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배우자/쉼표,마침표(국립국어원 온라인소식지)

아 다르고 어 다른 우리말 - 가치와 값어치, 같은 듯 다른 쓰임새

튼씩이 2022. 10. 21. 12:55

훈민정음이 세상에 반포된 지 어느덧 57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훈민정음은 현존하는 지구상의 문자 중에서 유일하게 창제 연월일과 창제한 인물이 밝혀진 문자이다. 창제일과 창제자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훈민정음 해례본』덕분이다. 유네스코가 『훈민정음 해례본』을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것도 현존하는 유일한 문자 해설서로서 중요한 가치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가치’의 일반적 의미는 ‘쓸모’ 또는 ‘유용성’이다. 어떤 사물이 쓸모를 잃는 순간 가치도 소멸되고 어떤 대상의 유용성이 부정되는 순간 가치도 상실된다. 곧 가치의 기본 의미는 ‘사물이 어떤 목적에 쓰일 데가 있는 성질이나 정도’라고 정의할 수 있다.

세상에는 그 자체로 의미 있고 소중한 것이 있다. 어떤 용도로 쓰이지 않을지라도, 혹은 어떤 목적을 실현하지 않을지라도 존재 자체로 빛나고 귀한 것이 있다. 이런 점에서 가치의 또 다른 의미를 ‘어떤 사물을 참답고 의미 있게 만드는 것’으로 규정할 수 있다. ‘인생의 가치’는 ‘인생을 참답고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이라 할 수 있고, ‘예술의 가치’는 ‘예술이 우리에게 주는, 참답고 의미 있는 성질’이라 할 수 있다.

‘값어치’도 쓸모의 의미를 가진다는 점에서 가치와 유사하다. ‘아무 가치 없는 물건’은 ‘아무 값어치 없는 물건’으로 바꾸어도 의미가 달라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가치를 값어치로 늘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값어치가/가치가 꽤 나가는 귀금속
㉯ 사람 목숨의 값어치는/가치는 얼마인가?

값어치는 ‘값+-어치’의 조어 구성에서 보듯, ‘값’의 의미가 두드러진다. 그런 점에서 ‘천만 원의 값어치가 나가는 귀금속’은 자연스럽지만 ‘천만 원의 가치가 나가는 귀금속’은 부자연스럽다. 마찬가지로 ‘사람 목숨의 값어치’를 ‘사람 목숨의 가치’로 바꾸어 말하기 어렵다. 사망 보험금의 액수로 ‘목숨의 값어치’를 가늠할 수는 있을지언정 ‘목숨의 가치’는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값어치는 ‘어떤 대상에 상당한 값을 치를 만한 쓸모나 의의’로 정의할 수 있다.

 

 

㉰ 기업의 가치는 미래의 성장 가능성에 있다.
㉱ 그 기업의 값어치는 무려 수조 원에 이른다.

㉰의 ‘기업의 가치’와 ㉱의 ‘기업의 값어치’는 서로 맞바꾸어 써도 크게 무리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가치가 추상적 의미가 강하고, 값어치가 실제 값의 의미가 강하다는 점에서 본래의 문장이 더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한편 가치는 값어치와 달리 복합어나 용어를 풍부하게 만들어 내는 성질이 있다. ‘가치관/가치 판단/가치 중립/경제 가치/교환 가치/부가 가치/사용 가치/잉여 가치/투자 가치/화폐 가치/희소가치’ 등이 그 예로, 한자어와 잘 어울리며 전문 용어로 쓰일 때가 많다.

화제를 바꾸어 다시 한번 한글의 가치를 이야기해 본다. 훈민정음은 무엇보다도 세종대왕의 애민 정신, 즉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 담긴 문자라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이제 훈민정음은 한글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얼굴 역할을 하고 있다. 한글이 갖는 언어적이고 실천적인 가치가 웃음처럼 활짝 피어나는 날을 기대해 본다. 576돌 한글날을 기리며 우리가 읽고 쓰며 소통하는 한글의 소중한 가치를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글: 강은혜

※ 참고 자료

안상순, 『우리말 어감 사전』, 도서출판 유유,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