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나라의 말을 ‘모어(母語)’라고 한다. 이 말은 주로 외국에 나가 있을 때 자기 말을 이르는 것이다. 모어와 모국어는 같은 말일까? 한국말을 모어로 쓰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이 둘은 비슷한 말이다. 그러나 한 국가가 여러 민족으로 이루어져 있을 때, 모어란 곧 자기 민족의 말이다. 이러할 때 모어와 모국어는 다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모어란 그저 외국어에 대비되는 말이 아니란 점이다. 모어의 가장 기본적 의미는 자라면서 배운, ‘바탕이 되는 말’이다. 그러면 어머니의 품에 안겨 자라나면서 배운 말이란 어떠한 것인가? 잠시 모어의 뜻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글이 하나 있다. 1932년, 일본인이 한국말을 배우던 책 <조선어회화>의 한 면을 펼쳐 보자. 제34일 차, 배울 내용은 ‘교육’에 관한 것이다. 두 사람이 당시의 교육을 주제로 이야기하는데, 그들이 주고받는 말을 현대어로 옮겨 본다
가: 댁의 아이는 글방에 다닙니까?
나: 모두 학교에 입학시켰습니다.
가: 올해 몇 학년입니까?
나: 보통학교 일학년입니다.
가: 공부에 힘씁니까?
나: 공부를 무던히 합니다.
교사는 부지런히 가르치고 학생은 열심히 공부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부모들의 대화는 똑같아 보인다. 위 대화에서 ‘글방’과 ‘학교’가 대비되어 있다. 글방은 전통적인 교육 기관일 터이고, 이 말에 ‘신식 학교’에 입학시켰다는 부모님은 목에 꽤 힘을 주고 말하는 기분이다. 짧은 대화 중에 ‘몇 학년, 일학년, 공부에 힘쓰다, 무던히 하다, 부지런히 가르치다, 열심히 공부하다’와 같은 표현이 들어가 있다. 신교육이 시작된 당시에는 교육 분야와 관계된 말이 새로운 표현으로 선정되곤 했다.
나: 학과를 말하면 국어, 조선어, 산수, 한문, 작문, 습자, 도화, 지리, 역사, 물리, 화학, 체조 대개 그렇지요. 산술은 그중에 어렵습니다. 국어는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일 년만 배우면 대강 알아듣습니다. 2학년부터는 전혀 국어로 가르칩니다. 운동은 좋아하는 아이도 있고 좋아하지 않는 아이도 있습니다.
부모의 자랑은 계속된다. 신식 학교에서는 도대체 무엇을 배우는지 그때 일반인들은 궁금했을 것이다. 이어지는 말에 ‘교과목’이 있다. 국어, 산수, 한문, 지리, 역사 등 익숙한 교과목뿐만 아니라 놀랍게도 물리, 화학까지 나온다. 그런데 의아한 부분이 있다. 우선 ‘국어, 조선어’순으로 나온 교과목의 순서이다. 조선어는 당시 조선의 말일 테니 지금의 한국말이다. 그러면 조선어보다 앞에 나온 ‘국어’는 무엇인가? 이어지는 말을 보면 그 답이 나온다. 국어는 별로 어렵지 않고, 일 년만 배우면 대강 알아듣는다고 한다. 오히려 별로 어렵지 않다며 배워보라고 격려하는 모양새이다.
과연 일 년만 배워 대강 알아듣는 말이 ‘국어’란 말인가? 일본어를 ‘나라의 말’로 포장한 것 이 아닌가? 그렇다. 이 이야기는 조선어를 외국어로 배우고, 외국어였던 일본어를 국어로 만나던 어두운 시기의 이야기이다. 대화에서 이르기를 2학년부터는 조선어도 쓰지 않는다는데, 조선어는 일본어로 소통이 어려운 1학년이 잠시 일본어를 배우는 도구로 활용된 것일까? 짧은 이야기 속에 한 세기 전의 풍경이 담겼다.
언어학에서는 모어를 언어 발달 과정에서 바탕이 되는 말로 본다. 그 말로 배우고, 그 말로 생각하고, 그 말로 삶을 이어 간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모어는 아이들과 소통하다가 후세에게 남겨 주는 말이다. 모어는 그저 의사소통하는 도구가 아니다. 그러니 ‘알아들으면 되지’라거나, ‘뭘 그리 따져?’로 응답할 유형에 속하지 않는다.
지난 2년간 사회적 거리두기로 익숙해진 건강 문진표를 떠올려 보자. ‘예/네’의 상대어는 ‘아니요’지만, 대부분 서류에는 ‘아니오’가 적혀 있다. 보험 회사의 서류, 회원 가입을 위한 질문지뿐만 아니라, 교육청이나 학교에서 보내는 가정통신문까지 ‘아니오’라고 적혀 있는데, 이런 오류에 주목하지 않는 이가 많다. 영어 철자나 한자를 쓰다가 표기를 잘 모르면 사전을 찾는 데 비해, 우리말 사전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찾아보지 않기 때문이다.
모어란 한 세기 전의 저 말대로 대강 알아들으면 안 된다. 한국어 교실에 있는 우리는 한국어를 모어로 하지 않는 이들에게 가장 맞는 말을 보이고자 늘 힘쓴다. 자신의 말인 모어는 스스로 지키지 않으면 누구도 대신 지켜 주지 않는다. 그때의 ‘국어’라는 말처럼, 말에는 이데올로기가 들어 있다. 모어는 우리 삶의 바탕이 되는 말로,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다.
이미향(영남대 글로벌교육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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