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뛰어난 한지가 있어 더욱 빛나는 훈민정음 해례본

튼씩이 2015. 10. 30. 14:27

10월 9일은 569년 전 세종임금이 백성들을 위해 훈민정음을 만든 날로 한글창제 이후 우리나라는 우리의 소리인 한글을 새기고 찍어내어 남녀노소가 읽고 쓸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렸습니다. 세종은 1446년 한글 창제 원리를 《훈민정음 해례본》에 담았는데 해례본은 펴낼 당시에 목판에 정교하게 글자를 새긴 뒤 한지에 인쇄하여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입니다. 15세기에 한글 창제와 함께 활자를 찍어낼 우수한 종이가 없었다면 어찌 되었을까요?

“고려지(高麗紙)는 종이에 색깔이 하얗기가 명주와 갖고 질기기가 비단과 같아 여기다 글씨를 쓰면 먹이 진하게 배어 아주 좋다. 이것은 중국에는 없는 것으로 역시 기이한 물품이다.” 이는 《해동역사(海東歷史, 조선후기 실학자 한치윤이 단군조선으로부터 고려시대까지의 역사를 서술한 책》에 나오는 이야기로 “한지는 천년을 가고 비단은 오백년을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조선의 종이 기술은 뛰어났습니다. 신라시대에는 중국에 한지를 수출했고 발전된 고려의 기술을 이어 받은 조선은 제지술이 크게 발달하여 1415년에는 이미 나라가 관장하는 조지소(造紙所, 조선 시대 종이 뜨는 일을 맡아보던 관아)가 설립되기도 했지요.

한지는 흰색만 이름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노랑, 빨강, 파랑, 녹색, 보라 따위 다양한 색지도 등장했을 뿐 아니라 기름을 먹여 물기가 스며들지 않게 하여 문서를 보호하게 하기 위한 유지(油紙)도 생겨나 고문서를 더 오래 보관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하였습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에 빛나는 팔만대장경,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으로 찍은 《직지심경》 책도 결국 뛰어난 한지의 탄생이 없으면 그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서사 재료의 혁명이라고 일컫는 뛰어난 한지(韓紙)는 《훈민정음 해례본》으로 더욱 그 값어치를 높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