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 붙은 이름들을 살펴보자. 올림픽대로는 1988년에 열린 서울올림픽을 기념해 붙인 이름이고, 테헤란로는 1977년 서울시가 이란의 수도 테헤란시와 자매결연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삼릉로에서 이름을 바꾼 것이다. 흔히 ‘특별구 특별동’으로 불리는 강남구 업구정동에 있는 로데오거리는 미국 비벌리힐스에 있는 세계적인 패션거리 ‘로데오 드라이브’를 본떠 붙인 이름이다.
로데오거리가 이국정서를 담고 있는 외래문화의 반영이라면 말죽거리는 된장 냄새 물씬 풍기는 토속적인 이름이다. 1624년 당시 임금이었던 인조는 이괄의 난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가던 길에 이곳 양재역에 이르렀는데, 목마름과 배고픔이 극도에 달했다. 마침 이곳에 있었던 유생 김 아무개 등이 황급히 팥죽을 쑤어 바치자 인조는 말을 탄 채로 그 죽을 마시고 바로 길을 떠났다. 그 뒤로부터 ‘임금이 말 위에서 죽을 마셨다’는 뜻에서 이곳을 말죽거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고갯길 이름에도 재미있는 것들이 많다. 배오개길은 지금의 종로4가 어름에 있었던 배오개라는 고개 때문에 붙은 이름인데, 원래는 배오개가 아니라 백고개였다고 한다. 백고개는 도깨비고개라고도 불렸는데, 도깨비가 출몰했는지 백 사람이 모여야만 무사히 지나갈 수 있다고 해서 백고개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백고개가 배고개로, 배고개 다시 배오개로 바뀐 것이다. 쑥고개길도 마찬가지로 와전된 이름이다. 지금의 신림2동과 봉천8동 사이의 고개는 옛날에 숲이 우거져 그 나무로 숯을 많이 구웠기 때문에 숯고개라고 불렸던 것이 나중에 쑥고개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러면 아리랑고개는 또 왜 아리랑고개가 되었을까. 일제 때인 1935년 상인들이 이 고개 너머 정릉 계곡에 고급 요정을 만들고 손님을 끌기 위해 이 고개에 길을 닦았는데, 우리 민요 아리랑의 이름을 따서 아리랑고개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아리랑 고개 너머에 좋은 놀이터가 있다고 선전한 데서 비롯된 묘한 이름인 것이다.
어름 (명) ① 두 사물의 끝이 맞닿은 자리.
② 물건과 물건 사이의 한가운데.
③ 구역과 구역의 경계점.
④ 시간이나 장소나 사건 따위의 일정한 테두리 안. 또는 그 가까이
쓰임의 예 – 한길에서 공장 신축장으로 들어가는 어름에 생긴 포장마차가 둘 있었다. (황순원의 소설 『신들의 주사위』에서)
- 등교 때나 퇴교 때 같으면 규율부가 나와 있어 연락이 가능했지만 목요일의 오후 세 시 어름은 그러기에도 어중간한 시간이었다. (이문열의 소설 『변경』에서)
- 온통 수릿재 어름이 먼지에 뽀얗게 휩싸이고 있었다. (황석영의 소설 『폐허, 그리고 맨드라미』에서)
'지난 게시판 > 우리말은 재미있다(장승욱)' 카테고리의 다른 글
116 – 바리데기 (0) | 2019.08.08 |
---|---|
115 – 언저리 (0) | 2019.08.07 |
113 – 길처 (0) | 2019.08.05 |
112 – 길섶 (0) | 2019.08.04 |
111 – 퉁소 (0) | 2019.08.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