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책을 읽자

이상호 기자 X 파일 - 이상호

튼씩이 2012. 11. 23. 17:38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와 조정래의 「허수아비춤」을 생각나게 하는 책이다. 자본권력이 국민을 무시하고 국가와 국가기관 위에서 군림하는 상황이 민주주의 국가라는 대한민국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탈세를 하고 불법 증여를 통해 재산을 상속해도, 노조를 탄압하고 불법해고를 통해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어도 그 동안 경제성장에 기여했다고 앞으로도 경제를 살리는데 일조를 한다는 미명하에 집행유예로 석방해주고, 그 동안의 잘못에 대한 사과문 발표와 함께 사회공헌 명목으로 기금을 조성하여 사회에 헌납한다고 하면 다 용서가 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거대 자본권력 삼성의 X파일을 목숨 걸고 파헤쳤지만, 그래도 우리나라의 공영방송이라 자부했던 MBC에서도 삼성, 국정원, 검찰, 청와대의 눈치를 보느라 국민의 알 권리는 뒤로 한 채 제대로 방송하지 못하고 사장될 위기에 처하게 만들었던 2005년 사건을 정리했다. 만약 삼성 X파일이 보도되지 않았다면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의 UN 사무총장을 막지 못했을거고 지금은 홍석현이 반기문을 대신하여 전 세계를 누비는 말도 안되는 상황을 보고 있을 것이다. 생각만해도 아찔하지 아니한가.

 
2004년은 역사적으로 볼 때 집권 초반을 넘긴 참여정부에 의해 재벌 위주 정책, 특히 삼성 주도의 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고착되어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삼성경제연구원이 작성한 경제정책 보고서가 청와대 경제정책의 청사진으로 작동하고, 정부부처 5급 이상 공무원들의 연수계획과 일정을 삼성이 진행했다. 주요 부처의 핵심 포스트에 기업의 경쟁논리 이식이라는 미명하에 삼성 간부들이 교환 배치됐으며, 삼성의 금산분리를 주장하는 청와대 보좌진에 대한 물갈이가 진행됐다. 국가정보원의 정보총괄책임자에 삼성 비서실 출신 인사가 앉혀졌고, 심지어 주미대사에 삼성가의 왕처남 〈중앙일보〉홍석현 회장이 발탁됐다. 그리고 주미대사는 이듬해 있을 UN 사무총장 후보에 내락된 상태였다. 스스로 시장에 권력의 빗장을 내준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제 권력은 시장으로 완전히 넘어갔다’고 선언하고 있었다. - 9쪽 -

 

삼성 X파일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삼성 이건희 일가는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100억 원대 비자금을 선거를 앞둔 대선 후보들에게 전달했다.

두 번째, 삼성은 정기적으로 검찰 간부들에게 수억 원대 뇌물을 전달해왔으며 향후 지속적으로 전달할 계획을 세웠다.

세 번째, 삼성이 국회에 자신들의 프락치를 심었으며 당대표를 상대로 프락치에 대한 적절한 대우를 요구했다.

네 번째, 삼성이 기아차 인수를 위해 가아의 은행 대출금 수천억을 일시에 상환하도록 정치권에 로비한 정황이 있으며, 결국 기아의 도산으로 IMF 파국이 가속화됐다. - 10쪽 -

 

“이것 보세요. 〈중앙일보〉홍석현 회장 같은 사람이 주미대사를 발판삼아 UN 사무총장감으로 거론되고 있으니, 정말 나라꼴이 이래서 되겠습니까? 대한민국에 인재가 그렇게 없나요? 도대체 노무현 정부는 제정신이란 말입니까? 왜 저렇게 삼성 앞에 설설 기는지 모르겠어요.” - 27쪽 -

 

SBS는 외주쿼터제도를 악용해 드라마의 전면적 외주화를 선도해왔지. 외주업체에 쥐꼬리만큼 예산을 떨궈주고 드라마를 제작시킨 뒤, 자신들은 비싼 광고료만 챙기는 방식인거지. 손 안 대고 코 푸는 식이지. 외주업체들은 예산확보를 위해 협찬에 목을 매게 되고 드라마는 기획단계에서부터 아예 협찬업체의 간접광고로 채워지는 거야. 그러면 결국 드라마인지 광고인지 알 수 없는 영상이 나가고 시청자는 자극적인 흥밋거리만을 쫓게 되는 거지. 드라마가 가진 사회적 기능? 그건 옛말이야. 누가 드라마에서 그런 걸 찾아. 드라마에는 오늘 우리의 모습과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 중요한 가치에 대한 공감이 없어. 공중파의 제일 중요한 기능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엔터테인먼트라는 새로운 기능이 자리한 거지. - 48쪽 -

 

정부는 결국 오늘 오전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의 주미대사 내정을 공식 발표했다. 문건에 따르면 홍석현 씨는 DJ 정부 때부터 삼성의 비자금을 민주당에 전달해온 배달책이니, 민주당 수뇌부나 민주당 후보로 당선된 노무현 대통령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그가 버젓이 주미대사직에 내정된 것을 보면, 삼성과 동반자적 운명을 선택한 참여정부의 다급함을 알 수 있었다. 홍석현 씨는 취임 후 가진 첫 기자회견에서, 아시아계 몫으로 나와 있는 차기 UN 사무총장직에 대한 도전의사를 명확히 했다.

- 52~53쪽 -

 

국정원과 삼성, 참여정부 출범 이후 두 조직은 사실상 한 몸이 되고 말았다. 삼성왕국의 싱크탱크라 할 수 있는 삼성경제연구소 임원이 국정원의 정보총책임자로 자리를 옮겨가고, 청와대나 국무총리실 주요 포스트도 삼성 혹은 삼성 계통의 인사에 의해 야금야금 채워지고 있다. 삼성의 독점을 견제하려는 경제 관료들은 청와대에서 속속 쫓겨나고 있다. 이광재 의원을 중심으로 하는 정권 실세들의 삼성 동반성장론이 한때 서민의 대통령을 꿈꿨던 노무현 대통령의 눈을 어둡게 하고 있다. 항간에는 삼성이 작성한 경제정책백서가 토씨도 틀리지 않고 참여정부를 통해 실행되고 있다고 한다. 불행하게도 지금껏 관찰된 바로는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이 스스로 ‘권력이 아니라 자본이 통치하고 있다’고 털어놓을 지경이 되었으니, 이 노릇을 어찌할꼬. - 81쪽 -

 

정권 초반부터 노무현 대통령의 오른팔 이광재 의원을 중심으로 삼성 인사들의 수혈이 가속화되고, 심지어 삼성의 브레인 조직인 삼성경제연구소가 작성한 국정운영백서가 인수위(인수위원회)에 들어갔다는 얘기가 들려오고 있다. 삼성재벌의 권력화를 경계하는 비판적 경제관료들이 권력 내부에서 속속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정보가 보고되고 있다. 무엇보다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의 주미대사 임명은 서민정부를 표방하는 노무현 정부의 대국민 배신의 서곡임이 분명한 일이다. - 119쪽 -

 

국정원 최고정보책임자로 삼성 이건희 회장 비서실 출신인 최인철 삼성경제연구소 전무가 내정됐다는 소식이다. 삼성 간부가 차관급의 국가정보 총책에 임명된 것이다. 다시 말해 이건희 씨의 비서가 국정원 정보창고의 열쇠를 쥐게 된 것이다. - 283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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