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만’이라고도 하고 ‘옴부즈맨’이라고도 합니다. 이 말을 들으면 어떤 단어가 떠오르십니까? 저는 오래전에 영화로 알려졌던 ‘부쉬맨’이란 단어가 연상이 됩니다. 서구 문물과 담쌓은 아프리카 부족에게 비행기 조종사가 공중에서 버린 콜라병이 떨어지자 신이 보낸 물건으로 인식하면서 벌어진 촌극(에피소드)을 다룬 영화였습니다.
‘옴부즈맨(Ombudsman)은 정부의 독주를 막기 위한 일종의 행정 감찰관 제도로써, 행정기관에 의해 침해받는 각종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3자 입장에서 신속·공정하게 조사·처리해 주는 보충적 국민권리 구제제도라고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쉽게 말해 옴부즈맨은 정부기관, 지방자치단체 등 행정기관이 민간 전문가를 위촉해 시행하는 ‘행정감시인’ 제도를 말합니다. 공무원들의 부당한 행정을 감시하여, 방지하자는 취지입니다.
대부분 행정기관에서 생산하는 문서와 책자에 ‘옴부즈맨’은 아무런 의심 없이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접하는 국민 중 그 뜻을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은 제 추측이지만 아마도 1%도 넘지 못할 것이라고 봅니다. 단어 자체로만 보면 ‘맨(man)’ 정도는 안다 해도 ‘옴부즈’는 도대체 무슨 뜻인지 짐작마저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공공기관과 언론에서는 옴부즈맨이 이미 보통명사로 자리를 확실히 잡은 터라 현장의 실무 공무원이 이를 자의적으로 ‘행정감시인’ 등으로 순화해 쓰기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공무원들에게는 옴부즈맨이 이해가 더 빠르기 때문인데 상급자에게 ‘엉뚱한 단어’로 보고했다가는 괜한 꾸중을 들을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입니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 보호’가 옴부즈맨 정책의 목적인데 그 용어가 가진 뜻이 어려워 오히려 ‘국민의 쉽게 알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대표적인 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모두가 ‘홈페이지’라고 부르던 것을 공공기관에서 ‘누리집’으로 바꾸어 부르는 최근의 현상을 보면, ‘옴부즈맨’이 ‘행정감시인’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점까지 부정해서는 안 되겠지요.
그림1. 여러 공공기관에서 '옴부즈만' 명칭을 활용하고 있다.
(출처: 용인시/금융위원회 공식 블로그)
(출처: 용인시/금융위원회 공식 블로그)
‘CI, BI’라는 광고업계 전문용어 역시 옴부즈맨 못지않게 혼란스럽습니다. 원래 CI(Corporation Identity)는 여러 가지 상품을 파는 기업의 이미지를 하나로 응축해 소비자들에게 정체성을 명확히 하는 것, BI(Brand Identity)는 어떤 상품에 대해 그렇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광고 전문회사가 개발한 개념어이자 상품입니다. 상업 기업에 제공했던 이 서비스를 광고회사들이 공공기관까지 시장을 넓힌 결과 많은 정부 기관과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도입했습니다.
문제는 기업과 성격이 많이 다른 공공기관에 동일 형식을 적용한 데다 사용자(공무원)들이 광고 전문가도 아니다 보니 ‘CI, BI’를 비롯해 ‘캐치프레이즈, 로고, 심볼, 비전’ 등 관련된 광고 전문용어들이 한마디로 ‘중구난방’으로 쓰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이들의 개발은 일반 전문기업에 의뢰하므로 적지 않은 예산이 들어가기 마련입니다.
물론 이러한 개념들이 불필요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제 소견으로는 각 기관마다 광고학의 개념을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자기 기관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 개념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엄선한 후 ‘상징 깃발, 도시 상표, 시정 비전, 시정 구호’ 등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우리말 개념어를 붙여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러고 보면 정부 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정하고 있는 고유의 ‘나무, 꽃’ 등은 ‘시 상징 나무, 시 상징 꽃’ 등으로 대부분 이해하기 쉽게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들마저 어느 날 ‘시티 심볼 트리, 시티 심볼 플라워’로 쓰이지 않기를 바라 마지않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전염병이 조금 누그러지면서 여러 공공기관이 ‘워크숍(workshop)’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각 기관마다 ‘숍’의 내용이 많이 다릅니다. ‘워크숍, 세미나, 포럼, 브레인스토밍’ 같은 용어들도 ‘수련회, 연구발표회, 연구토론회, 좋은생각(아이디어)개발회’ 등으로 순화되길 희망해봅니다.
그림2.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려는 정책이지만,
말이 어려워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기도 한다.
말이 어려워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기도 한다.
최보기(작가, 서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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