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소위 ‘장자연 리스트’의 실체를 확인하지 못했다며 재수사를 권고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막대한 국민 세금을 써가면서, 장장 13개월이나 조사를 했다는 점에서, 과거사위의 결론은 허무하기 짝이 없다. 사실 고인의 죽음을 규명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고인이 숨질 당시의 수사가 부실했기 때문이다. 10년이 지나는 사이 몇몇 범죄는 공소시효가 지났고, 증거는 더 없어졌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과거사위에 기대를 한 결정적 이유는 두 달여 동안 매스컴을 화려하게 수놓았던 윤지오의 존재였다. 장씨 사건의 유일한 증인을 자처했고, 기자들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막말을 해대는 윤씨를 보면서 사람들은 드디어 진실이 밝혀지고 악인들이 처벌을 받으리라는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실제 조사를 담당한 대검 조사단이 윤씨의 입에 목을 매다시피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안타깝게도 윤지오는 아는 게 거의 없었다. 윤씨는 자신의 주장과 달리 고인과 별로 친하지 않았으며, 기억력도 좋지 않았다. 윤씨는 ‘16번이나 증언했다’고 자랑을 했지만, 증언 횟수가 많은 것은 그녀의 진술이 수시로 번복되는 등 신빙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장자연 리스트를 봤다는 윤씨의 진술도 마찬가지다. 10년 전에 조사를 받을 땐 이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아 놓고선, 자신이 쓴 책 <13번째 증언>에선 리스트를 언급하며 총 40~50명이 있다고 했다가, JTBC에서는 30명이라고 슬그머니 줄이는 등 일관성이 없었다. 심지어 장씨의 유족 등 고인이 남긴 문건을 본 다른 사람들은 ‘이름만 나열된 리스트는 없었다’고 입을 모으고 있으니, 윤씨가 진짜로 리스트를 봤는지조차 의문이 든다. 윤씨는 재수사 불발에 대해 “너무나 참담하다. 정말 이게 우리가 원한 진정한 대한민국이냐”고 했지만, 이런 걸 전문용어로 적반하장이라 한다. 조사단에서 활동한 김영희 변호사도 사과는커녕 같이 애를 썼던 검사들에게 책임을 돌린다. “검사들은 성폭행 의혹 부분을 수사에 못 넘기게 하려고 정말 총력전을 했다. … 조직적 차원에서 반대가 있지 않았나 느꼈다.” 하지만 대통령이 명운을 걸고 진상을 규명하라고 한 마당에 무슨 외압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말하는 건 어이가 없다. 안 그래도 김 변호사는 윤씨가 기억력이 뛰어나다느니, 진술에 일관성이 있다느니 하면서 시종일관 윤씨를 옹호하는 여론몰이를 해 조사단 내부에서도 불만이 많았는데, ‘재심’ 변호사로 유명한 박준영은 이에 항의하며 조사단을 탈퇴하기까지 했다.
더 놀라운 점은 윤씨가 이런 결론이 날 줄 미리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책이 나오기까지 도움을 줬던 김수민 작가에게 윤씨는 다음과 같은 카톡 메시지를 보냈다. ‘언니 사건은 종결 자체가 불가능하고 … 서로 헐뜯기에 딱 좋은 먹잇감이고.’ 그런데도 윤씨가 자신이 사건을 해결할 것처럼 굴었다면, 그녀에겐 이 기회를 틈타 이익을 취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지 않을까? 문제는 윤씨에 대한 언론들의 태도였다. 대부분의 언론은 윤씨로부터 한마디라도 들으려고 안달했고, 그녀가 쏟아내는 말들을 최소한의 검증도 없이 내보내기 바빴다. JTBC <뉴스룸>에서 윤씨가 차량 테러를 두 번이나 당했다며 부서진 차 사진을 내보냈을 때, 국민들은 경악했다. 윤씨가 스마트워치를 눌렀는데 경찰이 9시간이나 오지 않았다는 윤씨의 증언도 충격 그 자체였다. 누군가 윤씨 숙소의 열쇠를 복사했다는 주장까지 나오자 사람들은 윤씨의 신변이 위험에 빠졌음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로 인해 여경 5명이 한 달 가까이 윤씨 옆에서 심부름을 해야 했고, 그것도 부족해 사람들은 경호비에 보태라며 윤씨가 공개한 후원계좌에 아낌없이 돈을 보냈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실제로 윤씨를 위협한 사람은 그녀 아버지를 제외하면 아무도 없었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을 때, 이에 대해 사과하는 일이다. 하지만 윤씨가 대국민 사기극을 펼치는 데 앞장선 언론들 중 누구도 여기에 대해 반성하지 않았다. 윤씨의 교통사고는 학부모의 차가 빙판길에 미끄러져 일어난 접촉사고였지만, JTBC는 그 진상에 끝내 침묵한 데다, 최근에는 장씨의 유족이 진술을 번복한 것이 재수사가 불발된 이유인 것처럼 보도했다. 윤씨의 존재를 처음 대중에게 알린 <뉴스공장>은 그녀에 대한 의혹이 쏟아지는 내내 침묵했고, 과거사위의 결론이 난 뒤엔 엉뚱하게도 김영희 변호사를 불렀다. 역시 윤씨가 출연했던 KBS <오늘밤 김제동>도 마찬가지였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윤씨에 대한 의혹이 대부분 사실로 밝혀진 지금이라면, 김수민 작가나 김 작가를 대리해 윤씨를 고소한 박훈 변호사 등등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들을 불러 이야기를 들어야 하지 않을까? 기자를 ‘기레기’라고 비하하는 것에 부정적이지만, 이들의 모습을 보니 그런 말이 왜 유행하는지 이해가 간다. 하기야, 나중에 사과할 언론사라면 미리부터 사실 여부를 철저히 검증했으리라. 이분들에게 윤지오가 올린, 윤씨와 SBS 박원경 기자의 전화통화 영상을 보기를 권한다. 팩트체크는 어떻게 하는지 배울 수 있고, 거짓말을 하는 이가 팩트체크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도 담겨 있으니, ‘참기자’가 되길 원한다면 꼭 보길 바란다. 계속 기레기로 남아있고 싶다면 안 보셔도 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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