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실학자이자 부국강병을 주장한 개혁가 다산 정약용.
실학자로서 승승장구하던 정약용에게 정조가 떠난 후 부터 시련이 다가옵니다.
천주교 신자였던 그는 1801년 순조 원년에 일어난 *신유박해를 시작으로 총 18년을 유배지에서 보내게 되는데요.
(1801년 천주교도를 박해한 사건)
그는 이 시기를 '자신의 학문을 완성하는 계기'로 삼고 유배지에서 500여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습니다.
1818년 봄 <목민심서>를 저술하고, 같은해 음력 9월에 18년의 유배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해배)
(해배解配: 귀양을 풀어 준다)
올해 2018년 목민심서를 저술한지 200년이 되는 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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