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게시판/우리말은 재미있다(장승욱)

112 – 길섶

튼씩이 2019. 8. 4. 12:40

섶도 깃만큼이나 다양한 쓰임새를 가진 낱말이다. 덩굴지거나 줄기가 약한 식물이 쓰러지지 않도록 옆에 꽂아서 세워 주는 꼬챙이도 섶이고, 누에가 올라가 고치를 짓게 하려고 마련한 짚이나 나뭇가지도 섶이다. 물고기가 많이 모이도록 물속에 쌓아 놓은 나무도 섶이라고 하는데, 고깃깃이나 어초와 비슷한 용도인 듯하다. 섶은 또 잎나무, 물거리, 풋나무 따위의 땔나무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섶을 지고 불로 들어가려 한다고 할 때의 바로 그 섶이다. 잎나무는 가지에 잎이 붙어 있는 땔나무, 물거리는 잡목의 우죽이나 잔가지처럼 부러뜨려서 땔 수 있는 땔나무를 가리킨다. 장작이 아닌 땔나무를 우죽이라고 하는 것이다. 풋나무는 가리나무, 새나무, 풋장 같은 땔나무를 아우르는 말이다. 가리나무는 갈퀴로 긁어모은 땔나무, 새나무는 새로운 나무가 아니라 띠나 억새 같은 풀을 말린 땔감, 풋장은 가을에 억새, 참나무 따위의 잡목이나 잡풀을 베어서 말린 땔나무를 말한다.

 

땔나무는 묶은 방식에 따라서도 이름이 달라진다. 다발로 묶으면 다발나무, 뭇으로 묶으면 뭇나무, 단으로 묶으면 단나무인데, 단나무는 단거리라고도 한다. 전거리는 한 전씩 묶은 잎나무인데, 전은 갈퀴와 손, 또는 낫과 손으로 한 번에 껴안을 수 있는 정도의 땔나무의 분량을 가리킨다. 푼거리는 묶는 방식이 아니라 땔나무를 몇 푼어치씩 사고파는 일을 말하며, 그렇게 거래되는 땔나무를 푼거리나무라고 한다. 되내기는 속임수를 써서 크거나 많아 보이게 다시 묶는 땔나무를 말한다. 그저 장사꾼들이란!

 

뒤에 자가 붙은 낱말들을 살펴보면 은 대체로 가장자리나 근처, 또는 풀이나 나뭇가지를 뜻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길섶도 그렇고 고섶도 그렇다. 고섶은 물건을 넣어 둔 곳이나 그릇이 놓인 곳의 가장 손쉽게 찾을 수 있는 맨 앞쪽을 뜻하는 말이다. “책상서랍의 고섶에 넣어 둔 만 원짜리 한 장이 보이지 않는다는 식으로 쓰면 좋을 것이다.

 

 

길섶 () 길의 가장자리

 

쓰임의 예 소가 길섶 벼 포기 쪽으로 주둥이를 가져간다. (황순원의 소설 신들의 주사위에서)

 

              -학교 가는 길섶에 잎새가 돋아 제법 파래서 봄이 자리 잡은 것 같은 생각이 납니다. (박목월의 수필 구름의 서정에서)

 

 

이 말만은 꼭 갈무리하자

 

고섶 물건을 넣어 둔 곳이나 그릇이 놓인 곳의 가장 손쉽게 찾을 수 있는 맨 앞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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