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에 '나이가 적어도, 많아도 가입 가능한 종신보험!'이라는 보험 광고가 나온다. 이를 보고 민수는 "죽을 때까지 보장되는 보험이라니! 좋은데?"라고 말하고 옆에 있던 영희는 "사망 시 보상을 받는 보험이구나!"라고 말한다. 두 사람 중 옳게 말한 사람은 누구일까? 정답은 영희이다. 그러나 대학생 22명 중 종신보험을 영희처럼 이해하는 학생은 단 2명에 불과했다. '납입 최고'(납입 재촉), '미수 보험료'(못 받은 보험료) 등과 같은 보험용어뿐만이 아니다.
한자와 영어로 범벅된 의학용어 또한 이해가 어렵긴 마찬가지이다. 당신이 교통사고가 나서 병원에 입원했다고 가정해보자. 병실에 누워있던 당신에게 의사가 다가와 당신의 상태를 설명해준다. "늑골(갈비뼈)에 금이 가서 몇 주는 입원하셔야 하고요, 하지(다리)에 좌상(타박상)이 약간 있어 치료가 필요합니다. 또, 오래 누워계시면 소양증(가려움증)이 생길 수 있으니 주의하셔야 합니다." 여기서 당신은 의사의 설명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는가? 이처럼 한자와 영어로 된 수많은 전문용어는 우리를 당혹스럽게 한다.
부담보, 모집인, 수익자... 헷갈리는 보험용어
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연령은 보험마다 다르지만 청년이건, 중년이건, 노년이건 보험 가입 시 꼭 알아야 하는 보험용어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건 크게 다르지 않다. 실제로 복잡하고 헷갈리는 보험용어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던 경험을 묻는 질문에 50대 여성 문 씨는 “보험에 가입할 때 설계사가 일일이 용어를 설명해주면 그 당시엔 이해가 되지만 이후에 약관책을 펼쳐보면 용어 이해가 잘 되지 않아 힘들었던 경험이 있다.”라고 답했다. 20대 청년도 마찬가지였다. 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이 씨(24세)는 같은 질문에 “운전면허도 땄고 곧 취업도 할 거라 자동차에 관심이 생겨 자동차보험을 이것저것 알아봤는데 용어도 어렵고 표현도 너무 복잡해서 선뜻 가입을 결심하기 어려웠다.”라고 답했다. 2019년 보험연구원이 실시한 '보험소비자 설문조사'에 따르면, 본인의 보험이해력 수준을 묻는 문항에 '낮다'고 답한 비율은 33.9퍼센트였으며, '높다'고 답한 비율은 9.1퍼센트에 불과했다. 또한 '본인이 가입하고 있는 보험상품의 보장내용 인지 정도'를 묻는 질문에는 절반에 가까운 44.9퍼센트가 '모른다'고 답했다.
출처: 보험연구원 <2019 보험소비자 설문조사>
이러한 현상의 원인 중 하나로 ‘이해하기 어려운 보험용어’가 언급되는 가운데, 한편에서는 보험용어뿐 아니라 암보험 약관 속 의학용어와 같은 특정 분야별 전문용어도 이해의 걸림돌이 된다고 주장한다.
들어는 봤는데, 그래서 어디가 어떻다고?... 소통의 걸림돌, 의학 전문용어
자동차보험에서는 자동차용어가, 의료보험에서는 의학용어가 약관 내용의 주를 이룬다. 2018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가구 중 79.9퍼센트가 1개 이상의 실손의료보험에 가입한 것을 보면, 사람들이 생명과 연결된 보험을 거의 필수로 여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앞서 나온 50대 여성은 “항상 보험 약관책을 읽으면 의학용어가 걸림돌이 돼 글이 잘 읽히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의학용어가 난관이 되는 건 보험약관에서만이 아니다. 많은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의학분야의 특성상 다른 전문용어들과는 달리 의학용어는 일반인들에게 쉽게 노출된다. 따라서 환자와의 효과적인 소통과 질 높은 진료를 위해 이해하기 쉬운 의학용어의 사용이 더더욱 중시된다. 이미 오래전부터 의학용어를 쉬운 우리말로 바꾸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는데, 2013년 출간된 책 <아름다운 우리말 의학전문용어 만들기>가 대표적인 예이다. 이 책은 어려운 전문용어가 현실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지에 대한 실제적인 고민과 함께 ‘종창’을 ‘부기’로, ‘구순염’을 ‘입술염’으로 바꾸는 등 변화가 필요한 의학 전문용어를 언급하고 대체용어를 제안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전문용어는 현장에서 오랫동안 고착되어온 용어이기 때문에 이를 바꾸기 쉽지 않다는 주장도 나온다.
보험용어, 의학용어와 같은 전문용어를 둘러싼 문제들의 근본적인 원인은 교육부재가 아니다. 실생활과 너무나 밀접한 관련이 있는 두 분야의 전문용어는 관련 교육을 받지 못한 걸 탓할 게 아니라, 애초에 이들이 한자와 영어로 범벅된 너무 어려운 용어임을 탓해야 한다. 텔레비전 광고에서 ‘종신보험’ 대신 ‘사망시 보상받는 보험’이라는 말을 썼다면 민수가 잘못 이해할 일도 없었을 것이고, 의사가 "갈비뼈에 금이 가서 몇 주는 입원하셔야 하고요, 다리에 타박상이 약간 있어 치료가 필요합니다. 또, 오래 누워계시면 가려움증이 생길 수 있으니 주의해주셔야 합니다."라고 말해줬다면 당신은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꾸준한 개선 노력에도 무너지지 않은 전문용어의 장벽, 새롭고 혁신적인 개선 방안의 등장이 절실한 때이다.
한글문화연대 대학생기자단 10기 강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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