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 오후는 연가를 냈습니다. 막내를 데리고 병원에 가야 해서요.
면역력이 떨어지는 애들은 으레 가을이나 겨울에 감기에 걸리지만
막내가 걸린 감기는 좀 오래가네요. 그래서 큰 병원으로 데려가 보려고요.
'으레'는
"두말할 것 없이 당연히" 또는 "틀림없이 언제나"라는 뜻을 지닌 어찌씨(부사)입니다.
선비는 으레 가난하려니 하고 살아왔다, 그는 회사 일을 마치면 으레 동료들과 술 한잔을 한다처럼 씁니다.
소리가 비슷해서 '으레'를 '의례'로 쓰는 경우가 있는데,
이 두 낱말은 뜻이 다릅니다.
'의례'에는 몇 가지 뜻이 있으나 모두 한자입니다. (依例, 義例, 儀禮, 儀禮)
의례를 너무 따지면 딱딱합니다.
그래서 저는 어디서건 사회를 볼 때 으레 실없는 소리부터 합니다. ^^*
고맙습니다.
아래는 2009년에 보낸 우리말 편지입니다.
[우연하다와 우연찮다]
안녕하세요.
유행가 노랫말에는 그 시대가 담겨있다고 합니다.
때에 따라서는 노랫말이 어찌 그리 꼭 제 맘 같던지요. ^^*
어제는 우연히 '우연히'라는 노래를 들었습니다. 그 노래를 부른 가수는 '우연이'이더군요.
나이트클럽에서 우연히 만났네 첫사랑 그 남자를
추억에 흠뻑 젓어 함께 춤을 추었네 철없던 세월이 그리워...
뭐 이런 노랫말로 이어지는 노래 있잖아요.
오늘은 '우연히' 이야기를 해 볼게요.
우연히는 우연하다에서 온 말로
"어떤 일이 뜻하지 아니하게 저절로 이루어져 공교롭다."는 뜻입니다.
이걸 모르시는 분은 안 계실 겁니다.
그럼 '우연찮게'는 무슨 뜻일까요?
'마땅히 우연하지 아니하다'는 뜻이겠죠?
'우연하지 않게'가 줄어서 '우연찮게'가 되었으니
우연한 게 아닌 필연적인 게 우연찮다는 뜻일 겁니다.
이렇게 '우연하다'와 '우연찮다'는 정 반대의 뜻입니다.
근데 이상하게도 실생활에서는 우연하다와 우연찮다가 같은 뜻으로 씁니다.
어제 집에 가다가 우연히 초등학교 친구를 만났다.
어제 집에 가다가 우연찮게 초등학교 친구를 만났다.
위 두 문장 가운데 여러분은 어떤 게 더 자연스러운가요?
두 월(문장)의 뜻은 분명히 다른데 별다름을 못 느끼시죠?
'우연찮다'는 1992년부터 한글학회 우리말큰사전에 들어간 낱말입니다.
그때 오른 뜻은 "우연하지 아니하다의 준말"입니다.
곧, 우연하지 않은 필연인 경우에 쓰는 말로 오른 거죠.
몇 년 뒤 1999년 국립국어원에서 표준국어대사전을 만들면서 그 뜻이 바뀝니다.
"꼭 우연한 것은 아니나 뜻하지도 아니하다."라고 풀어놨습니다.
'꼭 우연한 것은 아니나 뜻하지도 아니하다.'는 말이 무슨 말이죠?
우연히 만났다는 건가요, 아니면 일부러 만났다는 건가요?
사전에 든 보기에
'그는 이번 사건에 우연찮게 연루되었다.'가 있습니다.
아마도 이 말은
그는 이번 사전에 연루되었는데, 꼭 우연히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뜻하지 않게 그렇게 되었다...
뭐 이 정도 뜻일 겁니다.
애매한 소리 잘하시는 정치인들이 쓰기에 딱 좋은 말 같네요. ^^*
편지가 좀 길어졌는데요.
오늘 드리고 싶은 말씀은,
낱말을 만드는 것도 좋고, 한 낱말에 새로운 뜻을 더 넣는 것도 좋지만,
기존에 잘 쓰던 낱말의 쓰임까지 흐리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그냥 국어를 전공하지 않은 제 생각입니다.
고맙습니다.
성제훈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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