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게시판/이해인시집(작은기쁨)

언니의 실수

튼씩이 2019. 1. 30. 08:33

살구꽃이 진 자리에 말이야

글쎄......

갓 달리기 시작한 살구열매를

매실인 줄 알고 글쎄

언니는 있는 대로 열매를 많이 따다가

매실주를 담갔다지 뭐야

살구나무 열매와

매화나무 열매가 얼마나 다른지

눈이 있어도 보질 못했나?

잘 알지도 못하고

확인도 안 해보고

성급하게 따다가

술을 담갔다니

우습지 않나요?


항아리 속 조그만 살구들은

영문도 모르면서

어둠 속에 엎디어서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았을까?

'나무 위에 더 있으면

좋았을텐데......

왜 여기에 있는지...... 답답해 죽겠네'

하면서 말이야


해마다 봄이 오면

살구나무 볼 적마다

매화나무 볼 적마다

언니의 실수가 생각나

우리 식구 모두

하하 호호 웃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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