDGs)를 세웠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100대 국정 과제 중 하나로 ‘지속가능한 농식품 산업기반 조성’이란 과제를 내놓았고, 그 내용에는 ‘2018년 국가 및 지역 푸드플랜 수립’이 포함되었다. 이에 따라 연구용역과 함께 각 지자체별로 먹거리종합계획이라는 푸드플랜을 세우게 되었고, 몇 지자체에서는 민관이 함께하는 도농상생의 푸드플랜네트워크의 창립식도 열렸다. 그때 한 지역 지자체장은 축사를 하며 로컬푸드의 개념이나 여건도 잘 세워지지 않은 상황에서 푸드플랜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고 하였다. “로컬푸드”는 먹을거리에 ‘농장에서 밥상까지의 거리’를 도입한 개념이다. 글로벌 푸드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지역 먹을거리를 뜻한다. 먹을거리의 이동 거리를 줄여서 신선도와 안전성을 확보하고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임으로써 환경 부담도 감소시키며, 더 나아가 생산자와 소비자가 관계성을 가지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래서 로컬푸드를 “얼굴 있는 먹을거리”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국토 면적이 큰 나라와 작은 나라에서의 거리 개념은 전혀 다르다. 그 거리라는 개념이 단순히 물리적 거리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먹을거리를 중심으로 사람들과 만나고 놀고 먹고 일하고 있는 나는 로컬푸드라는 말보다는 “가까운 먹을거리”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정책에서 로컬푸드라는 것은 행정구역 단위로 운영되고 있는데, 특히 식량 자급률이 낮은 우리나라, 도시에서 로컬푸드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숫자의 개념보다는 인간적, 사회적 관계면에서 접근하고, 물품에 담긴 의미와 소비 정의가 그 안에 담겨 있어야 한다. 로컬푸드라는 용어가 도입되고 조금씩 활성화될 때쯤 로컬푸드 활성화를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그 토론회에서 로컬푸드 매장에서 바나나를 판매하는 일과 바나나를 이용한 가공식품 개발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당시에는 그 지역에 바나나 생산자도 없었고 바나나는 우리나라 과일이 아니라고 인식되고 있었다. 그런데 현재는 지구 온난화로 우리나라 중부 지역에서도 바나나를 생산할 수 있으며, 당연히 남부 지역의 일부 로컬푸드 매장에서도 바나나가 판매되고 있다. 열대성 과일이 우리나라에서도 생산, 판매되고 있는 것이다. 지역의 먹을거리, 가까운 먹을거리가 정서적·관계적 의미로 다가온다. 생산되는 지역 중심의 개념을 넘어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교류함으로써 먹을거리에 대한 신뢰와 책임 있는 생산, 소비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보면 거리 개념의 로컬푸드라는 말보다는 사회적 관계성을 포함하는 “가까운 먹을거리”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푸드플랜”도 쉽게 말하면, 상생의 가치를 바탕으로 먹을거리의 생산부터 유통, 소비, 폐기까지를 아우르는 일련의 먹을거리 계획이자 정책이다. 즉 지속적으로 상생하는 삶을 위한 지역민 중심의 “지속가능한 먹을거리 체계, 계획”인 것이다.

                                               그림1. 한살림의 ‘가까운 먹을거리 운동’ (출처: 한살림 누리집)


함께 먹는 밥상, 함밥

스위스 역사가인 부르크하르트의 <그리스 문화사>를 보면 함께 식사하는 문화 이야기가 나온다. 이 책을 보면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이 개인이나 사회 발전의 중심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식문화는 급격히 변화되고 있다. 먹는다는 것에 대한 생각도 크게 변화하였다. 먹을거리는 풍부해졌지만 밥을 혼자 먹는 혼식이나 독식이 늘었고, 밥을 먹으며 휴대전화, 텔레비전이나 책을 보며 식사에 집중하지 않고, 그저 한 끼 때운다고 생각하며 먹는 무관식으로 외로운 밥상을 대하는 사람들도 많다. 최근 지역을 중심으로 먹을거리를 둘러싼 불안정한 문제를 해결하고 사람들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커뮤니티 키친”이라는 공간이 생겨나고 있다. 그런데 커뮤니티 키친이라는 말을 들으면 그곳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어떤 의미인지 바로 와닿지 않는다. 공간에서 내용을 만들어 가면서 “공유부엌”, “마을부엌”, “공유식당”이라는 이름으로 먹을거리 나눔, 돌봄, 공동식사, 텃밭·조리교육 등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진다. 공간을 통해 먹을거리가 가지는 의미인 먹을거리 공동체를 실현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다. “소셜 다이닝”도 “공동체 밥상”, “관계 밥상”, “수다 밥상” 정도로 표현하면 더 쉽고 깊게 다가올 것이다. 코로나 상황에서 케이터링(Catering)이라는 단어도 주변에서 자주 접하고 있다. 케이터링은 작은 단위의 다양한 행사나 모임에 음식을 미리 준비하여 제공해 주는 “출장 음식”을 뜻한다. 처음 케이터링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생소하여 무엇을 의미하는지조차 알기 어려웠으나, 지금은 그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외국에서 생겨서 우리나라에 들어온 용어가 우리 언어로 이해되고, 우리나라 정서에 맞게 표현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새로운 외국어 단어를 우리말로 표현하기가 어렵기도 하고, 내용이 담긴 단어를 찾기가 쉽지 않은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렵다고 우리말로 표현하려 노력하지 않는다면 주변의 누군가는 소외될지도 모른다. 우리말 표현이 낯설어도,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올 때가 올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의 의미와 깊이를 많은 이들이 이해하고 함께할 수 있도록 우리말로 말을 걸어보자!

                                                              그림2. ‘가까운 먹을거리로 함께 하는 밥상’

 

 

 

김인원 (한살림대전 소비자생활협동조합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