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얼레빗 제4904호) 사람을 업어서 물을 건네주던 ‘월천꾼’

튼씩이 2024. 1. 16. 08:07

 “한 개울을 지나는데 월천꾼이 있어 가죽 바지를 입고 물속에 서서 삯을 받고 사람을 건네준다. 나를 업고 개울로 들어가다가 얼음에 발이 미끄러져 나를 업은 채 물에 주저앉아 버렸으니 비록 맹분(孟賁)의 용기와 제갈공명의 지혜를 가졌다고 하더라도 이 지경에 이르러서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위 내용은 명에 가는 사신 동지사의 수행원으로 따라갔던 박사호(朴思浩)가 쓴 《심전고(心田稿)》에 나오는 월천꾼 이야기입니다. ‘월천꾼(越川軍)’은 조선시대 삯을 받고 시내와 여울을 건너려는 사람을 업어서 건네주던 사람인데 건널 섭(涉), 물 수(水)를 써서 ‘섭수꾼(涉水軍)’이라고도 했습니다. 월천꾼은 평소에는 자기 일을 하다가 여름철 비가 많이 와 물이 불어났을 때와 겨울철 얼음이 단단하게 얼기 직전 또는 얼음이 막 풀린 때 주로 일을 했지요.

 

▲ 한 여성을 업고 가는 사람을 그렸다. 기산 김준근,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

 

《심전고》에 나오는 월천꾼 이야기를 보면 박사호를 업은 월천꾼이 미끄러져 물에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그 바람에 박사호는 월천꾼의 목을 끌어안고 당황스러워하는데 같이 가던 사람들이 배꼽 빠지게 웃었다고 합니다. 월천꾼은 어깨까지 오는 가죽바지를 입기도 했지만, 미끄러워 주저앉아 버리면 가죽바지를 입은 것이 아무런 소용이 없었지요. 월천꾼은 가마나 무거운 짐도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