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배우자/쉼표,마침표(국립국어원 온라인소식지)

찰나의 우리말 - '막말' 감수성

튼씩이 2022. 9. 26. 07:47

요즘 우리 귀에 많이 들리는 단어 중 하나가 ‘막말’이다. 최근 들어 막말의 주된 진원지가 된 곳은 바로 정치권이다. 정치권에서 들려오는 정치인들의 막말에 유권자인 국민의 심정은 참담하기 그지없다. 국민이 선택한 국민의 대표자들이니 그에 맞는 품격을 지켜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무색할 지경이다.

그런데 ‘막말’이란 무엇인가? 막말이 무엇인지 알아보려면 사전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막말을 찾아보니, ‘나오는 대로 함부로 하거나 속되게 말함. 또는 그렇게 하는 말’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여기서 ‘함부로’란 ‘조심하거나 깊이 생각하지 아니하고 마음 내키는 대로 마구’라는 뜻이고, ‘마구’란 ‘몹시 세차게. 또는 아주 심하게’이며, ‘속되다’란 ‘고상하지 못하고 천하다’라는 뜻이다. 이 뜻들을 바탕으로 ‘막말’의 풀이를 더 풀어서 설명해 보면 다음과 같다.


막말: 조심하거나 깊이 생각하지 않고 마음이 내키는 대로, 몹시 세차게 또는 아주 심하게 하거나 고상하지 못하고 천하게 말하거나 그렇게 하는 말

 

결국, 막말이란 ‘듣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조심성 없이 마구 함부로 아주 심하게 내뱉는 천한 말’이라고 요약해 볼 수 있다.
막말의 풀이를 꼼꼼히 따져 보니 정치인들의 막말이 더욱 불쾌하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국민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정치인들이 누구도 원하지 않을 것 같은 막말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막말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국민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국민의 선택을 받으려면 자신의 이름을 알릴 필요가 있다. 그런데 막말은 이목을 끄는 효과가 있으니 막말로 자신의 이름을 알릴 수 있겠다는 계산이 숨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막말이 이목을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좀 차근차근 생각해 보자.
말로 이목을 끄는 데는 어려운 방법과 쉬운 방법이 있다. 어려운 방법이란 설득력 있는 내용을 전달력 있게 전달하는 방법이다. 설득력 있는 내용을 구성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고, 전달력 있게 전달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설득력 있는 내용을 전달력 있게 전달한다고 해도 그 말을 들어주는 사람의 이목을 긴 시간 사로잡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내용으로 이목을 끄는 것이 어려운 이유다.

한편, 말로 손쉽게 이목을 끌 수 있는 방법도 있다. 이 방법은 대체로 짧은 표현으로 큰 효과를 낼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그 방법을 요약하여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새롭거나 강하거나 어렵거나’.
‘새롭거나’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귀를 쫑긋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사람들은 새로움에 눈길을 주고 귀를 기울인다. 이 방법에 해당하는 것이 신어나 유행어를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강하거나’는 센 표현으로 주목을 끄는 방법이다. 고성과 막말, 욕설이 대표적으로 이 범주에 속한다. 크고 높은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아도 들을 수밖에 없게 만든다. 막말과 욕설은 듣는 사람을 자극한다. 끝으로 ‘어렵거나’는 뭔가 일상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표현을 씀으로써 이른바 ‘있어 보이는’ 효과를 노리는 방법이다. 생경한 외래어로 표현하거나 전문용어를 섞어서 말하는 방법이다. 자신의 말을 못 알아듣게 만듦으로써 화자의 지위를 청자의 지위보다 우월적으로 만들고 이로써 이목을 끌고 영향력을 획득하는 방법이다.

이처럼 막말은 듣는 사람을 자극하여 손쉽게 이목을 끌 수 있는 방법이라는 점에서, 일견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정치인들이 막말의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막말을 하면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된다. 막말의 강도가 세면 셀수록 언론의 관심 정도는 더 커진다. 악플이 무플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성공적인 마케팅 효과를 얻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말에는 깊은 함정이 숨어 있다. 막말이란 듣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조심성 없이 마구 함부로 내뱉는 말이다. 막말이 듣는 사람을 불쾌하게 만드는 이유다.

또한, 막말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은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듣는 사람의 몫이라는 점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말을 한 사람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듣는 사람에게 막말로 들렸다면 그 말은 막말이 되는 것이다. 즉, 막말인지 아닌지는, 말을 하는 사람의 처지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듣는 사람의 처지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말한 사람이 아무리 막말을 할 의도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들은 사람이 막말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막말인 것이다. 물론, 그 말이 들은 사람에게 막말로 들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될 때 그렇다는 것이다. 아무런 이유 없이 막말로 들렸다고 우긴다고 해서 무조건 막말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막말을 한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말이 왜 막말이냐고 되묻게 되어 있다. 심지어 자신의 말이 막말로 들릴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시치미를 뚝 떼고 막말을 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막말을 한 사람들에게 왜 막말을 하느냐고 문제를 제기하면 공통적인 반응은 자신은 막말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하는 것이다. 만약, 막말을 한 사람에게 왜 막말을 했냐고 따져 물었는데, 막말을 한 그 사람이, 자신이 한 말이 막말임을 알면서도 일부러 했다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뻔뻔하거나 안하무인인 사람이니 더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결국, 막말을 한 사람은 그 말이 막말인 줄을 모르고 했든 혹은 그 말이 막말인 줄을 알면서도 했든 간에 모두 문제가 있다. 막말인 줄을 모르고 막말을 했다면 그 사람은 무지한 사람이고, 막말인 줄을 뻔히 알면서도 막말을 했다면 그 사람은 듣는 사람을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안하무인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막말을 하는 사람을 경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우리 사회에서 막말이 왜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는가 하는 점이다. 실제로 과거에 비해 막말이 많이 들리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언론에서도 막말을 다루는 빈도가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이를 확인하고자 말뭉치(코퍼스)를 검색해 보았다.
1946년부터 2014년 사이의 동아일보 기사를 검색할 수 있는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의 동아일보 말뭉치를 검색해 보니, 실제로 ‘막말’이라는 단어의 사용 빈도는 2000년 이후 급격히 증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해당 말뭉치에서 ‘막말’의 사용 빈도는 1999년 이전 53년 동안 132회에 불과했지만, 2000년 이후 14년 동안 1,443회나 되었다. 2000년 이후 신문 기사에서 ‘막말’이라는 단어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그렇다면 2000년 이후 우리 사회에 ‘막말’이라는 단어의 사용이 증가한 이유는 무엇일까? 말이 거칠어지고 언어 사용자들의 수준이 떨어져서 막말이 우리 사회에 많아진 것일까? 그보다는 우리 사회의 막말 감수성이 높아졌다고 해석하는 편이 맞지 않을까 생각한다. 수용자들의 감수성이 높아지면서 과거에는 막말로 생각되지 않았던 말들이 막말로 들리게 되고, 그 결과 막말이 많아졌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또,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관계 변화도 한 원인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수직적 관계에서 수평적 관계로 바뀌게 되면 듣는 사람의 문제 제기가 훨씬 자유로울 수 있게 될 테니 말이다.

막말이 일견 많아진 것처럼 생각되는 이유는 말이 거칠어지고 언어 사용자들의 수준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오히려 언어 사용자들의 수준이 높아지고 민주주의가 진전된 결과라고 해석해 볼 수 있다.
언어 사용자들의 수준이 높아져서 막말의 감수성이 높아지고, 민주주의가 진전되면서 수평적 의사소통이 가능해져서 막말을 향한 사회적 감시 기능이 훨씬 높아진 덕분이다.
따라서 누군가가 자신의 말을 막말이라고 한다면 변명이나 발뺌보다는 자신의 막말 감수성을 먼저 확인해 보아야 한다. 또, 막말은 이목을 끄는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부정적인 평가를 수반한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글: 신지영(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