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9595
“우한폐렴은 특정 지역을 언급했다고 해서 코로나19로 바꿨다. 그렇지만 메르스를 풀어쓰면 중동호흡기증후군(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MERS)인데 지금도 메르스라며 지역명을 쓰고 있다. 일각에서는 병명을 바꾸려는 움직임이 오히려 부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의견도 있고, 지역명을 감추면 지역에 대한 책임소재가 사라지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다. 코로나도 처음에 어디서 시작했는지 의견이 다양하고 지금 미국 발표와 중국 발표가 다르고 실제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도 사실이다.”
김정현 MBC(문화방송) 아나운서는 지난 13일 한국어문기자협회가 제천 청풍리조트에서 개최한 ‘신문·방송 어문기자 세미나’에서 MBC가 방송언어에 대해 고민하는 지점들을 공유했다. 코로나19를 과거 ‘우한폐렴’으로 불렀던 사례 등 특정 사건명에 지역을 드러내는 문제에 일관된 기준을 적용할 수 있는지는 언론에서도 논의할 문제다. MBC는 이태원 참사를 ‘10.29 참사’로 부른다. 이 역시 이태원 지역 주민이나 상인들의 추가 피해가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 '우한폐렴'은 우한 지역 혐오를 부추긴다는 비판 등으로 코로나19로 병명을 바꿨다.
“방송말, 신문글 어떻게 만들어 가야 할까”를 주제로 진행한 이번 세미나에서 김 아나운서는 “후쿠시마 대지진도 후쿠시마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씌우니까 동일본 대지진으로 부르자는 의견이 있지만 후쿠시마가 입은 피해가 가장 심한데 동일본 대지진이라고 하면 후쿠시마 피해정도를 약화시킨다는 의견도 있다”고 덧붙였다.
공영방송 MBC가 방송언어를 다듬기 위해 하는 노력은 1997년 첫 방송 후 이어진 장수 프로그램 <우리말나들이>와 매해 새로운 주제로 제작하는 <한글날 특집 다큐멘터리>, 2018년 이후 4기를 맞아 현재 사내외 위원 총 10명으로 운영하는 ‘우리말위원회’가 있다. 우리말위원회에선 방송언어에서 차별표현, 쉬운 방송말 사용, 외래어나 신조어 사용 등의 문제를 고민해왔다.
김 아나운서는 최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권고로 초보자나 미숙한 사람을 뜻하는 ‘~린이’에 대해서도 무언가를 처음 입문한 사람이란 말에 꼭 비하 의미를 포함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의견이 있다는 것도 함께 전했다. 이에 이수미 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는 “주린이(주식+어린이) 대신 ‘주알못(주식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 쓸 수도 있고 ‘주식초보자’로 쓸 수도 있듯이 의미의 훼손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 다른 선택지가 있다면 꼭 그 단어가 필요한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MBC 사내 곳곳에 붙어있는 언어순화 표현들. 자료=김정현 MBC 아나운서
박진호 서울대 교수는 세대마다 언어감각이 다른 지점을 예시로 설명했다. 굵다와 가늘다는 원통형에 사용하고 두껍다와 얇다는 책과 같은 곳에 사용한다. 박 교수는 학교에서 학생들이 ‘다리가 두꺼워졌다’는 표현을 한 것을 보고 어색했다고 말했다. 자신의 언어감각에서 다리는 굵다-가늘다로 표현해야 할 대상인데 20대들은 여기에도 두껍다-얇다를 쓰면서 원통형 물체와 납작한 모양의 물체를 구분하지 않는 사례다. 영어에서도 thick(두꺼운, 굵은)과 thin(얇게, 가는)처럼 원통형과 납작한 물체를 구분하지 않는다.
반면 젊은세대가 더 정교하게 구분해서 사용하는 단어도 예로 들었다. 박 교수는 “사귀기 전 상태를 ‘썸탄다’라고 하는데 과거에 없던 말”이라며 “과거에는 사귀거나 아니거나 그 둘을 거칠게 범주화했다면 젊은 세대는 사귀는 단계와 사귀지 않는 단계 사이에 썸타는 단계를 세분화한 개념체계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박 교수는 이러한 세대간 언어감각의 차이에 대해 언론인들이 “공적 영역에서 말을 하거나 글을 쓰는 사람들 입장에선 서로 다른 사람이 섞여 있어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기는 어렵지만 좀 더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며 “위화감을 느끼는 언어 표현을 많이 사용하면 메시지에 집중하기보다 언어 표현 그 자체가 거슬리기 때문에 글의 성격을 감안해 어울리는 언어 표현을 골라쓰는 감각을 발휘해달라”고 당부했다.
방송언어에 대해 김하수 전 연세대 교수는 “과거에는 방송 언어가 모범적이고 표준 발음과 어휘를 제시하는 기능을 했다면 이제 방송은 재밌고 자극적인 말을 소개해주는 기능을 더 우선적으로 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신문언어에 대해 김 전 교수는 “기술 발전, 새로운 상품의 탄생, 새 문물이나 삶의 유형 등에 대한 넉넉하고 충분하게 해설할 수 있다”며 “보통 사람들이 ‘챗GPT’를 단숨에 이해해 내겠는가”라고 설명한 뒤 “신문과 방송이 소비자들을 위한 친절한 사교육을 맡아줄 수 없겠나”라고 했다. 시민들이 단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언어를 언론에서 조금 더 자세하게 소개해달라는 주문이다. 이는 신조어나 줄임말에 대한 설명뿐 아니라 전문용어에 대한 설명을 포함한다.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는 청년들의 줄임말뿐 아니라 언론 등에서 다양한 표현들이 로마자 약칭으로 사용하는 문제를 언급했다. 이 대표는 “CPTPP(포괄적 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IPEP(인도 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 등 도무지 정체를 가늠하기 힘든 국제기구 로마자 약칭이 국제무대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아무런 거름 장치 없이 쓰인다”며 “이런 로마자 약칭 대신 우리말 약칭이라도 개발해야 하는데 그나마 공식 언어 영역에서 원활한 소통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 3월 한국어문기자협회, 한국기자협회, 방송기자연합회, 한글학회, 한글문화연대가 구성하고 국립국어원이 참여하는 ‘우리말 약칭 제안 모임’에 기대를 건다”며 “줄임말 문화를 거스를 수 없지만 진정시킬 건 진정시키고 모호함을 줄일 수 있는 건 줄이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 한국어문기자협회 주최로 13일 제천 청풍리조트에서 열린 '방송말, 신문글 어떻게 만들어 가야 할까' 세미나에서 발언하는 김정현 MBC 아나운서(왼쪽)와 이수미 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
출처 : 미디어오늘(http://www.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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