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게시판/서민(단국대 의대교수)이야기

여론이 꼭 옳은 건 아니니까

튼씩이 2019. 4. 6. 13:33

“음주운전에 대한 사회적인 경각심을 일깨우는 판결이 나오기를 기대했는데 거기에는 미흡했다.” 음주운전으로 윤창호씨를 죽인 박모씨가 1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았을 때, 윤씨의 아버지가 한 말이다. 윤씨의 친구도 비슷한 말을 한다. “한 사람의 꿈을 가져가고 6년을 선고받은 것은 너무 짧다.” 나 역시 이 말들에 동의한다. 정의로운 검사가 되겠다던 스물두 살 청년의 꿈을 짓밟은 행위는 100년의 징역형으로도 용서될 수 없다. 하지만 그 이전까지 음주운전 사망사고에 대한 대법원 양형 기준은 징역 1년에서 4년6월이었음을 고려하면, 이 판결의 형량은 이례적으로 높았다. 예컨대 2016년 23세의 오토바이 운전자를 치어 숨지게 한 음주운전자는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후자의 청년이라고 꿈이 없는 것은 아닐진대, 두 사건에서 다른 판결이 나온 이유는 뭘까? 2년여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음주운전에 대한 우리 사회의 경각심이 높아졌고, 윤창호법이라는 게 생길 정도로 이 사건이 여론의 엄청난 관심을 받았기 때문이리라. 사법부가 예전의 관성대로 1년의 징역형을 선고했다면, 해당 판사가 판사직을 계속 유지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재판은 여론을 반영한다. 법이 사회 구성원들의 합의라는 점에서, 판결에 여론을 반영하는 것은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판결이 무조건 여론을 따라가는 게 바람직한지는 의문이다. 대중의 여론은 대부분 강한 처벌을 원하는 쪽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예컨대 며칠 전 대법원 판결이 내려진, 할아버지가 손녀를 성폭행한 사건에 대한 댓글을 보자. “고작 7년? 그냥 죽여버려라. 인간도 아니다.” “7년이라니? 70년이 아니고?” 이런 여론은 의료사고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의료행위의 과정에서 환자가 사망했을 때, 여론은 들끓는다. 당장 의사면허를 박탈하고, 의사를 구속하라고 말한다. 문제는 판사들이 이 여론을 의식해 의사 구속을 남발한다는 데 있다. 2018년 초, 이대병원 신생아실에서 4명의 아이들이 죽었다는 이유로 의사가 구속됐다. 어차피 차트는 경찰에서 가져갔으니 따로 인멸할 증거도 없고, 계속 진료를 해야 하는 의사의 특성상 도주할 가능성도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그 감염이 의사의 잘못에 의한 것인지도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영장전담 판사의 판단은 영 아쉽다.

이 점이 참작돼 재판에서는 무죄가 선고됐지만, 의사에게 실형이 선고되는 것도 이제는 드문 일이 아니다. 횡격막 탈장으로 8세 아이가 사망했을 때, 이를 진단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의사 세 명이 1심에서 한꺼번에 금고 1년~1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사건이 있었다. 아이가 태권도를 하다가 배를 차였다는 사실을 부모가 얘기하지 않았고, 초기에 횡격막 탈장을 진단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그 나이 때 복통의 원인으로 흔한 변비로 추정하고 경과를 관찰하자고 한 것이 형을 살아야 할 만큼 중대한 범죄일까? 자궁 내 태아가 사망했을 때 이를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산부인과 의사가 구속된 사례도 있다. 분만이 지연되자 지친 산모가 몸에 감은 태아 심박동 검사기를 풀어달라고 했는데, 하필이면 그 한 시간 동안 태아의 심박동이 떨어진 탓이었다. 1심 재판부는 업무상 과실치사죄를 적용해 의사에게 금고 8월형을 선고했다. 대중들이 환호했으니 이건 좋은 판결일까? 위에서 예로 든 사건들은 윤창호씨를 죽인 음주운전과는 성격이 다르다. 박씨가 음주운전이 살인에 준하는 범죄라는 것을 알면서도 운전대를 잡았고, 그의 만행이 아니었다면 윤씨가 죽을 일은 없었겠지만, 의사는 가만 놔두면 죽었을 환자들을 살리려고 애쓰다 실패했으니 말이다. 


연이은 의사들의 구속을 바라보는 동료 의사들의 마음은 참담하다. 이 참담함은 국민들의 손해로 돌아올 수 있다. 최근 몇 년 새 산부인과의 숫자는 급감했다. 문을 닫는 산부인과가 늘어나고, 그나마 있는 산부인과도 지방흡입에만 전념한다든지, 부인과 진료만 하는 식으로 업종을 바꾼다. 저출산 탓도 일정 부분 있겠지만, 그보다는 산부인과가 의료사고가 가장 빈번히 발생하는, 그래서 의사가 법정에 서는 일이 가장 많은 과라는 게 더 큰 요인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 “(인구 10만명당 출산하다 숨지는 산모의 수를 뜻하는) 모성사망비가 서울은 3.2명으로 OECD 평균의 절반이지만, 제주 16.7명, 경북은 16.2명으로 엄청 높다. 심지어 두메산골이 많은 강원도는 32명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중국과 비슷한 수준이며 스리랑카보다 높은 수치다.” <지방도시살생부>(마강래 지음, 개마고원)


이런 현상은 점점 심해질 것이다. 의대생에게 산부인과는 가장 피해야 할 과이고, 소아청소년과와 흉부외과 등 생명과 직결되는 과들도 인기가 떨어진 지 오래다. 10년이 지나면 분만이나 심장수술을 위해 외국에 나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괜한 엄살만은 아니다.

               

의사라고 해서 무조건 구속하지 말라는 건 아니다. 의사의 성범죄나 대리수술 같은 범죄에 대해선 지금보다 훨씬 엄격한 처벌이 내려지는 게 맞다. 하지만 환자 진료 과정에서 벌어진 일로 의사에게 실형을 선고할 때는 조금 신중했으면 좋겠다. 여론이 꼭 옳은 것은 아니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