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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2009년에 보낸 우리말 편지입니다.
[팔순잔치]
안녕하세요.
그제 일요일에는 돌아가신 아버님 친구 분 팔순잔치에 다녀왔습니다. 아버님이 살아계실 때 잘 어울렸던 분이 세 분이신데 딱 한 분 살아 계십니다. 그분이 일찍 고향을 떠나는 바람에 30년 만에 다시 뵀습니다. 어찌 그리 눈물이 나던지요... 그분의 자식들은 아무도 저를 몰라봤지만 그 어르신은 저를 뚜렷하게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아버님과의 추억과 함께 저를 기억하고 계시더군요.
저는 선후배 부모님 잔치에 가면 꼭 '고향무정'과 '있을 때 잘해'를 부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노래를 부르지 못했습니다. 눈물이 나서 그 노래를 다 부를 자신이 없더군요. 큰절을 드리며 건강하게 사시길 기원드리고 싶었지만 그러지도 못했습니다. 절을 드리고 일어설 자신이 없었습니다.
먼발치에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리며 우는 저를 보고 다섯 살배기 제 아들이 그러더군요. "아빠, 왜 울어요?" "응, 돌아가신 아빠의 아빠, 네 할아버지가 생각나서 그런다."라고 말을 해 줬지만, 그 녀석은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듣는 것 같더군요.
우리말에 '결곡하다'는 낱말이 있습니다. "얼굴 생김새나 마음씨가 깨끗하고 여무져서 빈틈이 없다."는 뜻입니다. '드레지다'는 낱말도 있습니다. "사람의 됨됨이가 가볍지 않고 점잖아서 무게가 있다."는 뜻입니다.
여든 나이에도 그분은 하나같이 결곡하고 드레져 보였습니다. 어찌 그리 부럽던지요.
돌아가신 아버님 제사를 일주일 앞두고 팔순잔치를 여는 아버님 친구를 뵈니 어찌그리 아버지 생각이 나는지... 아버지가 살아계시면 나도 저렇게 해 드릴 수 있는데... 아니 더 잘해 드릴 수 있는데......
오늘은 수첩에 넣고 다니는 아버지 사진이나 자주 꺼내봐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성제훈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