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년 전, 황우석은 메시아였다. 많은 이들이 그를 우리나라에 수백조원의 부를 가져다줄 영웅으로 생각했다. 줄기세포 연구로 세계 최고의 과학 학술지 ‘사이언스’의 표지를 장식한 분이니, 그에 대한 의문을 갖는 건 불경스러운 일이었다. 노무현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었다. 황우석 박사의 실험실을 찾아 연구하는 모습을 지켜본 노 대통령은 “기술이 아니라 마술”이라며 황우석을 칭찬했고, 그에게 수백억 원의 연구비를 지원하도록 했다. 게다가 황우석은 대중의 찬사를 이끌어낼 쇼맨십까지 갖추고 있었다. 교통사고로 하반신 장애를 갖게 된 가수 강원래에게 “일어날 수 있게 해주겠다.”고 한 그의 말은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안겨줬다.
나중에 알고 보니 황우석의 연구는 연구윤리를 위반하며 낸 산물이었다. 줄기세포를 연구하는 외국 학자들이 그를 가리켜 “어떻게 난자를 수백 개 씩이나 쓸 수 있는지 모르겠다.”며 의문을 표했지만, 황우석은 법으로 금지된 난자매매를 통해 난자를 조달했고, 그것도 부족해 자기 밑의 여성 연구원들의 난자를 실험에 사용하기도 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진 뒤에도 황우석에 대한 지지는 변함이 없었다. 수백조원의 부가 걸려 있는 판에 그깟 연구윤리가 중요하냐는 논리였다. 난자와 관련된 연구윤리 문제가 제기된 뒤 수백 명의 여성들이 난자를 기증하겠다고 서약한 것은 우리가 얼마나 황우석의 연구에 매달렸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 박수갈채가 실망으로 바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줄기세포는 없었고, 황우석이 발표한 자료들은 다 조작의 산물이었다. 수백억 원의 연구비를 썼음에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이 그로 하여금 논문조작이라는 치명적인 범죄를 저지르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를 메시아로 알던 이들은 공황상태에 빠졌고, 그들 중 일부는 ‘황빠’가 됨으로써 스스로를 위안했다. 줄기세포가 없다고 밝힌 <PD수첩>에 저주를 퍼부었고, 심지어 황우석의 몰락을 ‘좌파정권의 음모’ ‘수의대에 대한 의대의 훼방’으로 몰아붙이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황우석이 줄기세포를 만드는 데 실패한 연구자라는 사실이 변하는 건 아니다.
프로야구 시즌이 끝난 지난해 10월, 한 야구팬이 한화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한화 야구를 살릴 수 있는 분은 김성근 감독뿐입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들고서. 많은 한화 팬들이 동조했고, 김성근은 2011년 SK에서 경질된 지 3년여 만에 프로야구 감독으로 복귀했다. SK 시절 4년간 3번의 우승을 차지하는 등 맡는 팀마다 좋은 성적을 거둔 김성근이었으니, 최근 몇 년간 꼴찌를 도맡아 했던 한화에는 그가 메시아로 보였을 것이다. 한화 구단에서도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거액을 들여 그가 원하는 선수들을 뽑아줬고, 김성근은 늘 그렇듯이 혹독한 훈련으로 한화에서의 첫 시즌을 준비했다.
김성근 효과는 기대이상이었다. 한화는 시즌 중반까지 가을야구가 가능한 4, 5위를 달렸다. 경기가 끝날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한화의 야구는 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실제로 한화는 전반기에 역전승이 가장 많은 팀이었는데, 한화 팬들은 한화 야구가 재미있다며 ‘마리한화’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하지만 이건 주축투수 서너 명을 혹사시켜서 얻은 결과였다. 특히 올해 한화에 입단한 권혁의 혹사는 프로야구 역사로 봐도 손꼽힐 정도였다. 한 누리꾼의 말이다. “채널 돌리다 한화 경기를 볼 때마다 권혁이 던지고 있더라.” 야구팬들은 혹사를 비판했다. ‘그러다 시즌 막판 가서 퍼질 수 있다’ ‘계속 이러다 선수생명이 끝나면 어떡하냐.’ 등등. 실제로 SK에서도 김성근의 혹사 때문에 부상에 신음한 투수들이 몇 있었지만, 승리에 맛을 들인 일부 한화 팬들은 거세게 저항했다. “김성근 감독님이 알아서 관리해주니 권혁이 부상당할 일은 없다.” “넌 그럼 한화가 다시 꼴등 하길 바라는 거냐?”
박수갈채가 실망으로 바뀌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링거까지 맞으며 버티던 권혁이 8월부터 퍼졌고, 역시 엄청난 혹사에 시달리던 다른 투수들도 더 이상 공을 던지지 못하는 상태가 됐다. 한화의 성적은 점점 떨어졌다. 9월14일 현재 한화의 8, 9월 성적만 따지면 13승24패, 순위는 10개 팀 중 7위다. 김성근을 메시아로 여기는 일부 한화 팬들 때문에 숨을 죽였던 사람들은 지금 일제히 김성근을 욕하고 있다. 단기간에 성과를 내려는 조급함 때문에 팀을 망치고 선수생명도 위태롭게 했다는 게 그 골자. 한화가 남은 경기를 거의 다 이겨 포스트시즌에 진출한다면 그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지금으로 봐선 그럴 확률은 낮아 보인다. 승리보다 패배가 많아 괴로워하는 그의 모습에서 논문조작이 들통난 뒤 초췌한 표정으로 병원에 누워 있던 황우석의 모습을 떠올리는 건 나 혼자만은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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