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책을 읽자

대리사회 - 김민섭

튼씩이 2023. 6. 19. 13:01

 

 

대학 강사에서 대리기사가 된 ‘지방시’
천박한 욕망을 강요하는 대한민국 대리사회를 해부하다



“이 사회는 거대한 ‘타인의 운전석’이다!”
대한민국 사회에 은밀하게 자리 잡고 앉은 ‘대리사회의 괴물’은 그 누구도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서 행동하고, 발화하고, 사유하지 못하게 만들며 모두를 자신의 욕망을 대리 수행하는 ‘대리인간’으로 만들어 낸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들에게 주체라는 환상을 덧입힌다. 마치 자신의 차에서 본인의 의지에 따라 운전하고 있다고 믿게 만드는 것이다. 타인을 완벽히 통제하고 있다고 믿는 이들 역시, 결국 이 사회의 욕망을 대리하는 존재일 뿐이다. 우리는 주변에서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서 사유하지 못하는 이들을 자주 만난다. 그것은 사회적 지위나 명성과는 관련이 없다. 오히려 가장 높은 곳에 있으면서도 ‘대리인간’으로 존재하는 이를,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대리사회》는 그러한 공간에서 저자가 익숙하게 체험한 3가지 통제(행위, 말, 생각)를 바탕으로 괴물이 되어버린 대한민국 노동 현장의 단면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책이다. 대리사회에서 한 인간은 더 이상 신체와 언어의 주인이 아니었고, 사유까지도 타인의 욕망을 대리하고 있었다. 타인의 운전석에서 내린다고 해도 저자는 더 이상 온전한 ‘나’로서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이 사회 여러 공간에서의 경험에 따라 ‘순응하는 몸’이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는 결국 이 사회의 ‘대리인간’이었다. 대리사회의 괴물은 우리에게 주체로서 한 발 물러설 것이 아니라 경쟁하고 남보다 한 발 더 나아가기만을 강요해 왔다. 그렇게 우리는 모두가 괴물이 되고 있다.
2015년 말《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는 첫 책을 통해서 저자는 자신이 대학에서 보낸 8년을 ‘유령의 시간’으로 규정지었다. 스스로를 대학의 구성원이자 주체로서 믿었지만 그 환상은 강요된 것이었고, 그는 타인의 욕망을 대리하면서 강의실과 연구실에만 존재했다. 강의하고 연구하고 행정 노동을 하는 동안 그는 사회적 안전망을 보장 받을 수 없었고 재직증명서 발급 대상조차 아니었다. 이후 대학에서 나온 그는 그 시간이 ‘대리의 시간’이었음을 알았다. 그리고 ‘대리운전’이라는 노동을 통해서 대학뿐만 아니라 이 사회가 하나의 거대한 ‘타인의 운전석’임을 다시 확인했다.  - 책소개에서 -

 

 

나는 두 달 전에 쓴 글의 원고료와 어제 한 대리운전의 품삯을 같은 날 지급받는다. 어느 편이 더 상식과 합리인지는 명확하다. 타인의 운전석이, 우리가 믿는 그 어느 합리적인 공간보다도 오히려 더 인간을 주체로서 대우한다. - 206쪽 -

 

대학에서 나오며 나는 “새롭게 맞이할 거리의 강의실과 연구실에서 계속 ‘지방시’의 이야기를 써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대리사회≫를 쓰면서 세상이 그 자체로 거대한 강의실과 연구실임을 알았다. 대학은 세상의 전부가 아닌 조금 특별한 일부일 뿐이다. 나는 대학 바깥에서 얼마든지 ‘학’이 가능하다는 것을, 대학에서 나온 몇 개월 동안 몸의 언어로 배웠다. - 253쪽 -

 

가장 합리적이고 상식적일 것 같은 대학이라는 공간이 우리가 생각하는 바와는 전혀 다른 공간으로 다가와 조금은 낯설었다. 물론 조국 사태 이후 대학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이 많이 바뀌었지만 그래도 조금은 남아있던 대학이라는 공간에 대한 조그마한 희망이 사라져가는 듯해 아쉽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를 먼저 읽으려고 했으나 사정상 ≪대리사회≫를 먼저 읽게 되었는데, 순서는 관계 없었겠지만 그래도 순서대로 읽었으면 상황을 이해하는데 조금 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