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에서 자막은 빠질 수 없는 요소이다. 자막으로 상황을 설명하거나 재미를 극대화할 수 있다. 유쾌하고 재치 있는 적재적소의 자막은 보는 재미를 더한다. 하지만 일부 예능 프로그램의 자막을 보면, ‘우리말 파괴’가 빈번히 일어나고 있어 아쉽다. 우리말 자막에 불필요하게 영어를 섞어 쓰거나 틀린 맞춤법을 아무렇지 않게 쓴다. 특히 텔레비전 방송에 비해 규제가 덜한 유튜브 예능은 더욱 자유분방한 자막을 사용한다. 아무리 재미를 배가하기 위해 쓰는 자막이라 하더라도 과도한 언어 파괴는 시청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누구나 손안의 스마트폰으로 손쉽게 세상을 접하면서, 과거보다 훨씬 자주, 많은 글을 접하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스마트폰으로 뉴스 기사를 확인하고, 출연자의 말이 자막으로 나오는 예능을 즐기며, 틈나는 대로 유튜브에 들어가 자막이 달린 영상을 시청한다. 그런데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는 영상에는 잘못된 맞춤법과 외국어가 넘쳐난다. 특히 텔레비전 방송처럼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영상 자막에 잘못된 맞춤법과 과도한 외국어를 빈번히 사용한다면, 어떤 문제가 일어날까?
틀린 맞춤법을 반복해서 학습한다?
이연 한국재난정보미디어포럼 회장은 “카톡이나 유튜브 자막 등에 일부러 맞춤법을 틀리게 적는 경우가 있다”면서 “이는 어린이들이 맞춤법을 준수하지 않아도 된다는 분위기를 조장할 가능성이 다분해 교육에 좋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맞춤법에 맞춰 글을 쓰는 것은 매우 당연한 책임이다. 사회가 맞춤법 오류 현상을 쉽게 용인해주면 다른 위법한 행위도 관용의 여지가 생긴다. 이는 사회 통념상 좋지 않다”고 덧붙였다. 개인과 개인이 대화를 나눌 때에는 맞춤법을 틀려도 상관없겠지만, 여러 사람이 보는 영상 콘텐츠는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자막 작업에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같은 기구에서 텔레비전 방송은 물론 유튜브 등 유사 방송의 맞춤법도 관리, 감독할 필요가 있다.
특히 남녀노소 누구나 많이 시청하는 예능 프로그램은 자막이 많은 편이다. 이때 반복적으로 틀린 맞춤법에 노출된다면, 잘못된 언어습관을 크게 개의치 않는 잘못된 통념을 심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자막은 국민의 언어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자막에 대한 논의는 활발하지 않다. 전용길 전 KBS 제작본부장은 한 인터뷰에서 “적어도 방송에 속하는 대중미디어영역이라면 나라의 국어를 지키고 순화하여 발전시킬 책임이 있다”면서 “우리의 혼인 ‘말과 글’의 보호와 진화에 대한 꾸준한 담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맞춤법이 틀린 자막은 특히 청소년과 외국인에 악영향을 끼친다. 아직 올바른 맞춤법 교양을 수립하지 못한 초심자가 ‘가짜 문장’들이 난무한 영상을 보며 자연스레 우리말을 익히는 일은 꼭 막을 필요가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발표한 '2021 방송언어 조사자료집'에 따르면,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에서 영어 자막 사용이 해마다 급증해, 2020 상반기에는 한 프로그램 당 약 68회 영어 자막이 영문 또는 한글로 노출됐다고 설명한다. 예능 프로그램 당 영어 자막 사용 횟수는 2019년 47.9회, 2020년 57회, 2021년에는 상반기만 68.2회를 기록했다. 신조어와 같은 유행어도 자막에 많이 등장하는 추세다.
온라인 학습, 스마트폰 사용 등이 익숙한 1020 세대가 신조어의 빠른 흐름과 유행을 주도하고 있다. 유아나 어린이들이 제대로 된 어휘의 습득보다 신조어나 줄임말로 된 콘텐츠를 먼저 접하는 일도 흔하다. 2022년 말 스마트폰 보유율이 93.4%를 넘어서면서, 텔레비전같은 전통적인 영상 매체보다 접근이 용이한 유튜브,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OTT) 등 동영상 콘텐츠 플랫폼 사용이 일상화된 시대에 접어들었다. 손안의 스마트폰으로 손쉽게 정보를 얻는 상황에서 방송용어를 규제하지 않는다면 바른 우리말 표현을 먼저 배우고 활용하는 능력은 갈수록 떨어질 것이다. 이번 기사에서는 예능 방송에서 일어나는 자막의 언어 파괴 현상에 주목해, 국내 인기 텔레비전 예능 방송 및 유튜브 방송에서 기본적인 맞춤법을 어기고 불필요한 외국어를 사용한 대표적인 사례들을 간추려 보았다. 줄임말과 신조어, 합성어에서 보이는 언어파괴 중 방송 출연자 개인의 언어습관일 수 있는 사례는 제외했다. 실태는 어떠한지 함께 확인해보자.
예능 자막의 언어 파괴 사례
텔레비전 방송과 함께 유튜브에 조각(클립) 영상을 함께 게시하는 인기 지상파, 케이블 예능 3개와 유튜브에만 게시하는 예능 방송 3개를 대표로 선정했으며, 창구(채널)별 가장 조회수가 높은 영상을 조사하였다.
조사한 결과, 여러 예능 방송 자막에서 맞춤법 파괴와 불필요한 외국어가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위의 두 장면은 예능 방송에 맞춤법 파괴와 외국어 자막을 사용한 예시이다.
왼쪽 사진은 예능 방송 ‘라디오스타’의 장면이다. 출연자 이은지가 엠지(MZ)세대는 재미없는 이야기가 나오면 진동벨 소리처럼 어색한 웃음소리를 낸다며 그 웃음소리를 재연하자, ‘MZ’와 ‘진동벨 웃음’을 합성한 자막이 방송에 삽입되었다. ‘MZ’의 ‘Z’와 ‘진동벨 웃음’의 ‘ㅈ’의 발음이 비슷하다는 점에 착안한 자막이다. 영어 알파벳을 한글 자음 대신 쓰는 자막이 최근 예능 방송에서 종종 보이고 있다. 당연히 이는 맞춤법 파괴 자막에 해당한다.
오른쪽 사진은 예능 방송 ‘런닝맨’의 한 장면이다. 이 장면에 나타난 자막에서는 ‘훔친’이라는 우리말 대신 외국어에 우리말 어미를 붙인 ‘스틸한’이라는 단어와 단순한 맞춤법 실수가 보인다. ‘개구장이’는 맞춤법상 올바른 표현이 아니다. ‘개구쟁이’가 맞는 표현이다. 예능 방송의 자막에서 맞춤법 검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예라고 볼 수 있다.
위의 두 장면은 유튜브 예능 방송 자막에 맞춤법 오류가 나타난 예시이다. 왼쪽 사진은 유튜브 예능 방송 ‘터키즈’의 한 장면이다. 이 자막의 ‘제꺼’는 맞춤법이 틀린 표현이다. 자신이 소유한, 혹은 소유하고 싶은 대상을 지칭할 때 ‘내꺼’나 ‘제꺼’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소리는 그렇게 나더라도 ‘내꺼’, ‘제꺼’가 아니라 ‘내 거’, ‘제 거’가 올바른 표기이다. ‘꺼’가 아니라 ‘거’라고 써야 하며, ‘제’와 의존 명사 ‘거’는 각각의 단어이므로 띄어서 써야 한다.
오른쪽 사진은 유튜브 예능 방송 ‘출장 십오야’의 한 장면이다. 여기서 ‘델꼬 옮’은 맞춤법을 무시한 표현이다. 맞춤법에 따르면 ‘데리고 옴’이라고 표기해야 한다. ‘델꼬’는 ‘데리고’를 빠르게 말했을 때의 발음을 표현한 말로, 맞춤법 상으로 틀린 표현이다. ‘옮’ 역시 틀린 표기이다. ‘오다’의 명사형은 ‘옴’이다.
예능 방송 자막에 불필요한 외국 문자가 사용된 경우도 많다. 위의 두 장면은 예능 방송에 불필요한 외국 문자가 사용된 예시이다. 왼쪽 사진은 예능 방송 ‘아는형님’의 한 장면이다. 감탄사 ‘와’를 영어로 ‘WAAA…’라고 표현했다. 오른쪽 사진은 유튜브 예능 방송 ‘출장 십오야’의 한 장면이다. ‘준비하시고’와 ‘쏘세요’의 ‘고’와 ‘요’를 알파벳으로 표기했다. 둘 다 한글로 써도 되는 자막에 불필요하게 알파벳을 사용한 예시이다.
위의 왼쪽 사진은 유튜브 예능 방송 ‘출장 십오야’의 장면이다. 해당 자막은 ‘저 인간도 선택적 I(MBTI 성격 검사의 한 유형)잖아.’라는 출연자의 대사에서 ‘인간’을 ‘Person’으로 바꾸어 표기한 것이다. ‘인간’이라는 표현이 가진 강한 어감을 중화하기 위해 영어 단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다른 유튜브 예능 방송에도 나타났다. 오른쪽 사진은 유튜브 예능 방송 ‘문명특급’의 한 장면이다. ‘가인왕국 미치겠네.’라는 출연자의 대사를 ‘가인왕국 ME치겠네’라고 표기했다. ‘미치겠네’를 부드럽게 자막으로 표현하기 위해 ‘미’를 ‘ME’라고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말로도 중화할 수 있는 자막에 영어 단어와 알파벳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위의 두 사례도 불필요한 외국어 자막이 사용된 예라고 볼 수 있겠다.
유튜브는 왜?
앞의 사례를 보면 예능 방송 자막에서의 언어 파괴는 지상파보다 유튜브에서 더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국내 인기 텔레비전 예능 방송 빛 유튜브 방송을 선정하여 조사한 결과, ‘MZ진동벨’과 같은 맞춤법 파괴, ’개구장이‘, ‘제꺼’, ‘델꼬’ 등의 맞춤법 오류를 찾아볼 수 있었다. 또 지상파와 유튜브 자막 모두 한글로 나타낼 수 있는 말임에도 일부러 알파벳을 활용하여 자막을 달았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규칙 제7조 16항, ‘방송은 바른말을 사용하여 국민의 바른 언어생활에 이바지하여야 한다’는 조항이 2015년 10월 8일에 신설되었다. 또 지상파방송의 책임에 대한 규정을 다루는 제8조에서는 지상파방송이 사회통합 실현에 기여해야 하며, 국민들이 보편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며, 시청자의 정서와 윤리수준에 적합한 내용을 방송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외에도 방송언어에 대한 규정이 따로 있는데, 해당 규정에서는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표준어와 바른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외국어의 경우, 국어순화 차원에서 신중히 사용해야 한다는 규정도 있다.
유튜브의 경우, 유튜브 고객센터 내 ‘유튜브 커뮤니티 가이드’ 탭에서 방송 콘텐츠 관련 규정을 찾아볼 수 있다. 가이드의 내용을 위반할 경우 동영상이 삭제되거나 채널이 경고를 받을 수 있고, 반복될 경우 채널이 제한되거나 폐쇄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해당 탭에서는 스팸 및 기만 행위, 민감한 콘텐츠, 폭력적이거나 위험한 콘텐츠, 규제 상품(주로 마약이나 총기류), 잘못된 정보에 대한 규정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중 언어와 관련된 규정은 성적으로 저속하거나 과도한 욕설을 제재하는 규정 뿐이다. 게다가 지난해 11월 유튜브는 ‘광고주 친화적인 콘텐츠 정책’을 변경하면서 욕설 등 부적절한 언어에 대한 정책을 수정했다. 욕설의 수위에 따라 수익 창출을 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이는 모든 욕설이 동일하게 취급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처럼 유튜브는 언어 사용과 관련해서는 지나치지 않다면 크게 제재하지 않는다. 유튜브는 방송사와는 다르게 수많은 영상 플랫폼 중 하나이기 때문에 방송사의 규정보다 상대적으로 규정이 약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방송사에 적용되는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은 공정성, 객관성, 권리침해금지, 윤리적 수준, 소재 및 표현기법 등 총 9개의 큰 범주로 나뉘는데, 그 속에 70개의 조항을 두어 더욱 세부적인 내용을 밝히고 있다. 반면에 유튜브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총 5개의 범주와 22개의 세부 조항만 명시하고 있을 뿐이다.
유튜브는 이처럼 언어 사용 관련 규정이 적을 뿐만 아니라 심의과정도 다소 허술하다고 할 수 있다. 국내 방송사의 경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달에 두 번씩 정기적으로 회의를 열어 심의를 위반한 방송에는 어떤 방송이 있는지, 어떤 제재를 줄지 정한다. 그에 반해 유튜브는 심의를 위반했을 때 경고를 주지만, 경고를 받고 90일 동안 경고를 다시 받지 않는다면 기존의 경고가 무효화된다. 또 유튜브는 콘텐츠가 어떤 사항을 위반했는지는 고지하지만 구체적으로 경고를 받은 사유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는다. 국내 방송사와 해외 영상 플랫폼이라는 차이가 있지만, 이용자에게 영상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국내 방송사와 유튜브는 공통점이 있다. 게다가 미국 마케팅조사업체에 따르면 유튜브 4월 전세계 이용자수가 누적 37억 2000만 명이라고 한다. 이처럼 수많은 이용자가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유튜브 영상에 잘못된 표기가 사용된다면 이용자들은 자연스럽게 오류를 습득할 것이다. 표기 뿐만 아니라 지나친 외국어 사용 역시 이용자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더욱더 많은 언어파괴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
예능 자막의 맞춤법 오류와 외국어 사용을 줄이기 위해 방송사에서는 자막 제작자를 대상으로 올바른 한글 사용을 촉구하는 강연을 하는 등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예능 방송에서는 맞춤법을 일부러 지키지 않음으로써 재밌는 자막을 연출하려고 하는 ‘맞춤법 파괴’가 일부 일어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도 세심한 감독이 필요하다. 외국어 자막은 기본적으로 알파벳 대신 한글을 사용해야 한다.
앞서 본 것처럼 유튜브는 자막에 대한 규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논란이 지상파에 비해 더 많이 생겨나고 있다. 따라서 이를 방지하기 위해 유튜브 자막에 대한 심의 기준도 필요하다. 유튜브 자체 제작 예능 방송에 대해 유튜브는 자막 검수팀을 만들어 맞춤법 오류와 외국어 사용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또한, 유튜브에 맞춤법 오류와 같은 잘못된 한글 사용을 신고할 수 있는 기능을 추가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시청자들이 직접 영상을 보며 맞춤법 오류를 발견하고 댓글로 신고하는 기능은 시청자도 올바른 맞춤법을 사용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해 줄 것이다.
이연 한국재난정보미디어포럼 회장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보다 엄격히 텔레비전 방송, 유튜브 등의 유사방송의 맞춤법 실수를 제재해야 한다”고 밝혔다. 유튜브, 방송사, 자막 제작자와 시청자들이 자막 수준 향상의 필요성을 다 같이 인지하고, 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시민 단체에서는 지상파 및 유튜브 예능 방송의 한국어 사용 실태를 계속해서 감시해야 하며 올바른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주기를 바란다.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10기 김가현, 김현선, 나지은, 이명은, 정채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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