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얼레빗 제4911호) 군대에 대신 가는 아르바이트 ‘대립군’

튼씩이 2024. 1. 30. 15:21

지난 2017년 <대립군>이란 이름의 영화가 개봉되었습니다. 영화는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는 어린 ‘광해’(여진구)에게 조정을 나눈 ‘분조’를 맡기고 의주로 피란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임금 대신 의병을 모아 전쟁에 맞서기 위해 머나먼 강계로 떠난 광해와 분조 일행은 남의 군역을 대신하며 먹고 사는 ‘대립군’들을 호위병으로 끌고 가다가 벌어지는 사건을 다뤘습니다.

 

▲ 영화 <대립군> 포스터, 폭스 인터내셔널 프러덕션 (코리아) 제공

 

그런데 《현종실록》 4년(1663년) 11월 27일 기록에는 다음과 같은 얘기도 나옵니다. “영동 재해 지역 중에서도 강릉과 양양이 심합니다. 두 고을 기병이 지금 당번이오나 옷과 물품이 허술해 얼어 죽을까 염려됩니다. 그러니 번 서는 것을 한 달 감해 주고 쓰고 남은 군포로 품팔이에게 대립시키는 것이 편할 듯합니다” 이는 16부터 60살까지의 양인 남성이 수시로 군사훈련을 받다가 유사시 동원되었던 때의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병역의 의무를 군역이라고 하는데 포목을 내면 면제받았으며, 이를 군포라고 불렀습니다. 군포는 균역법이 시행되기 전까지 한 해에 2필이었으니 이는 반년 치 식비 정도였다고 하지요.

 

영조 임금 때 균역법이 시행되면서 한 해에 한 필로 줄었지만 이도 여전히 버거워하는 사람들은 날품팔이를 고용해서 이를 대신했습니다. 이때 품삯을 받고 군역을 대신하는 사람을 ‘대립군’이라고 하였는데 군대에 대신 가는 아르바이트였지요. 대립군은 위 《현종실록》 기록처럼 재해 때 나라에서 직접 고용하기도 했던 순기능도 있지만 역기능도 컸다고 합니다. 1700년 숙종 떄 이세정이란 이는 과거 시험장을 지키는 군졸을 매수해 자기 종 최말선을 대립군으로 쓰게 한 다음 마음껏 부정행위를 저질러 급제까지 한 일도 있었다고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