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카노 유이치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최신작 62편과 미수록작 88편을 모아 발표한 책으로, '페코로스, 어머니 만나러 갑니다'와 '페코로스, 어머니의 보물상자'에 이은 페코로스 시리즈의 완결편이다.
시리즈 세 권을 읽으면서 항상 궁금했던 것 중의 하나가 아버지에 대해 회상하는 어머니의 이미지였었는데, '아버지의 기척'을 보면서 그 궁금증을 풀었다. 궁금증은 풀었지만 이해를 하기에는 나의 포용력이 부족한 듯......
페코로스, 어머니와 삶을 찬양하다 - 김낙호(만화연구가)의 페코로스 연작 해설 중 -
표면적인 줄거리는 환갑을 맞이한 대머리 만화가가(대머리를 빗대어, 작은 양파라는 의미의 '페코로스'라는 별명을 지녔다) 치매에 걸린 노모를 돌보러 와서 겪는 크고 작은 일상이다. 그런데 작가는 작품이 단순한 관찰일기에 머무는 것을 선택하지 않고, 치매라는 질환이 담아내는 정신적 혼란을 일종의 시간여행으로 변용하여 어머니가 살아온 인생과 그를 둘러싼 사람들이 만들어 간 세상의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이 장치 덕분에 작품은 이성적 속박에서 자유로워져, 오늘날을 살아가기도, 예전 언전가의 기억을 살아가기도,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희미한 어떤 중간 지점에서 새로운 시간을 살아기기도, 혹은 그 모든 것을 동시에 하기도 한다. 그 안에서의 노모는 보살핌 없이는 지낼 수 없는 중증 치매에 걸린 노인이 아니라, 누구보다 풍부한 삶을 살아왔고 그 연장선상에서 지금도 낙천적으로 살아가는 '미쓰에'라는 이름의 한 인간이 된다. 여러 시점의 과거를 다시 현재처럼 살아가고, 떠나간 이들을 지금의 모습으로 다시 만나며 그때 진전되지 못한 감정을 좀더 나누어 간다. 그 안에는 개인의 삶, 함께했던 사람들과 나눈 모든 것, 그리고 사회상까지 고루 담겨 있다.
이 작품에서 치매가 만들어 내는 여러 순간은 단지 예전 어떤 시간대를 회상하는 플래시백이 아니라, 당시의 세상을 다시 한 번 살아보는 '경험'이다. 여기에서 만화라는 매체 양식이 지닌 독특한 힘이 십분 발휘되는데, 현재와 과거의 여러 시점들이 풍경을 매개로, 자유로운 실험으로 자유롭게 오가는 칸 연결을 매개로, 카툰화법으로 단순화되어 여러 연령대를 오가는 얼굴과 표정을 매개로, 기타 모든 것을 매개로 별다른 단절 없이 자연스레 전환된다. 그 속에서 어려웠던 생활, 원폭의 후유증에 시달리는 동네의 풍경, 술 먹으면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과 그 와중에도 아이들을 키워나간 어머니의 생활력 강한 현장 등이 모자이크를 만들듯 조금씩 큰 그림으로 붙어 간다. 다만 자유로운 세계로 너무 멀리 흘러들어 가버리면 인생을 돌아보는 여정이 너무 빨리 끝나고 이별이 찾아오기에, 가끔씩 다시 온전한 현실로 돌아오도록 돕는 등대가 필요하다. 둥글게 빛나는 그 등대는 바로 아들의 대머리다. 그 대머리를 쓰다듬으며 다 늙어 버린 아들을 귀여워할 때, 치매 노모는 여행에서 돌아와 다시 아들과 지금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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