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배우자/쉼표,마침표(국립국어원 온라인소식지)

찰나의 우리말 - '외국인'은 누구인가?

튼씩이 2022. 10. 24. 12:58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는 제프리 홀리데이라는 미국 국적을 가진 교수님이 계신다. 서로 바쁘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 학기에 한두 번 정도는 시간을 내서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그간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눈다. 연구 얘기부터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까지 다양한 화제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야말로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한번은 한국어의 ‘외국인’이라는 단어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홀리데이 교수는 한국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는 이 ‘외국인’이라는 단어가 흥미롭다고 했다. 한국 사람들이 사용하는 ‘외국인’이라는 단어는 세 가지 뜻을 가지고 있는 듯하기 때문이란다. 첫째는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지 않은 사람, 둘째는 한민족이 아닌 사람, 셋째는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지 않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사용하는 것 같다는 것이 그분의 설명이었다.

우리 둘은 한국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이 가운데 외모에서 드러나는 민족적 정체성에 근거하여 ‘외국인’ 여부를 판단하는 것 같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한국 사람들은 보통 한국 사람이 가져야 하는 외모에 대한 고정 관념이 있고, 이를 바탕으로 외모로 보았을 때 한민족이 아닌 것으로 보이는 사람을 쉽게 외국인이라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국적이야 묻지 않으면 알 수 없지만, 민족적 정체성은 대체로 외모로 쉽게 드러난다. 다양한 민족과 함께 살아 본 경험이 부족하기에 이러한 고정 관념이 생겼으리라.

 

외국인은 보면 안 되나요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한국 사람들이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지 않는 사람을 ‘외국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는 홀리데이 교수의 이야기였다. 홀리데이 교수는 관광 안내소에 비치되어 있는 안내 책자를 보고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관광 안내소에 갔더니 안내 책자의 구분이 ‘내국인용’과 ‘외국인용(for foreigner)’으로 되어 있는데, 한국어로 된 것은 ‘내국인용’ 아래, 기타 다른 언어로 된 것은 ‘외국인용(for foreigner)’ 아래 꽂혀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한국어 안내 책자를 집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자신은 ‘내국인’이 아니니까.

 

이렇게 안내 책자의 분류가 ‘내국인용’과 ‘외국인용(for foreigner)’이라고 분류되어 있다는 것의 이면에는, ‘내국인’은 한국어를 잘하고 ‘외국인’은 한국어를 못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이러한 구분은 한국어를 잘하지 못하는 내국인과 한국어를 잘하는 외국인을 소외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겠냐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이렇게 ‘내국인용’과 ‘외국인용(for foreigner)’으로 구분되어 있는 안내 책자 비치대의 문구는 읽는 사람의 국적과 언어적 배경에 따라서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즉, 한국어를 잘하지만 내국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당신은 한국어로 된 안내 책자를 집으면 안 됩니다.”라는 경고처럼 읽힐 수도 있고, 내국인이지만 한국어보다는 다른 언어가 더 편한 사람들에게는 “한국어를 잘하지 못하는 당신은 내국인이 아닙니다.”라고 선을 긋는 말처럼 읽힐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니 ‘내국인용’과 ‘외국인용(for foreigner)’이라고 되어 있는 안내 책자의 비치 구분이 갑자기 폭력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내국인은 한국어, 외국인은 영어?

 

또 한 가지, ‘내국인용’과 ‘외국인용(for foreigner)’이라는 구분의 이면에는 소위 ‘외국인’이라고 분류된 사람들은 모두 영어를 읽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전제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도 생각하게 되었다고 했다. 영어와 한국어, 둘 모두를 잘 읽지 못하는 외국인이라면 이렇게 구분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씁쓸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안내 책자가 반드시 영어로만 되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외국인용(for foreigner)’이라고 구분되어 있는 것이 적절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외국인을 위한 안내 책자 가운데는 영어 외에도 일본어나 중국어 등 다른 언어로 된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 생각해 보니 ‘내국인용’이나 ‘외국인용(for foreigner)’의 구분 자체가 꼭 필요하지도 않았다. 그런 구분 없이 언어별로 비치해 두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언어별로 정리만 되어 있다면 굳이 어떤 언어인지를 밝힐 필요도 없다. 언어별로 정리된 안내 책자를 보고 사용자 스스로가 자신에게 편한, 혹은 자신이 읽고 싶은 언어로 된 책자를 선택하면 될 테니까 말이다. 안내 책자의 선택 기준은 전적으로 사용자의 몫이지 제공자의 몫은 아니지 않은가.

 

이렇게 우리가 다양한 언어로 안내 책자를 만드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조금만 더 생각한다면 ‘내국인용’과 ‘외국인용(for foreigner)’으로 구분해 놓은 것이 얼마나 적절하지 않은지를 깨닫게 된다. 안내 책자를 만들 때 한국어 책자는 꼭 내국인들에게 한정하여 읽힐 것을, 그리고 영어 혹은 중국어 등 외국어 책자는 반드시 외국인들에게만 한정하여 읽힐 것을 염두에 두고 만든 것은 아닐 것이다. 사용자의 국적이 아니라 사용자가 참고하고자 하는 언어가 안내 책자의 선택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는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국인용’과 ‘외국인용(for foreigner)’이라는 비치 기준 때문에 ‘언어’가 아니라 ‘국적’이 선택의 기준으로 읽혀 결국은 사용자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결과가 초래된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내국인용’과 ‘외국인용(for foreigner)’이라는 구분이 생기게 된 것일까? 그 배경에는 누구의 관점으로 범주를 나누고 그 범주에 이름을 붙였는가 하는 관점의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내국인용’과 ‘외국인용(for foreigner)’의 구분 이면에는 책자를 제공하는 쪽의 관점만이 담겨 있다. 이 책자를 집어 들 사용자의 관점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관점의 문제가, 그 관점으로부터 소외된 사용자들에게 소외감을 느끼게 한 것이다.

 

우물 밖에서 넓어진 하늘을 보자

홀리데이 교수와의 이야기를 통해 필자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이야기를 듣기 전에는 안내 책자의 구분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주의 깊게 살피지 못했기에 한 번도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화를 통해 한국어 외에 다른 언어를 선택해야 하는 사람들의 관점을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다양한 관점을 가진 사람들과의 대화가 생각의 지평을 넓히는 데 얼마나 필요한가를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어 안내 책자를 집고 싶은데 ‘내국인용’이라고 되어 있어서 선뜻 그 책자를 집어 들지 못하는 홀리데이 교수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면서 홀리데이 교수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울러 이런 구분으로 인해 조금이라도 불편한 마음을 가졌을지도 모르는 모든 분들에게도 국어학자로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가 서로 다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관점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편협함을 극복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자신의 관점만으로 보는 세상은 우물 안 개구리가 보는 우물 크기의 하늘에 불과할 뿐임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안다. 대한민국은 이제 점점 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국가로 성장해 가고 있다. 대한민국의 하늘은 광활해져 가고 있는데, 우리는 혹시 그 하늘을 우물 안에서만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반성해 본다.

 

 

글: 신지영(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