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에 대한 사회적인 경각심을 일깨우는 판결이 나오기를 기대했는데 거기에는 미흡했다.” 음주운전으로 윤창호씨를 죽인 박모씨가 1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았을 때, 윤씨의 아버지가 한 말이다. 윤씨의 친구도 비슷한 말을 한다. “한 사람의 꿈을 가져가고 6년을 선고받은 것은 너무 짧다.” 나 역시 이 말들에 동의한다. 정의로운 검사가 되겠다던 스물두 살 청년의 꿈을 짓밟은 행위는 100년의 징역형으로도 용서될 수 없다. 하지만 그 이전까지 음주운전 사망사고에 대한 대법원 양형 기준은 징역 1년에서 4년6월이었음을 고려하면, 이 판결의 형량은 이례적으로 높았다. 예컨대 2016년 23세의 오토바이 운전자를 치어 숨지게 한 음주운전자는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후자의 청년이라고 꿈이 없는 것은 아닐진대, 두 사건에서 다른 판결이 나온 이유는 뭘까? 2년여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음주운전에 대한 우리 사회의 경각심이 높아졌고, 윤창호법이라는 게 생길 정도로 이 사건이 여론의 엄청난 관심을 받았기 때문이리라. 사법부가 예전의 관성대로 1년의 징역형을 선고했다면, 해당 판사가 판사직을 계속 유지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연이은 의사들의 구속을 바라보는 동료 의사들의 마음은 참담하다. 이 참담함은 국민들의 손해로 돌아올 수 있다. 최근 몇 년 새 산부인과의 숫자는 급감했다. 문을 닫는 산부인과가 늘어나고, 그나마 있는 산부인과도 지방흡입에만 전념한다든지, 부인과 진료만 하는 식으로 업종을 바꾼다. 저출산 탓도 일정 부분 있겠지만, 그보다는 산부인과가 의료사고가 가장 빈번히 발생하는, 그래서 의사가 법정에 서는 일이 가장 많은 과라는 게 더 큰 요인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 “(인구 10만명당 출산하다 숨지는 산모의 수를 뜻하는) 모성사망비가 서울은 3.2명으로 OECD 평균의 절반이지만, 제주 16.7명, 경북은 16.2명으로 엄청 높다. 심지어 두메산골이 많은 강원도는 32명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중국과 비슷한 수준이며 스리랑카보다 높은 수치다.” <지방도시살생부>(마강래 지음, 개마고원)
이런 현상은 점점 심해질 것이다. 의대생에게 산부인과는 가장 피해야 할 과이고, 소아청소년과와 흉부외과 등 생명과 직결되는 과들도 인기가 떨어진 지 오래다. 10년이 지나면 분만이나 심장수술을 위해 외국에 나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괜한 엄살만은 아니다.
의사라고 해서 무조건 구속하지 말라는 건 아니다. 의사의 성범죄나 대리수술 같은 범죄에 대해선 지금보다 훨씬 엄격한 처벌이 내려지는 게 맞다. 하지만 환자 진료 과정에서 벌어진 일로 의사에게 실형을 선고할 때는 조금 신중했으면 좋겠다. 여론이 꼭 옳은 것은 아니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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