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배우자/쉼표,마침표(국립국어원 온라인소식지)

고사성어 - 미생지신, 각주구검, 연목구어

튼씩이 2022. 9. 29. 12:53

 

언젠가 세상의 삼대 바보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미생지신, 각주구검, 연목구어에 나오는 남자들이라고 했다. 누가 한 말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이 남자들에 대해 종종 생각한다. 얼마나 바보 같길래 고사로 남고, 그래서 두고두고 놀림을 받는가. 먼저, 미생지신. ‘미생의 믿음’이라는 뜻이다. 미생이라는 남자는 사랑하는 여인과 다리 아래서 만나기로 한다. 여인은 오지 않는다. 장대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점점 더 굵어진다. 미생의 허리, 가슴, 목까지 물이 된 비가 차오른다. 그러나 미생은 자리를 떠날 수 없다. 떠나지 않는다. 결국 익사한다. 다음, 각주구검의 남자. 배를 타고 가다가 칼을 바다에 빠트린 한 남자가 있다. 칼을 건져 보려 하지만 실패. 남자는 품에서 다른 칼을 꺼내더니 배에 무언가를 새기는 게 아닌가? 칼을 빠트린 지점을 새긴단다. 바다에 새길 수 없으니 배에다 새기는 이 남자. 사람들은 이상하게 여긴다. 누군가 말한다. “배는 이미 떠났으나 칼은 떠나지 않았는데 이와 같이 칼을 찾으니 이상하지 않은가?” 마지막, 연목구어에는 제나라의 선왕과 맹자가 나온다. 다른 나라를 쳐서 영토를 넓히려는 선왕에게 맹자가 말한다. “이와 같은 욕심을 추구한다면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선왕이 묻는다. 맹자가 받는다. “이보다 더 심합니다. 나무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은 물고기를 얻지 못하더라도 재앙이 없지만, 이와 같은 욕심을 추구한다면 마음과 힘을 다해서 하더라도 반드시 재앙이 있을 것입니다.” 오지 않는 여자를 기다리는 남자, 바다에 칼을 빠뜨리고 배에 표시를 하는 남자,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잡으려는 남자. 공통점이 있다. 하나같이 뭔가를 구하려고 했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무모했다. ‘무모’라는 단어가 마음에 걸려 사전을 찾는다. 무모無謀. 없을 무, 꾀할 모. 글자 그대로 풀면, ‘꾀하지 못한다’는 뜻. 사전에는 ‘깊은 사려가 없음’, ‘신중하지 못함’이라는 풀이가 있다. 그렇다면 이 세 남자들은 과연 깊지 않았는가? 이들은 얕은 사람들인가? 여자를 기다리던 미생의 마음은 깊지 않았는가? 칼을 잃어버린 남자의 마음은 깊지 않았는가?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잡으려는 사람은 얄팍하기만 한 사람인가? 어떤 것은 보내고, 어떤 것은 보내지 말아야 하는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가? 다시, 궁금해졌다. 그렇다면 바보란 무엇인가. ‘지능이 떨어져 정상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못나고 어리석은 사람을 얕잡거나 욕으로 일컫는 말’이기도 하단다. 이 세 남자들은 전자인가 후자인가. 정상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못나고 어리석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 나는 도무지 모르겠다. 세상의 단어, 뜻풀이, 판단 들에 자주 발이 걸려 넘어진다. 바보들의 바보짓을 한심해하며 비웃는 내가 바보는 아닌지. 바보 같은 나는 바보 같은 짓을 한 적이 없다며 득의양양해하던 어느 시절을 떠올리며 바보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미생지신 尾生之信 尾: 꼬리 生: 날 之: 어조사 信: 믿을 뜻풀이: ‘미생의 믿음’이라는 뜻으로, 약속을 굳게 지키는 사람, 혹은 융통성이 없는 어리석은 믿음을 일컫는 말이다.

 

각주구검 刻舟求劍 刻: 새길 舟: 배 求: 구할 劍: 칼 뜻풀이: ‘배에 새겨 칼을 구한다’는 뜻으로, 사리에 어두워 어리석은 행동을 하거나 시대 변화를 모르고 옛것만 고집하는 완고한 사람의 행동을 말한다.

 

연목구어 緣木求魚 緣: 오를 木: 나무 求: 구할 魚: 물고기 뜻풀이: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구한다’는 뜻으로, 불가능한 일을 하려고 함을 비유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