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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처럼

튼씩이 2022. 12. 29. 13:10

토끼는 적응력이 매우 뛰어난 동물로, , , , 사막, 툰드라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기후대에 서식한다. 인간 역시 적응력이 좋은 동물이라 토끼와 만날 일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토끼는 인간 문화에 꽤 자주 등장한다. 한국인은 달에 옥토끼가 산다고 믿고, 토끼의 간이 용왕의 병을 고친다고 생각하며, 토끼를 부지런의 상징으로 여기기도 한다. 토끼가 십이지신에 든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우리는 토끼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토끼를 묘사하라 하면 대부분 큰 귀, 가뿐히 안을 수 있는 아담한 덩치, 달리기에 좋은 네 다리, 짧고 둥근 꼬리, 갈색 털을 언급한다. 하지만 이런 외모를 가진 토끼는 인간이 가축으로 길들인 일부 종에 불과하다. 세상은 넓고 토끼 종은 많다.

 

가장 큰 토끼는 북극토끼로, 몸길이는 70센티미터에 이르고 몸무게가 7킬로그램인 개체도 있다. 토끼 중에 다리도 가장 길어서 시속 65킬로미터로 달린다. 눈이 오는 겨울에는 흰 털이 나고 여름이면 털을 갈아 회색으로 변하는 북극토끼는 가히 토끼 세계의 거인이라 부를 수 있다.

 

반면 몸집이 작기로 유명한 멕시코토끼의 몸무게는 400그램으로 달걀 두세 개 무게밖에 안 나간다. 하지만 화산 근처에 서식하는 매우 강인한 토끼다. 화산토끼라고 불리는 이 토끼는 천적을 피해 높은 곳에서 살도록 진화해 왔는데, 기후 변화로 멸종 위기에 놓였다.

 

지구의 기온이 오르면서 화산토끼는 시원을 곳을 찾아 서식지를 더 높은 곳으로 옮겨야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다. 도시가 확장되면서 북쪽으로 가는 길도 막혔다. 몸집이 작아도 잘 살아온 화산토끼는 기후 변화 앞에 무릎을 꿇을지도 모른다.

 

중앙아시아 고원 지대에 사는 우는토끼는 귀가 둥글고 작아 쥐처럼 보여도 엄연한 토끼다. 몸집이 햄스터보다 조금 크고 색도 짙은 갈색이라 멀리서 보면 큰 쥐처럼 보인다. 천적이 나타나면 높고 큰 소리로 경보를 내보내기 때문에 우는토끼라는 이름이 붙었다.

 

우는토끼는 긴 겨울을 나기 위해 짧은 여름 동안 식량을 모은다. 이들은 풀과 꽃을 따서 볕이 잘 드는 바위에 얹어 놓는다. 햇빛과 바람이 토끼의 식량을 말려 준다. 이때 망을 잘 보아야 한다. 주위를 어슬렁거리던 순록이 한 입에 털어 넣고 가는 일이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어디에나 악당이 있다.

 

순록 역시 먹고 살려고 그러는 것이지만, 안타깝게도 먹이를 빼앗긴 작은 토끼가 할 수 있는 일은 우는 것밖에 없다. 그래서 우는토끼가 된 것일까? 햇빛과 바람으로 버무린 풀과 꽃을 쟁여 놓으니 꽃토끼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

 

토끼처럼 보이는 설치류도 있다. 비스카차는 우유니 소금 사막 한가운데 선인장이 자라는 섬에 사는 동물이다. 육상에 천적이 없고 먹이 경쟁도 심하지 않아 몸무게가 3킬로그램이나 나갈 만큼 크다. 거의 토끼의 평균에 필적하는 몸무게다.

 

비스카차의 천적은 하늘에 있다. 안데스콘도르는 바람과 함께 나나타 사냥감을 움켜쥐고 하늘로 날아간다. 이런 상황을 피하려면 콘도르가 날아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귓바퀴가 크고 소리를 잘 모을 수 있어 콘도르가 오는 것을 재빨리 알아차린 개체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모두 거대한 새의 먹이가 된다. 그 결과 비스카차는 설치류지만 토끼와 같은 외양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처럼 유전적으로 전혀 관계없는 종이 자연환경에 적응하다 보니 다른 종과 비슷한 외모를 지니게 진화한 것을 수렴 진화라고 한다.

 

토끼의 귀는 원래 큰 것이 아니고 소리를 잘 듣기 위해 그렇게 진화한 것이다. 잘 들어야 생존이 가능한 환경에 사는 동물이라면 귀가 큰 자손만 살아남는다. 그리고 큰 귀는 그 종의 특징이 된다. 토끼가 아니라도 말이다.

 

듣지 않거나 듣지 못하면 사라진다. 토끼의 해에 우리가 들어야 할 메시지는 명확하다. 세상의 소리를 잘 듣자.

 

이지유님/작가

 

좋은생각 20231월호 4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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