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준 부산광역시장은 ‘아시아 10대 시민행복도시’ 선거 공약 중 하나로 ‘영어상용도시’를 내세웠다. 부산에 거주하면 누구나 영어를 잘하게 되는 영어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영어상용도시는 영어로 소통이 원활한 환경을 구축하는 것을 의미한다. 영어 국제학교 설립을 확대하고 민간과 공공기관의 영어 상용 환경을 조성하며, 영어 신문 및 영어 방송을 강화하는 것이 구체적인 내용이다.
외국어와 외래어가 난무하는 현대 사회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것이 잘못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대표 도시 중 하나인 부산을 ‘영어상용도시’로 만드는 것은 우리말을 지키려는 길과는 거리가 있다. 박형준 시장은 부산 영어상용도시의 목표는 “외국인과 외국 기업이 자유롭게 몰려드는 도시, 외국인이 사는 데 편리하고 좋은 도시”라고 밝혔다. 이 말은 사실 ‘외국인만 사는 데 편리하고 좋은 도시’일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이 말 속 ‘한국인’을 위한 도시는 없다. 구체적으로 부산시의 영어 상용화 정책이 왜 한국인을 위한 정책이 될 수 없는지 국어국문학과에 재학 중인 대학생의 시선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국어기본법을 위배하는 정책이다.
국어기본법은 국어 사용을 촉진하고 국어의 발전과 보전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제정된 법률이다. 국어기본법 제4조 1항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변화하는 언어 사용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국민의 국어능력 향상과 지역어 보전 등 국어의 발전과 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부산시에서 추진 중인 영어 상용화 정책은 국어의 발전과 보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행위라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국어기본법 제14조에서 공문서 등은 일반 국민이 알기 쉬운 용어를 사용하여 한글로 작성하라고 규정하였다. 영어 상용화 정책을 계속해서 추진할 경우 이 규정이 무시된 채 수많은 공문서에서 영어가 남용될 우려가 있다.
둘째, 공공 생활에서 정확한 소통을 가로막는다.
영어를 사용하는 환경을 만드는 과정에서 정책 이름과 공공시설 이름 등에서 영어 단어를 자주 사용할 것이다. 부산시가 광안대교를 다이아몬드 브릿지로, 달맞이 길을 문탠로드로 바꾸어 부르는 등이 대표적인 남용사례다. 이 상황에서 영어 상용화 정책 추진하면 행정용어에서도 영어 사용이 늘어날 것이다. 부산시는 영어 상용화 정책이 영어를 의무적으로 쓰는 공용화가 아니라 영어의 환경을 넓히는 방향이라고 했다. 하지만, 한쪽에 비중을 두면 자연스럽게 다른 한쪽은 설 곳을 잃게 된다. 영어 상용화 정책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우리 문화를 외국에 알릴 수 있다. 또한 정책을 만들기 전 여러 단체와 의견을 수렴하는 통로를 마련하겠다고 한 점은 구체적으로 언제, 어떻게 마련하겠다는 건지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아 신뢰성이 떨어진다.
셋째, 시민들에게 부담감을 안겨줄 수 있다.
일반 시민들이 외국인과 외국어로 대화하는 것은 어렵다. 일부 직업에서는 영어 공인 성적이 필요하고, 때로는 이 성적이 가산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시민이 영어를 잘하지 못하고 또 잘할 필요도 없다. 공부할 필요나 의욕이 절실하지 않은 시민들에게는 부산시가 조성하는 영어 사용 환경이 만들어졌을 때, 실효성을 주기보다는 시민들에게 여러 어려움과 장벽으로 다가올 수 있다.
현재 부산시의 정책을 살펴보았을 때, ‘영어 사용의 무조건적인 강요’는 아니다. 하지만 영어 사용의 범위를 확대하며 한글과 우리말에 소홀해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정책은 아니라는 점에 집중해야 한다. 부산에서 한국어를 사용하지 말자는 것은 아니지만, 엄격히 ‘한글문화명품도시’를 내세우며 보존하고 발전시켜야 할 한글을 옹호하는 움직임은 미약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여러 세계인은 한국어와 한글을 배우려고 세종학당과 한국어학당을 찾고 한국을 방문하는 추세이다. 따라서, 부산시는 방안을 모색한다는 답변보다는 현실적으로 한글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정책에 더 힘써주기를 바란다.
한글문화연대 대학생기자단 9기 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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