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는 2010년에 보낸 우리말 편지입니다.
[사전 이야기] 안녕하세요.
저는 가끔 문제를 내고 맞히신 분께 작은 선물을 보내드리는데 그게 바로 제가 만든 '갈피표'입니다. 그 갈피표를 올려놓은 종이에는 이런 글이 쓰여 있습니다.
책갈피 : 책장과 책장의 사이 갈피표 : 읽던 곳이나 필요한 곳을 찾기 쉽도록 책갈피에 끼워두는 것 따라서, 책갈피라고 쓰면 안 되고 갈피표라고 써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글이 있습니다.
그 글을 보시고 많은 분이 저에게 따지(?)는 글을 보내십니다. 요즘 사전에 보면 책갈피에 "책장과 책장의 사이"라는 뜻과 함께 "읽던 곳이나 필요한 곳을 찾기 쉽도록 책의 낱장 사이에 끼워 두는 물건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는 뜻이 들어 있으니 그것을 갈피표라 해도 되고 책갈피라고 해도 되는 거 아니냐고...
맞습니다. 읽던 곳이나 필요한 곳을 찾기 쉽도록 책의 낱장 사이에 끼워두는 물건을 뭐라고 하는지가 시험에 나왔다면, 책갈피라고 해도 갈피표라고 해도 됩니다. 어쨌든 국립국어원 국어대사전에 나와 있으니 둘 다 써도 됩니다.
저는 청설모와 청서 이야기도 가끔 합니다. 다람쥐처럼 생긴 회색 동물은 청서이고, 그 청서의 꼬리 털이 청설모입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청설모의 뜻에 "참다람쥐나 날다람쥐의 털. 붓을 만드는 데 많이 쓴다"는 뜻을 더 넣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날다람쥐를 보고 청설모라고 해도 됩니다. 시험에 나왔다면 청서라고 해도 되고 청설모라고 해도 되는 거죠.
저는 이런 게 싫습니다. 책갈피에 엉뚱한 갈피표 뜻을 담아 낱말 뜻을 흐리게 만들고, 청설모는 털임에도 날다람쥐를 포함해 엉뚱한 낱말을 만들어 버리는 실수를 저지르는 우리 사전이 싫습니다. 말은 살이 있다 보니 자주 쓰면 그게 표준말이 될 수 있습니다. 아귀탕이 맞으나 거의 모든 사람이 아구탕이라고 쓴다면 잠시 복수표준어로 인정하다가 아귀탕을 버리고 아구탕을 표준말로 삼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강남콩이지만 소리내기 쉽게 강낭콩으로 하는 것도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뜻이 다른 책갈피와 갈피표를 같은 뜻으로 봐 버리고, 청설모와 청서를 같이 봐 버린다면, 나중에 언젠가는 접수와 제출도 같이 볼 것입니다. 시험 보는 사람이 원서를 제출하고, 학교에서 그 원서를 접수하는데, 많은 사람이 원서를 접수했다고 잘못 말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전에서 접수의 뜻에 "시험 보려고 원서를 냄"이라는 뜻을 넣어야 할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글을 쓰면서 표준국어대사전을 자주 봅니다. 말 그대로 그게 제 글의 표준이자 기준입니다. 그런 사전을 꼬집어서 죄송하고 가슴이 아픕니다.
우리말은 자주 써야 입에 익습니다. 여자 꾀는 '제비족'은 사전에 올리면서 옛 추억을 살릴 '제비집'은 사전에 없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사전은 말글살이의 기준입니다. 그 사전이 바로 서야 말글살이가 바로 설 수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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