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골목길에서 서행하는 차량의 사이드미러에 일부러 손을 부딪친 뒤 운전자에게 치료비를 뜯어낸 일당이 검거됐다. 2013년 9월부터 올해 2월까지 26차례에 걸쳐 이 짓을 했고, 갈취한 액수가 무려 1290만원이란다. 이들이 했던 수법 중엔 다음과 같은 것도 있었다. 운전면허가 없는 초등학교 동창에게 운전연습을 시켜준다며 자기 차를 운전하게 한 뒤, 인근에서 기다리고 있던 다른 일당으로 하여금 자기 차를 들이받게 한 것이다. 무면허로 사고를 낸 게 두려운 초등학교 동창은 350만원을 뜯기고 만다. 당시 유행하던 창조경제에 걸맞은 보험사기다.
전통적인 보험사기도 꾸준히 저질러지고 있다. 통증을 과장해 입원하거나 장해 진단을 받은 뒤 보험금을 청구하는 사례가 대표적인데,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분이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다는 50대 남자분이다. 아파트 단지 안에서 차량에 치인 이분은 휠체어가 없이는 움직이지 못했고, 침대에 걸터앉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하지만 보는 사람이 없자 휠체어에서 벌떡 일어나 화장실을 갔고, 10㎏이 넘는 휠체어를 번쩍 들어 차량에 싣더니 운전을 해서 집으로 가기까지 했다. 정체가 탄로난 뒤 그는 “아픈 것처럼 속인 게 아니라 실제로 아프다. 정도의 차이다”라고 말했는데, 이미 그는 자신이 가입한 보험사에서 8500만원을 받아냈고, 가해차량의 보험사에 합의금으로 4억8000만원을 달라고 하는 중이었다. 그 돈을 받기 위해 1년 반 동안 장애인 연기를 했다니, 정성이 정말 대단하다. 요즘에는 보험설계사들까지 가담함으로써 수법이 더 교묘해지고, 규모도 커졌단다.
보험사기가 악질적인 범죄인 이유는 피해자가 금전적 손실을 보는 것 이외에도 보험금이 부당하게 새어 나감으로써 선량한 보험계약자의 손해가 더 커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보험사기는 빈번히 일어나고, 심지어 증가하고 있다. 서울디지털대 경찰학과 교수 배상훈은 <누가 진짜 범인인가>라는 책에서 처벌의 경미함이 한 이유라고 말한다. “2013년 재판을 받은 보험 사기범의 양형을 분석한 결과 벌금형 68.7%, 집행유예 17.6%, 징역형 13.7%로 벌금과 집행유예 비중이 거의 90%에 이르렀다.”(185쪽) 일반 사기범의 징역형 비중이 46.6%인 걸 감안하면 3분의 1 수준에 불과한데, 이러다보니 보험사기를 저지르고픈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다. 외국에서 보험사기가 극히 드문 것도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를 남발하지 않으며, 처벌 수위도 액수에 비례하여 결정”(187쪽)되기 때문이란다.
여기에 더해 판사들이 법을 지나치게 엄격히 적용하는 것도 보험사기가 증가하는 이유다. 7월29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95억원 보험금이 얽혀있는 사건을 방영했다. 사건개요는 이렇다. 43세 남성인 김씨는 임신 7개월인 캄보디아인 아내를 옆에 태우고 가다가 갓길에 세워진 트럭을 들이받는다. 부딪친 곳이 조수석 쪽인 데다 아내가 안전벨트도 매지 않은 상태여서 아내는 그 자리에서 즉사한다. 하지만 미심쩍은 대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첫째, 아내의 혈액에서 수면유도제가 검출됐다. 임신한 상태에서 감기약조차 먹지 않는 것은 한국이나 캄보디아나 똑같다. 둘째, 김씨는 아내 이름으로 총 32개의 보험을 들어놓은 상태였는데, 그중 26개는 교통재해와 관련된 것이었다. 덕분에 김씨는 95억원의 보험금을 받게 됐지만, 운전면허도 없는 아내에게 그런 보험을 들게 한다는 것 자체가 의심을 살 만하다. 셋째, 지방에서 생활용품점을 운영하는 김씨는 수입이 월 500만원 정도에 불과한데, 400만원이 넘는 보험료를 매달 지불했다. 정상적이지 않다. 넷째, 김씨는 사고를 낸 이유를 졸음운전 탓으로 돌렸다. 하지만 사고 현장의 CCTV에선 김씨가 사고 20초 전 상향등을 켜고, 핸들을 갓길 쪽으로 트는 게 목격됐다. 갓길에 세워진 트럭을 발견하고 고의로 추돌하려 했다는 의심을 살 만하다. 다섯째, 김씨가 별로 다친 곳이 없다는 건 그럴 수 있지만, 환자복을 입은 김씨가 두 손을 든 채 미소를 지으며 사진을 찍은 건 아내와 자식을 한꺼번에 잃은 사람이 할 행동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김씨는 아내의 시신을 서둘러 화장했다. 뭔가를 숨기려는 사람이 곧잘 하는 짓이다.
물론 위에서 말한 사실들이 김씨가 고의로 사고를 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되지 못한다. 하지만 진실을 아는 이가 김씨뿐인 현실에서, 의심할 만한 정황이 다섯 개 이상 겹친다면 그걸 우연으로만 봐선 안되지 않을까? 2심에서 김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건 이런 이유지만, 대법원은 “남편 김씨가 고의 사고를 냈다는 정황증거, 반박의 여지가 없는 꼼꼼한 증거”를 더 찾아내라면서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해 버린다. 대법원이 “열 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단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원칙에 입각해 내린 결정이겠지만, 이 판결이 캄보디아인 아내와 가족, 그리고 보험금과 이자를 내줘야 할 보험사 등 여러 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 대형 로펌에서 전직 대법관을 비롯한 화려한 변호인단을 꾸린 김씨는 현재 돈을 지급하지 않는 보험사를 상대로 민사 및 형사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 나라에서 보험사기가 갈수록 늘어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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