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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원 내고 1000만원 혜택..해외 23만명 '건보 먹튀'

튼씩이 2019. 5. 21. 08:50

해외 거주자인 A(58)씨는 2016년 6월18일 한국을 찾았다. A씨는 귀국 직후 건강보험 가입자 자격을 되살렸다. 건강보험 공단에 전화를 걸어 입국 사실을 알리기만 하면 됐다. C형 간염을 앓고 있던 A씨는 8일동안 국내 병원에서 총 6번 진료를 받았고, 1076만원의 건강보험 혜택을 누렸다. 그는 치료를 마친 뒤 26일 출국했다. A씨는 건강보험료를 한 푼도 내지 않았다. 

        

A씨처럼 건강보험료는 내지 않고 건강보험 진료만 받은 해외 거주자가 최근 3년간 22만8481명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정춘숙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이러한 내용을 담은 ‘당월 출국한 건강보험 급여정지 해제자 현황’ 자료를 20일 공개했다.


현행 건강보험법상 한 달 이상 해외여행을 떠나거나 해외에서 일하는 건강보험 가입자는 건강보험의 급여가 정지되고, 건보료도 부과되지 않는다. 해외 유학생, 주재원 등도 여기에 해당된다. 그런데 건강보험료는 매달 1일을 기준으로 부과된다. 해외에 있던 급여 정지자가 1일 이후에 입국해 그달 내에 출국하면 급여 정지는 풀리지만, 건보료는 부과되지 않는다.


정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매달 2일 이후 입국해 병원 진료를 받고, 월말에 출국해 건보료는 내지 않은 해외 거주자는 2016년 7만392명, 2017년 5만3780명, 2018년 10만4309명이다. 이들이 쓴 건강보험 진료비는 2016년 117억3400만원, 2017년 112억4300만원, 2018년 190억2200만원 등 3년간 419억9900만원으로 집계됐다. 정 의원은 "건보료는 내지 않고 혜택만 본 장기 해외체류자 23만명 중 상당수는 이러한 제도의 사각지대를 악용해 '먹튀 진료'를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해외 거주 영주권·시민권자다. 해외 이주자인 B(40)씨는 2016년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성 골수종 진단을 받았다. 그는 그해 3월 21일 한국에 들어와 건강보험 자격을 회복한 뒤 957만원 상당의 건강보험 진료를 받은 뒤 6일 만에 출국했다. 또 다른 해외 이주자 C(38)씨는 감염병 등 치료를 위해 지난해 6월 5일 입국해 945만원의 건강보험 혜택을 받고 3주 뒤 돌아갔다. 이들이 낸 건강보험료는 0원이다. 외국인과 해외 영주권ㆍ시민권을 취득한 재외동포는 국내에 6개월 이상 체류해야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하지만 해외 영주권ㆍ시민권자라도 우리 정부에 해외이주 신고를 하지 않은 사람은 내국인으로 분류돼 이런 최소 체류기간이 적용되지 않는다. 건강보험공단에서 이들의 국적 변동을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미시USA’ 등 해외 교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이런 빈틈을 노린 ‘건보료 안 내고 한국 병원 진료받는 방법’이 공유되기도 했다.


정부는 장기 해외 체류자의 건강보험 자격 관리를 강화할 계획이다. 정윤순 복지부 보험정책과장은 “내국인도 장기간 해외에 체류하면 일단 건강보험 자격을 상실시키고, 영주권을 따지 않았다는 사실 등을 본인이 증명하면 자격을 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정춘숙 의원은 “최근 외국인의 '건강보험 먹튀' 문제가 논란이 됐지만 장기 해외 체류 중인 내국인의 건강보험 먹튀 문제도 상당한 규모인 것으로 확인됐다. 공평한 건강보험 부과체계를 위해 해외 출국으로 건강보험 자격이 정지된 사람도 건강보험 혜택을 받으면 건강보험료를 낼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